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은 온도와 습도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겨울 향수와 여름 향수는 구분되어야 한다. 겨우내 익숙했던 향과 안녕을 고하고, 이제는 새로운 여름 향으로 갈아입을 때다.
여름과 어울리는 여섯 개의 향기를 골랐다. 눈을 감고 그 향기가 날 것 같은 남자도 그려봤다. 그리고 나의 상상력은 그 향수를 뿌리는 남자가 타고 있는 차에 이르렀다. 이제 갓 비닐을 제거한 새 차에서 나는 가죽 시트 내음과 이 향수가 어우러지니 맡기에 참 좋더라.
[여섯 개의 향기와 차, 당신의 선택은?]
기사에 앞서 미리 양해를 구하는 바다. 지금 소개할 향수와 차의 매치는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답이 아니다. 남자들에게 생소할 수도 있는 향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함이다. 이 향수를 쓴다고 저 차를 꼭 타야 한다는 뜻도 아니고, 또 여러분이 나의 취향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냥 상상력을 가지고 향기의 이미지를 그려보자는 이야기다. 그럼 시작하겠다.
러쉬 더티 보디 스프레이 200mL, 4만 1500원
러쉬는 영국에서 온 젊고 감각적인 브랜드다. 러쉬 제품 중에서도 더티 보디 스프레이는 남자의 땀구멍이 열리는 계절이 오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많다. 샌들우드의 상쾌한 향이 뿌리는 순간 피부의 온도를 1도 정도 낮춰주고, 라벤더와 스피아민트의 향긋함이 불쾌한 체취를 단숨에 잡아준다. 처음엔 약간 독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잔향만큼은 정말 ‘더럽게’ 좋다(더럽게 좋은 향이 더티 보디 스프레이의 컨셉이다). 길을 가다가 더티 보디 스프레이를 뿌린 남자가 지나가면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존재감이 확실한데, 그래서인지 MINI 3 도어가 떠오른다. 그것도 개나리색으로. 물론 러쉬와 MINI 모두 같은 영국 출신이란 점도 한몫했다. MINI 특유의 위트, 그리고 어디서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확실한 존재감까지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는 없다. [링크]
딥티크 베티베리오 오 드 뚜왈렛 100mL, 17만 5000원
딥티크의 이국적이면서도 고급스러운 향은 단정하고 믿음직스러워서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친구 같다. 베티베리오는 씁슬하면서도 달콤한 자몽향으로 시작해 열대 지방에서 자랄 것 같은 풀내음이 은은하게 퍼진다. 단정하지만 가슴속에 뜨거운 열정을 가진 남자에게서 맡을 수 있을 법한 향이다. 렉서스 ES 하이브리드는 스포츠카에서 느낄 수 있는 자극적인 맛은 없지만, 담백하고 쉽게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다. 단정한 외모에 스핀들 그릴과 헤드램프 만으로 포인트를 준 것도, 깔끔한 딥티크의 보틀의 감각적인 일러스트로 포인트를 준 것과 맥이 닿아있다. 두 가지 모두 디테일만 봤을 땐 꽤 과감한 것처럼 보여도,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고요하고 단단한 조화로움이 있다. [링크]
세르주 루텐 로 드 퍼퓸 100mL, 19만 3000원
세르주 루텐의 로를 맡았을 때 단번에 아우디 TT 쿠페를 떠올렸다. 몸에 꼭 맞는 수트를 입은 듯 날이 선 아우디는 깨끗한 향이 참 잘 어울리니까. 로는 세이지와 베르가못, 매그놀리아의 조합으로 베일 듯이 빳빳하게 다린 화이트 셔츠, 샤워 후의 수증기가 연상되는 아주 깨끗한 향이 난다. 이슬처럼 투명한 보틀에 ‘로(L’eau)’가 보일 듯 말 듯 희미하게 쓰인 라벨은 세련되고 섬세한 남자를 위한 향수라고 말하고 있다. 아우디 TT 쿠페를 타고 잘 닦인 도로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남자에게선 꼭 세르주 루텐의 로같은 향이 나야 한다. [링크]
산타마리아 노벨라 카라로사 100mL, 21만 8000원
잠시만 눈을 감고 그려보자. 당신은 지금 지중해 어디쯤에 위치한 아주 작은 섬이다. 가파른 골목길 사이를 요령껏 빠져나가니 지중해를 마주 보는 해안도로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럴 땐 좁은 골목을 자유롭게 달리고,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 차가 필요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산타마리아 카라로사에 피아트 500보다 더 잘 어울리는 차는 없다. 이 향수는 이탈리아의 외딴섬 카프라이아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푸른 풀과 나무 그리고 시트러스의 향긋한 향이 어우러져 지중해의 햇살의 그대로 병안에 담아낸 듯한 향이 난다. 게다가 동글동글한 카라로사의 보틀과 피아트는 딱 보기에도 궁합이 좋지 않은가. [링크]
펜할리곤스 쥬니퍼슬링 100mL 24만 4000원
펜할리곤스는 영국 왕실 전통과 품위를 대표하는 고품격 향수 브랜드다. 브랜드 로고에 떡하니 두 개의 영국 왕실 문양이 있을 정도니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 지금 소개한 쥬니퍼슬링은 이서진과 정우성이 즐겨 뿌리는 향수로 알려져 있다. 첫 향은 상쾌하지만 곧 블랙페퍼와 가죽, 그리고 흰 붓꽃 향을 지나 블랙 체리와 엠버의 오묘한 조합이 매력적이다. 향을 맡으면 점잔을 떠는 남자보다 매일 밤마다 떠들썩하게 파티를 즐기는 젊은 귀족이 떠오른다. 펜할리곤스 쥬니퍼슬링에는 같은 영국 출신의 재규어 XF를 매치했다. 지극히 영국적이지만, 젠틀한 신사보다는 세련된 취향의 나쁜 남자 쪽에 더 가깝다. 조금 삐뚤어졌지만 세련된 안목을 가진 남자의 차와 향기다. [링크]
크리드 오리지널 베티베 오 드 퍼퓸 75mL, 34만 8000원
크리드는 자동차 브랜드로 치면 벤틀리나 롤스로이스 급이라고 할 만하다. 일단 가격만 봐도 알 수 있다. 75mL에 34만 8000원이라니 대체 한 방울에 얼마인 걸 까. 크리드는 1760년 이래 무려 7대를 이어온 유서 깊은 조향사 가문이다. 단 35명 밖에 안되는 인증된 조향사 아래서 엄격한 통제 하에 향을 추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티베는 시원하지만 고급스러운 풀내음 같은 것이 나는데, 여유롭고 낭만적인 남자가 떠오른다. 이 향은 벤틀리 컨티넨탈 GT 쿠페와 어울리겠다. 크리드 베티베를 뿌리는 남자라면 언제나 최고급을 지향하지만, 그렇다고 운전사 뒤에 앉아 얌전을 빼는 타입은 아닐 것이다. 그것보다는 자신이 직접 가속페달을 밟고 엔진의 떨림을 느끼기 원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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