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 박현주의 도전] 1997년 맨손으로 창업… 국민 재테크 ‘펀드’ 대중화 시대 열어

입력 2016-04-1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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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박현주펀드 1호’ 적립식 펀드 열풍… 야심작 ‘인사이트펀드’ 7년 만에 원금 ‘쓴맛’

‘한국 자본시장을 선도한 여의도 성공신화의 산 증인.’

이 수식어는 증권업계 자존심인 대우증권을 인수한 박현주 회장을 금융투자 업계에서 일컫는 말이다. 박 회장은 맨손으로 지금의 자리에 오른 샐러리맨의 성공 신화로 꼽힌다.

1958년생인 박 회장은 고려대를 졸업한 이후 1986년 동양증권에 입사했다. 이후 1988년 한신증권(이후 동원증권)으로 적을 옮기면서 발군의 영업 실력을 보인 그는 1991년 33세의 나이에 동원증권의 국내 증권업계 최연소 지점장이 됐다.

박 회장은 최연소 지점장 시절 당시 주식약정 규모만 1000억원을 넘어서는 등 전국 1위에 오르는 실적으로 승승장구한다. 돈이 가는 길목을 알아보는 탁월한 안목을 지닌 그는 1997년 당시 최현만 동원증권 서초지점장 등 박현주 사단과 미래에셋캐피탈을 창업하며 미래에셋그룹의 터를 닦는다.

1998년 국내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건 뮤추얼펀드 ‘박현주펀드 1호’를 출시하면서 국민 재테크 펀드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박현주펀드는 1년 만에 수익률 90%를 기록, 적립식펀드 열풍을 이끈다. 해외에 대한 남다른 투자 감각도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발휘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당시로선 생소한 홍콩, 싱가포르 등 현지에 법인을 세우는 등 운용업계에선 최초로 해외 주식을 운용한 것이다. 이후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자타공인 국내를 대표하는 적립식펀드의 명가로 자리매김해왔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아픔도 있다. 지난 2007년 그동안의 운용 역량을 밀집시키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매력도가 높은 자산에 전략적으로 비중을 조절하는 인사이트펀드를 출시했으나 설정 이후 몇 년간 마이너스의 늪을 헤맸다.

이 펀드는 출시 1개월 만에 무려 4조원이 넘는 신규 자금을 유입해 제2의 바이코리아 펀드로 불릴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8년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사태로 말미암은 금융위기에 따른 직격탄으로 누적 손실 규모가 50%에 달하고 세계 경기 악화 탓에 지난 수년간 저조한 성과를 보였다. 지난 2014년 11월 설정 7년 만에 가까스로 원금 회복 구간에 진입했지만, 최근 설정액은 전성기의 10분의 1인 4876억원으로 쪼그라든 상태다. 설정 이후 수익률도 -1.69%(15일 기준, 한국펀드평가 펀드스퀘어)에 달한다.

창업 이후 파란만장한 성공 가도를 달려온 그는 지난해 말 드디어 대우증권 인수에 성공하면서 총 자기자본 8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증권사의 주인이 됐다.

이번 대우증권 인수를 계기로 글로벌 IB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기회를 거머쥐게 됐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도 대우증권을 품에 안은 박현주 회장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내 경제는 저성장 국면에 진입하면서 대기업들의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으며, 제1금융권에 의존하는 자본조달 구조에서 한국경제의 역동성마저 줄어드는 실정”이라며 “박 회장이 그동안 쌓아온 투자전문가로서의 노하우와 대우증권의 IB 역량을 결합해 한국 자본시장에서 어떤 새로운 동력을 구축하는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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