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리커창으로부터 경제 운영 권한 빼앗으려 해”…시장, 둘의 대립에 아직 방향성 못 찾아
중국의 1,2인자인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의 대립에 증시와 경제정책이 방향성을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홍콩 명보는 19일(현지시간) 최근 익명의 권위인사가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에 부채에 너무 의존하는 경제성장 등 중국 경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시 주석과 리 총리의 갈등이 표면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도 지난 17일 중국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과 서방 미디어, 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서 지난 1주일간 중국 경제를 운영하는 주체가 시진핑인지 리커창인지 논란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시진핑, 총리에 경제 운영 위임 관행 없애나
중국은 그동안 경제 운영을 총리에게 맡긴다는 관습이 있지만 시 주석은 노골적으로 이를 없애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닛케이는 지적했다.
최근 이런 움직임이 나타난 것은 인민일보가 9일 게재한 익명의 ‘권위인사’와의 인터뷰다. 이 권위인사는 “중국 경제가 앞으로 수년간 회복세가 둔화하는 ‘L자형’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며 “정부는 저성장에 만족하고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중국 경제성장이 너무 부채에 의존하고 있다”며 “채무 증대로 이어질 경기부양책과 금융 완화를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개혁과 성장이 모순되지 않는다면 적당한 수준의 경기 대책으로 경제를 연착륙시키려는 리 총리와는 다른 노선이라고 닛케이는 설명했다.
인민일보는 또 10일 공급 측면 개혁에 관한 지난 1월 시 주석 연설 초안을 공개해 권위인사와 시 주석이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에 힘을 실었다. 중국 소식통들은 권위인사의 정체가 시 주석의 최측근이며 경제 책사 역할을 맡는 류허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일 것으로 추정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중국중앙(CC)TV는 지난 16일 시 주석이 중앙재경영도소조 제13차 회의를 주재하면서 했던 연설 전문을 소개해 현재 경제 운영 실권을 쥔 이가 시 주석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당시 기사에서 리 총리는 “자리에 참석했다” 정도만 언급됐을 뿐 무슨 발언을 했는지는 전혀 소개되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리커창, 힘없는 반격
리 총리는 시 주석이 자신의 권한을 확대하는 가운데 지난해 여름과 연초 일어난 증시 대폭락 등으로 궁지에 몰렸다는 평가다.
명보는 지난해 7월 시 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동 당시 중국 증권당국이 증시 폭락에 대응하고 취했던 폭력적 구제방식은 자신의 의견이 아니었다고 말한 점을 소개했다. 또 내년 열리는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19차 당대회)에서 현재 7명인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5명으로 줄어들거나 아예 상무위원회가 없어지는 등 시 주석에 권력이 쏠릴 것이라는 관측이 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리커창도 미약하게나마 반격을 시도했다. 리 총리는 지난 3월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정부 업무보고에서 “우리는 관리들에 대한 관리감독 시스템을 개선해 무능력과 무기력함, 태만을 뿌리뽑을 것”이라며 “월급만 축내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관리들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보여줄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닛케이는 당시 리 총리가 시 주석이 주도하는 부정부패 척결운동을 언급하고 이 말을 꺼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고 분석했다. 리 총리가 반부패 운동의 부작용, 즉 꼬투리를 잡힐까봐 관리들이 몸을 사리게 되는 현상을 넌지시 비판했다는 것이다.
리 총리는 또 지난달 15일 중국 명문 칭화대와 베이징대를 방문해 교육과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역설했는데 류옌둥 부총리를 포함해 자신의 기반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계열 인사들을 대대적으로 동반한 시찰이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한 베이징대 관계자는 “지식인 사이에서 인기가 없는 시 주석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것 같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리 총리의 최근 반격은 지난 16일에 있었다. 인민일보에 권위인사의 공격적인 인터뷰가 실린지 일주일 만인 이날 리 총리가 수장으로 있는 국무원은 웹사이트에 경제 안정과 국민 생활 향상 등 지금까지 리 총리의 성과를 강조하는 문건 3건을 한꺼번에 게재했다. 그러나 같은 날 중국 관영 언론매체들이 시 주석의 연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반격은 힘을 잃었다.
◇경제 어디로...헷갈리는 시장
시진핑과 리커창의 권력 투쟁, 그 와중에 모호하게 전개되는 경제정책에 시장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지난 3월 반짝 회복세를 보였던 중국 경제지표가 지난달 다시 부진에 빠진 것을 그 증거로 꼽았다. 지난달 은행 대출 등 유동성 공급에 급제동이 걸리면서 산업생산과 소매판매, 고정자산 투자 등의 주요 지표가 일제히 시장 예상을 밑도는 증가세를 나타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지표는 지난 4월 당 정치국 회의와 5월 인민일보 기사 게재를 앞두고 경기부양적인 정책 기조의 수정이 시작됐음을 보여주고 있다”며 “2분기 중국 경제는 1분기보다 정책 뒷받침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증시 상하이종합지수는 인민일보에 권위인사의 인터뷰가 실린 지난 9일 2.8% 급락했지만 이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관망 분위기가 커지면서 주식 거래량은 중국증시 버블이 시작되기 전인 2014년 10월 이후 최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