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용비율 55%’ 수돗물 불신이 생수산업 키워… 연평균 11%씩 성장
바야흐로 물을 사먹는 시대다. 지난 1988년 국내 생수(먹는샘물)가 처음 등장했으나 당시는 국내 소비자들을 위한 물이 아니었다. 돈을 주고 물을 사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쉽게 하지 못하던 시대였다. 당시 등장한 생수는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는 외국 선수들을 위해 만든 것이다. 올림픽이 끝난 후 정부는 다시 생수 판매를 금지했다. 빈부 격차에 따른 위화감 조성과 수돗물 정책 등이 그 이유였다. 이후 생수 생산업체들의 반발과 국민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거쳐 1995년 ‘먹는물 관리법’이 제정되면서 생수가 다시 판매됐다.
이후 물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000년대 1500억 원 규모였던 국내 생수시장은 매년 10%가 넘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지난해엔 시장 규모가 6000억 원을 넘어섰다. 올해는 7000억 원 규모로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2020년엔 1조 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생수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업체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성장의 원동력은 ‘수돗물 불신’ = ‘11%’. 최근 15년간 국내 생수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이다. 생수 시장이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수돗물에 대한 불신’을 꼽았다. 워터저널에 따르면 국내 수돗물 음용 비율은 영국(90%), 미국(82%), 일본(78%) 등에 비해 현저히 낮은 55%에 불과하다. 그중에 직접 음용률은 3.7%에 그친다. 수돗물을 식수로 사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불안감, 오염 우려 등 심리적 요인(66.9%)이다. 물맛, 이물질 등 직접적인 원인은 27.9%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외에도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 온라인 쇼핑 확산, 1~2인 가구 증가 등도 생수시장 성장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한슬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설탕이나 칼로리가 높은 음료수를 마시기보다는 물을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또 온라인과 모바일 쇼핑의 성장으로 마트에서 무거운 생수를 사들고 집까지 오는 불편함이 해소되고, 클릭 한 번으로 집에서 생수를 받아볼 수 있게 되면서 생수시장은 더욱 빠르게 성장 중”이라고 분석했다. 한 연구원은 “1~2인 가구의 경우 물 소비량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렌털 및 구입비용 대비 생수를 사먹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점도 생수 시장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고 덧붙였다.
생수를 사서 마시는 사람이 늘면서 대형마트에서는 생수 매출이 소주 매출을 넘어서기도 했다. 롯데마트는 생수와 소주 합계 매출을 100으로 잡고 각 비중을 살펴본 결과 지난해 생수가 50.7%, 소주가 49.3%를 차지해 생수 매출이 소주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는 소주 매출이 생수보다 많았지만 지난해 처음으로 이 같은 추세가 뒤집힌 것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1인 가구와 맞벌이 부부 증가로 생수를 사먹는 비중이 늘어난 것이 매출 증가의 요인으로 보인다”며 “탄산수, 수입생수 같은 프리미엄 상품이 국내 소비자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생수 매출을 늘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생수 제조업체만 67곳, 삼다수 독보적 1위 = 국내 생수 시장은 그야말로 총성없는 전쟁터다. 지난해 말 기준 67개 제조업체들이 시장에 진출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 시장에서 광동제약의 ‘제주 삼다수’는 독보적인 1위다. 지난 1분기 기준으로 제주 삼다수의 점유율은 무려 45.7%에 달한다.
국내 생수 시장은 2위 경쟁이 관전 포인트가 되고 있다. 삼다수에 대한 견제가 버거운 상황에서 농심과 롯데칠성음료가 근소한 차이로 접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점유율 5.8%로 2위였던 롯데칠성음료의 ‘아이시스8.0’은 올 1분기에는 5.2%로 떨어졌다. 반면 농심 ‘백산수’는 올 1분기 6.8%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단숨에 2위 자리에 올랐다. 이어 4, 5위는 ‘평창수’(해태음료)와 ‘아이시스’(롯데칠성음료)가 차지하고 있다.
농심은 2012년 광동제약에 삼다수의 유통 사업권을 넘긴 후 백산수의 브랜드 파워를 키우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농심은 ‘신라면’에 이어 백산수를 글로벌 브랜드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최근 백두산에 공장을 증설해 백산수 생산 규모를 연간 25만 톤에서 125만 톤으로 대폭 늘렸다. 농심 관계자는 “올 하반기 이세돌을 모델로 내세워 마케팅 활동에 집중할 계획”이라며 “두 자릿수 시장점유율을 달성하고 단독 2위 자리를 확고히 해 올해 800억 원의 매출을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민통선 인근 지역에서 생수를 생산하고 있는 백학음료의 지분을 가진 롯데칠성음료도 지난 2014년 대규모 생산시설 확충에 나선 뒤 생수사업에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단일 생수 브랜드로는 백산수에 밀려 3위로 내려앉은 ‘아이시스8.0’과 ‘아이시스’의 점유율을 합하면 올 1분기 점유율이 7.8%로 농심을 앞선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꽃보다할배’, ‘태양의후예’ 등에 PPL(간접광고)을 진행하고 수원지를 강조한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며 “국내 생수브랜드 1위를 차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