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6월 16일 이휘소-노벨상이 기대됐던 한국의 세계적 물리학자

입력 2016-06-16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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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6월 16일 미국 일리노이 주의 한 고속도로에서 타이어에 펑크가 난 트럭이 중앙분리대를 가로질러 맞은편에서 오던 승용차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한국이 낳은 천재 과학자 이휘소 박사(1935년 1월 11일 출생)가 사망했다.

1952년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던 이휘소 박사는 물리학에 흥미를 느껴 1955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마이애미대학 물리학과에 편입한 그는 피츠버그대에서 석사학위를,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와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캠퍼스 교수, 페르미 국립가속기연구소 이론물리학 연구부장 겸 시카고대 교수 등을 거치면서 세계적 소립자 물리학자로 자리를 굳혀 나갔다.

이 박사는 1964년 지도교수인 에이브러햄 클라인과 함께 ‘자발적 대칭성의 부서짐’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 소립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 메커니즘의 등장에 기여했다. 피터 힉스 박사의 가설을 바탕으로 ‘힉스 입자’라는 이름을 붙인 이도 이휘소 박사다.

1970년대는 당시 물리학계의 쟁점이던 쿼크와 참 이론에 기여했으며 1977년 스티븐 와인버그와 함께 유작이 된 ‘무거운 뉴트리노 질량의 우주론적 최소 경계치’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소립자 물리학과 우주론 등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그가 살아 있었더라면 노벨상을 받았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실제로 그와 함께 연구를 했거나 그의 영향을 받은 와인버그와 헤라르뒤스 엇호프트, 데이비드 폴리처 등 많은 학자들이 노벨상을 수상했다. 아쉬운 일이다.

한국에서는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핵 개발을 돕다가 미국 정보기관에 의해 살해됐다는 음모론이 널리 퍼진 바 있다. 그러나 이휘소 박사는 핵 개발과 관련이 없는 소립자 물리학자였기 때문에 이는 억측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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