서영석 LG전자 홍보FD 차장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화로웠던 주말,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딸애가 대뜸 PPT(파워포인트) 작성 방법에 대해 물었다.
딸은 “아빠 PPT 만드는 방법 좀 알려줘”라고 말했고, 나는 “뭐하게?”라고 답변했다. 이것저것 만들어보면 재밌을 것 같다라는 딸애의 답변에 아빠의 솜씨도 자랑할 겸 특별강의에 돌입했다. 10분 남짓 동안 그림 넣기, 글자 색상 바꾸기, 소리 넣기 등의 기본적 기능을 중심으로 속성으로 알려줬다.
일주일 뒤, 딸애는 자기가 만든 PPT를 보여주겠다고 컴퓨터 앞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뭐 별거 있겠어’란 생각에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은 내게 화려한 애니메이션 효과로 포장된 아주 간결한 첫 페이지가 떴다. ‘핸드폰 사주세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딸은 휴대폰을 사줘야 하는 이유를 PPT 화면과 함께 조목조목 설명했고, 열 살짜리 초등학생이 생애 처음 만든 PPT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직장 상사를 설득하기 위해 수없이 만들었던 PPT 중에 이렇게 간결한 구성을 본 적이 있었나 되짚었다. 맞춤법은 틀렸지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흐름은 간결하고 통쾌했다. 색상 구성이나 애니메이션 효과도 첫 작품치고는 훌륭한 편이었다.
이전에 휴대폰을 사달라고 졸랐을 때 반대 논리로 늘 내세웠던 점들이 순간 떠오르질 않았다. 이것을 만들기까지의 딸의 고민과 노력이 눈에 보였다.
결국 사용 중인 스마트폰을 딸에게 주고 필자는 LG G5로 기기를 변경했다. 중고 휴대폰이었지만 출시된 지 1년이 채 안 된 제품이라 딸은 친구들 사이에서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고 한다.
이번 PPT건을 계기로 새삼 두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마냥 아이로 봤던 딸이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며 자라고 있구나’ 하는 기특함, 그리고 ‘역시 진심을 담은 PPT는 누군가를 설득하는 아주 강력한 도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