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돋는 35mm, 소니 DSC-RX1R II

입력 2016-03-21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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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말 소니 DSC-RX1R(이하 RX1R II)을 처음 만났을 때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35mm F2 렌즈를 ‘일체형’으로 품은 녀석의 가격이 389만원. 다들 ‘렌즈를 사니 바디가 따라 왔어요’라고 말했지만 가격표의 적힌 숫자만 보고 적잖이 놀랐다.

여기 카메라가 한대 있다. 꽤 오랜기간 사용했다. 지난달 말 일본 오키나와로 날아가 때이른 여름도 미리 만나고 왔고. 서울에선 뒤늦은 겨울 눈과 봄기운 완연한 화창한 하늘도 보이는 족족 담아봤다.

많은 궁금증이 있었지만 일단은 친해져야 했고 매일 들고 다니면서 하루하루를 기록해가며 이해를 하기 위한 장고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이제 그동안 차곡차곡 찍어둔 사진을 한장씩 정리 하면서 지난 보름간의 추억을 복기할 생각이다. 왜 ‘복기(復棋)’냐고? 지금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마지막 5국을 본 후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아서다.

세계 최소형 풀프레임 카메라라는 타이틀은 본체 크기만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될 정도로 자그마하다. 남자 손으로 쥐면 똑딱이를 들고 있는 것 같고 그나마 여자가 손에 쥐면 비정상적인 크기의 범주를 간신히 넘어설 수준이다. 한마디로 보급형 미러리스 카메라 크기 만하다.

그런데 손에 쥐어보면 그 무게나 위압감이 보급형 카메라와는 사뭇 다르다. 마그네슘 합금으로 만든 바디는 배터리와 메모리를 모두 품고 507g. A7 미러리스 본체(474g) 보다는 조금 무겁고 일반적인 풀프레임 DSLR 보다는 훨씬 가벼운 수준이다.

이 자리를 빌어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 리뷰를 작성하면서 이녀석의 스펙을 처음 알게됐다. 4,240만 화소. 총 화소는 4,360만 화소에 이른다. 이미 화소 차이를 일반적인 환경에서 체감하기란 이미지 처리 기술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어지간한 시력이 아니고는 눈으로 확인하는게 힘든 수준으로 높아진지 오래다.

다행히 기억나는 것도 있더라. 풀프레임 35mm Exmor R CMOS 센서를 적용했다는 점과 ZEISS Sonnar T* F2 35mm 렌즈의 조합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방인 ‘렌즈 일체형’이라는 점도. 이 부분에 대해선 나중에 따로 이야기를 해야겠다. 지금은 알다시피 스펙 공개의 시간이니까.

  

풀프레임이라는 점과 35mm F2렌즈 일체형이라는 점만을 알고 훌쩍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로 떠났다. 일본 브랜드로 일본을 오니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홈어드밴티지인가?

여행 첫날의 인증샷으론 역시 숙소를 찍어야겠지. 숙소 예약 사이트를 통해 아담한 단층집을 잡았는데 잔디 깔린 마당도 있는 집이다. 집 전경은 안타깝게도 같이 들고간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없다. 스냅 촬영용으로 가져갔으니 주변의 소소한 일상을 담아내겠다는 의도다.

다행히 몇장 건진건 아침에 일어나 마당 주변을 찍은 사진이 전부였다. 역시 마당 사진은 꽃과 풀이지. 색감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선 원색계열의 피사체가 적당하다. 발군의 Sonnar 35mm는 고속 하이브리드 AF 시스템 맞물려 있다. 카메라에서 렌즈와 AF 시스템은 마치 자동차의 엔진과 변속기처럼 상호보완적인 존재다. 제아무리 좋은 화질을 가졌다 하더라도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니까. 똑똑하고 잽싼 초점 능력은 연사 촬영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AF-C 모드에서 초당 5프레임의 동체추적 촬영이 가능하다.

하이브리드 AF 시스템에 대해선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다. 화면 중앙부는 위상차 검출 방식을 통해 399포인트가 사물을 판단한다. 콘트라스트 검출 방식으로는 25포인트가 약 45% 면적을 커버한다. 검출 방식에 대해서는 복잡하니 과정에 대한 소개는 하지 않겠다. 측거점이 많을 수록 초점을 놓칠 경우의 수가 줄어든다는 점만 알아두면 된다.

[위 원본 사진/아래 100% 크롭]

그날 밤에는 오키나와 국제거리로 여정을 잡았다.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먹다 결국 노이즈 없이 잘 찍힌 사진 한장을 건졌다고 한다. RX1RII는 ISO50에서 최대 ISO102,400까지 촬영이 가능하다. 촬영한 사진은 모두 자동 ISO 상태다.

[위 원본 사진/아래 100% 크롭]

하지만 야경 촬영이라면 ISO 수치보다는 노이즈 억제력에 주목해야 한다. 확대해서 봐도 깨끗하고 선명한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날은 근교 바닷가로 향했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의 로케이션 장소라고 장소라고 한다. 연이틀 비가오고 그마나 날씨가 좋았던 날이다. 덕분에 하늘에 구름은 가득했다. 그리고 또 먹었다. 황당하게도 오키나와 사진은 여기까지다. 거의 집에서 은둔을 하다시피하는 바람에 많은 사진을 담지 못했다.

다시 내고향 서울이다. 3박4일간 오키나와에서 초여름 같은 날씨를 만끽하다 왔는데 다음날 폭설이 내리더라. 이런날 카메라를 어깨에 걸치고 나가면 감성 지수가 올라가면서 뭔가 있어 보이기 마련. 액정이 달려 있지만 지인들이 한두번씩 신기하다며 찍을 때를 빼곤 모든 사진을 뷰파인더를 통해 보고 찍었다. 틸트가 되는 LCD 화면은 약 122만 화소. 7.5cm의 화면 크기로 위로 109도, 아래로 41도까지 조절 가능하다.

뷰파인더는 100% 시야율에 0.74x 확대 비율을 제공한다. OLED 뷰파인더에도 자이스 T* 코팅 처리를 아끼지 않았다. 아이피스컵은 편안한 촬영할 때 카메라와의 일체감을 한층 높여주는 일등공신. 고맙게도 기본 제공된다. 손색이 없는 뷰파인더지만 OLED로 구동되는 까닭에 배터리 사용 시간에 영향을 끼친다.

모니터를 통해 촬영할 때는 약 220매, 뷰파인더로 촬영하면 약 200매 배터리 사용시간을 지녔다. 틈틈히 찍은 사진을 리뷰를 하기 때문에 실제 촬영 가능한 컷수는 좀더 떨어진다.

고된 여행을 마치고 고향인 서울에 왔으니 몸보신을 위해 또 먹어야 한다. 출출한 시간에 리뷰를 보는 독자에겐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한다. 빛망울(보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원형에 가깝게 개방되는 조리개로 인해 동그란 모양의 보케가 생긴다.

렌즈 경통의 매크로 전환링을 돌려 최단 초점 거리가 20cm로 짧아지는 매크로 모드로 촬영했다. 경통의 길이가 변하지 않아 피사체에 최대한 근접해 찍을 수 있더라. 그동안 음식 사진을 찍겠다고 카메라를 들이대다가 음식에 렌즈가 빠지는 불상사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때의 아찔한 추억을 곱씹어가며 에디터가 제일 싫어하는 연어를 표적삼아 찍어봤다.

그리고 다음날, 지난 일주일간 내 몸에게 몹쓸짓을 한 것 같아 간만에 운동겸 산책을 나갔다. 지인이 운영하는 매장에서 만난 강아지다. 별로 반려견과 친하지 않아 견종을 물어보니 장모 치와와란다. 눈망울이 똘망똘망하구나. 역시 35mm 렌즈는 스냅이나 인물 촬영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동물도 마찬가지. 어차피 포트레이트는 동물을 찍나 사람을 찍나 같은 화각, 구도로 찍는 법이니까.

35mm는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렌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35mm 렌즈를 ‘렌즈캡’으로 쓴다. 거의 카메라 바디에 마운트를 하고 다닌다는 뜻이다. 특히 인물 사진을 찍기에도 부담이 없고 스냅 사진을 찍을때 역시 순간 포착에 능하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부피가 적어 컴팩트하단 것도 장점중 하나. 특히 렌즈 크기가 작아 찍히는 게 부담스러운 초보 모델도 거부감을 적게 느낀다.

금속이나 카본 재질의 물체는 특유의 패턴이 있어 화질 테스트에 적합한 피사체다. 금속으로 된 스프라켓과 카본 프레임의 미세한 결이 고스란히 보이더라. 본체 위에서 바라보면 최신형 카메라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아날로그스럽다. 하지만 완벽한 수동 조작을 돕기 위해 포커스링을 움직이는 순간 중앙부가 확대되면서 정확한 초점 맞추기를 돕는다.

양재천을 떠나 최근 이사한 보광동 산책에 나섰다. 이사하고 짐 정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미처 동네 한바퀴도 돌아보지 못했다. 앤틱 가구 거리 곳곳에는 카페가 있고 이제는 허름한 집들이 즐비하다.

사진은 오후 4~5시의 풍광이다. 태양과 마주하는 상황에서도 고스트와 플레어가 잘 억제된 것을 볼 수 있다. 빛 처리가 부드러워 역광 상황에서 마구 찍어도 나름 작품이 된다. 이게 다 자이스 T* 코팅처리 덕분이다.

보름간의 기억은 이쯤에서 마무리 해야겠다. 소니 RX1R II를 사용하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두가지로 압축된다.

먼저 아날로그 향수가 물씬 느껴지는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이야기부터. 조작 다이얼을 비롯한 인터페이스는 최신과 클래식 사이의 경계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일단 외형은 물론이고 노출 보정 다이얼과 조리개 다이얼, 그리고 전원/셔터 스위치는 필름 카메라를 떠올리게 할 정도. 반면에 액정 화면이 있는 뒷면은 첨단으로 중무장했다. OLED 디스플레이 뷰 파인더는 선명한 해상도에 마치 DSLR처럼 빠른 반응을 보여 EV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 핑거그립 반대편에 달린 동영상 촬영 버튼은 오작동을 막고 틸트액정을 통한 촬영 환경에서 안정적인 그립을 보장한다.

또다른 한가지는 바로 35mm 일체형 렌즈다. 소니와 자이스 렌즈와의 협업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어왔다. 그리고 비구면 렌즈, 코팅 기술 역시 익히 알려진 상황. 게다가 스냅 촬영에 최적화된 35mm 화각은 언제 들고 다녀도 부담이 없을 만큼 범용성이 높은 렌즈다. 소니는 일체형이라는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렌즈와 피사체의 이미지 신호를 받아들이는 촬상면의 거리를 미크론 단위로 조정하는 공을 아끼지 않았다. 보통 DSLR렌즈군에서 흔히 발생하는 골치거리인 ‘핀 조정’ 같은 번거로운 작업이 필요 없단 뜻이다.

반면에 일체형 렌즈가 주는 문제도 있다. 일단 고가의 카메라임에도 불구하고 렌즈를 교환할 수 없다는 점은 사용 목적이나 용도에 따라 단점으로 부각될 수 있는 예민한 문제다. 게다가 바디에 따라온(?) 고가의 자이스 렌즈는 알다시피 귀하신 몸이다. 때문에 별매인 렌즈 후드는 옵션이 아닌 필수가 됐다. 렌즈 보호 필터 역시 필수품이니 장바구니에 렌즈 후드와 함께 담아주는 센스가 필요하다. 참고로 필터는 49mm. 그래야만 고귀한 T* 자이스 코팅을 지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족을 붙이자면. 단언컨대, 소니 역사상 이렇게 가격표 논란을 겪을 녀석은 또 없지 싶다. 많은 기능과 재료를 포함시켰다고 해도 구매를 할땐 심리적 저항선이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렌즈 교환형도 아닌 렌즈 일체형 카메라다 보니 논란의 중심에 설 수 밖에.

보통 우리 직군에 속한 사람들은 이럴때 거의 동일한 질문을 받는다. “그래서 넌 살거야?”라는 물음에 통잔잔고는 생각도 못하고 부지불식간에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이번 제품에 대한 나의 대답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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