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배기 포토프린터, 엡손 PM-401

입력 2016-03-1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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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PC를 정리하다가 대체 왜 이렇게 하드에 공간이 없는 걸까 고민에 잠겼다. 그리고 이곳저곳 샅샅이 탐문에 나선 결과 지난 몇년 간 열심히 취재와 여행을 다닌 결과가 묵직한 용량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폴더마다 엄청난 사진 파일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추억 여행에 빠져버렸다지. 잊고 있었던 아름다운 풍경과 추억을 보니 낯선 여행지에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르더라. 언제 이렇게 많은 사진을 찍었던 건지.

디지털 파일로 간직한 사진은 이렇게 기억 속에 묻히기 마련이다. PC 안에 재워두기엔 아까울 정도로 좋은 사진이 너무 많다. 예쁘게 인화해서 따로 모아둬야겠다. 그래서 오늘 핑계김에 리뷰를 준비한 제품은 엡손의 포토프린터. 더 작은 제품도 있지만, 나는 고화질 사진 파일이 많아 고해상도 출력을 지원하는 프린터로 골랐다. 바로 엡손 PM-401.

콤팩트하고 깔끔한 디자인부터 내 취향이다. 심플한 디자인은 보석함을 떠올리게 할 만큼 예쁘다. 최대 A5(140x210mm) 사이즈를 출력할 수 있는 프린터 치고는 가볍고 작다. 덕분에 책상 한 구석에 두기에 전혀 부담 없는 크기다. 참고로 깨끗한 화이트 컬러의 기기라 여성스러운 인테리어에 잘 어울린다. 공간이 부족하다면 책장에 세로로 보관해 둘 수도 있다.

뚜껑을 들어올리면, 그제야 버튼과 LCD 창이 오밀 조밀 들어 차있는 작은 포토 프린터의 모습이 드러난다. 용지 트레이를 접이식으로 설계해 제품 부피를 최소화한 것.

버튼 배치나 조작 방법은 아주 직관적이고 쉽다. 큼직한 컬러 LCD 화면을 탑재하고 있어 PC에 연결하지 않고도 출력 정보나 현황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사용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도 이 화면에 표시되는대로 따라하면 된다.

대용량 잉크 카트리지를 사용하는 것도 매력 포인트. 경쟁사의 컴팩트 프린터와 비교했을 때 최대 1.6배 용량의 잉크 카트리지를 탑재했다. 카트리지 1개로 최대 146장의 사진을 출력할 수 있다.

내가 사용한 용지는 엡손 광택 사진 용지로 4X6 사이즈다. 가장 일반적인 필름 사진 인화 사이즈이기도 하다. 용지 자체의 질도 아주 만족스러웠는데, 사진을 훨씬 선명하고 고급스럽게 돋보이게 해준다. 다양한 용지 사이즈를 지원하니, 용도에 따라 골라 사용하면 된다.

5×7 사이즈의 인화지를 지원하는 포토프린터를 찾기 힘든데 이 제품은 다양한 사이즈를 지원하는 점이 큰 장점이다. 왼쪽이 5×7 사이즈, 오른쪽이 4×6 사이즈 인화지다. 크기에 따라 사진의 느낌이 다르게 표현된다는 점이 재밌다. 용도에 따라, 입맛에 따라 알맞게 선택하면 된다.

PM-401을 사용하며 느낀 가장 큰 특징은 너무나 다양한 출력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원하는 사진 파일이 어떤 기기에 있어도 크게 힘 들이지 않고 바로 연결해 출력할 수 있다. 일단 와이파이를 지원하기 때문에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저장된 사진은 케이블 연결 없이 바로 뽑아낼 수 있다.

안드로이드와 iOS를 모두 지원하는 ‘Epson iPrint’ 앱을 사용하면 용지 크기에 맞게 사진을 설정하고 최대 30장 까지 한 번에 출력할 수 있어 편리하다. 방금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도 앱에서 바로 불러내 출력하면 실시간으로 따끈따끈한 사진을 손에 쥐어 볼 수 있다.

이 앱에서 용지 크기나 종류는 물론, 레이아웃까지 간단하게 설정할 수 있다. 특히 나는 인쇄에 맞게 사진 톤을 잡아주는 자동 보정 기능을 유용하게 써 먹었다.

자, 와이파이 연결이 되어 있으니 앱에서 사진을 골라 몇 장 뽑아 볼까?

첫 사진이 트레이를 빠져나오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무려 7360×4912 해상도의 사진이다. 원본이 가지고 있는 디테일과 색감이 조금도 무너지지 않았다. 과연 저가 포토 프린터와는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사진을 출력해서 가지고 있는 걸 좋아하는데, 인화 후에 원본 파일이 가지고 있던 쨍한 느낌이 뭉개지는 건 좋아하지 않아서 인쇄 품질을 까다롭게 체크하는 편이다.

가까이서 봐도 만족스럽다. 열흘 간의 포르투갈 여행에서 담아온 온갖 풍경과 컬러, 공기, 추억들을 쉬지 않고 뽑아냈다. 인화 속도도 빠릿하다.

워낙 인화 품질이 좋아 되도록 DSLR로 촬영한 고해상도 이미지를 뽑으려고 했지만, 정작 내 사진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은 셀카가 대부분이더라. 그래서 보기 좋게 편집해서 인화하기로 했다. 잘 나온 사진을 골라서 적당히 배치하고 출력하니 어쩐지 그럴싸해 보인다. 아주 마음에 든다. 특히 포르투갈에서 찍은 사진들은 유럽 관광지마다 으레 판매하는 관광객용 엽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진을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봐도 퀄리티가 훌륭하다.

이 작은 포토프린터의 저력을 확인한 사무실 동료들이 본인들 사진을 들고 찾아오기 시작했다. 내가 PM-401로 출력해서 사무실 책상에 붙여둔 사진이 부러웠나보다. 다들 아기 사진, 여행 사진, 결혼식 사진 등을 들고와서 발을 동동 구른다. 나는 절대 권력을 손에 쥐었으니 마음에 드는 사진만 뽑아주겠다고 횡포를 부렸다. 다만 출력은 셀프다. 각자 가진 기기에서 알아서 뽑으면 된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대부분의 연결 방식을 지원하니까.

LG G4를 사용하는 막내 에디터 K도 안드로이드 앱을 이용해 와이파이 연결 후 바로 사진을 뽑았다.

아이폰에서 에어프린트 기능을 이용하면 별도의 앱이 없어도 바로 출력 가능하다. 심지어 나는 구글 포토에 업로드 해놓은 사진도 마음껏 골라서 에어프린트로 출력을 넘겼다. 살기 넘나 편한 세상이다. 세 가지 방법 모두 케이블 연결도 필요 없고, 파일을 주고 받는 과정도 필요 없다. 그냥 원하는 이미지를 골라 출력하면 그만이다. 굉장히 편리하다.

물론 무선 연결 없이 SD 카드에 이미지를 넣어 바로 파일을 전달하는 직관적인 방법도 가능하다.

비교적 화질이 떨어지는 스마트폰 사진도 인화해놓으면 생각보다 훌륭하게 나온다.

여러 사이즈의 인화지를 이용한 DIY의 즐거움도 이 포토프린터를 활용하는 새로운 방법이다.

출력하고 싶은 사진이 너무 많다는 디자이너 N은 포토샵을 열더니 뚝딱뚝딱 이미지를 편집하기 시작했다. 가지고 있던 사진 여러장을 편집해 멋스럽게 레이아웃을 잡고 우리 사진으로 엽서도 만들어 주더라. 편집 앱을 조금만 이용하면 개인적인 추억이 담긴 사진으로 달력이나 엽서, 카드 등을 만들 수도 있겠다. 나는 내 셀카를 잔뜩 던져주고 “잡지처럼 편집해 달라”고 무리한 결과를 요구했다. 디자이너 N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지만, 모른 척 했다. 인생 사진이라 부를 만한 잘 나온 셀카를 모아서 귀여운 레이아웃으로 프린트했다. 반질반질한 코팅지에 인화해 놓으니 화면으로 보던 것보다 더 예뻐보인다.

생각해보니 이 정도 퀄리티면 증명사진을 뽑아도 되겠더라. 당장 인화해보았다. 인화지와 출력 품질이 모두 훌륭하기 때문에 실제 사진관에서 받은 사진 만큼 고퀄리티 증명사진을 얻을 수 있다. 특히 Epson Easy Photo Print 프로그램을 활용해 증명사진을 출력하면 아주 편리하다. 인쇄할 사진을 선택한 뒤, 프로그램에서 용지 크기를 고르고 증명사진 레이아웃을 선택하면 끝! 아주 쉽고 간편하게 정확한 사이즈의 증명사진을 얻을 수 있다는 꿀팁을 전한다.

포르투갈의 한 기차역에서 촬영한 에디터 L의 뒷모습 사진으로 엽서도 만들어 보았다. 좋아하는 폰트로 글씨를 넣어보기도 하고. 캘리그래피에 능한 사용자라면 사진에 담을 간단한 문구를 직접 손으로 써도 재밌겠다. 이리저리 가지고 놀다보니 점점 인화지가 사라져간다.

사실 시중엔 이것보다 작고, 가볍게 사용할 수 있는 모바일 포토 프린터도 많다. 정말 가방 안에 쏙 들어가는 사이즈로 훨씬 빠르게 사진을 출력해주는 기기들 말이다. 물론 그런 제품들도 스마트폰 사진을 맛깔스럽게 뽑는 용도로는 충분하다.

하지만 진짜 고화질의 사진을 선명하게 인쇄해 간직하고 싶다면, 좀더 제대로된 포토 프린터를 욕심낼 수 밖에 없을 것. 엡손 PM-401은 내가 여태까지 사용해본 포토프린터 중 가장 훌륭한 인쇄 품질을 자랑한다. 매끈한 고급 코팅 인화지에 담긴 지나간 추억은 필름 사진을 인화한 것처럼 선명하고 매끈하다.

아무리 잘 찍은 사진이라도 영원히 디지털 파일로 남아 잊혀진다면 소용 없다는 걸 다시 실감하게 된다. 프린터에서 사진이 한장 한장 나올 때마다 지나간 여행지에서의 추억과 친구들과의 즐거운 만남이 손에 잡히는 향기와 모양이 되어 다시 찾아온다. 인화지가 조금 남았다. 내 방 한쪽 벽을 장식할 사진들을 출력하러 다시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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