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통로의 시발점 ‘베트남 비자금’…적자 협력사에 수년째 일감몰아주기도
포스코 전직 관계자들은 지난해 검찰의 비자금 수사가 ‘반쪽’으로 그치자, 지금까지 이같은 의심의 눈길을 그치지 않고 있다. 정준양 전 회장 등 핵심 피의자 모두 불구속 기소된 데다 포스코 그룹 차원의 비자금 실체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정권 실세들과 연결된 불법 정치자금 고리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지적이다.
포스코 비자금 조성의 핵심고리로 지목되고 있는 계열사는 포스코건설이다. 정준양 전 회장과 정동화 전 부회장은 모두 포스코건설 CEO에서 물러난 이후 비리와 연루된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특히 2008년 11월까지 포스코건설 사장을 맡은 한수양 전 사장 역시 재임기간 중 석연치 않는 경영활동으로 지금까지 구설수로 홍역을 앓고 있다.
검찰이 지난해 하도급 비리로 수사를 마무리한 포스코건설 베트남 비자금 조성 의혹은 권오준 회장 등 현 경영진의 압력행사로 급하게 마무리 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여기에 기술력이 검증되지 않은 협력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행태와 포스코건설이 입주하고 있는 인천 송도 사옥인 ‘포스코 E&C 타워’의 수백원대의 임대권 역시 지금까지 전 경영진과의 불편한 연결고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포스코건설 베트남 비자금 의혹, “단순한 하도급 비리 아니다” = 지난 3월 시작된 포스코 수사는 포스코건설의 베트남 비자금 의혹에서 시작됐다. 검찰은 8개월 동안 진행된 수사로 그동안 업계에서 소문으로 나돌던 고질적인 하도급 비리를 끊어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하도급 선정 대가로 뇌물을 받은 실무자들의 기소처리로 종결됐다.
그러나 당시 실무선에서 일부 직원들의 개인적인 착복과 함께 비자금 실체를 밝히기 위해 검찰 조사를 의뢰했지만, 포스코그룹 경영진이 이를 묵살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미국 정부의 해외부패방지법(FCPA)을 염려해 실무자들의 단순한 하도급 비리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포스코건설이 FCPA 처벌 대상으로 확정되면 수천억원에 달하는 과징금과 함께 향후 경영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포스코건설 최대주주는 89.5%의 지분을 소유한 모회사 포스코다. 포스코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돼 미국주식예탁증서를 발행하고 있어 미국 증권거래법인 FCPA 대상에 포함된다.
FCPA의 뇌물금지 조항에 따르면 미국 증권시장에 증권이 상정돼 있거나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시를 하도록 돼 있는 기업 또는 기업의 자회사가 사업 영위나 유지 목적으로 금전 등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당시 권오준 회장 등 경영진이 가장 우려했던 부문은 포스코건설 매출 약 10%에 해당하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이다. 지금까지 FCPA 위반 혐의가 포착된 해외 업체들은 미국 내 사업을 감안해 과징금 납부를 거부한 사례가 없다. 앞서 독일 전기전자기업인 지멘스는 8억달러(약 8312억원)의 과징금을 납부했고, 3억9820만달러(413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은 프랑스 정유업체 토털사도 전액 납부했다.
당시 범우이엔지는 별다른 기술력을 인정받지 못해 적자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포스코건설은 100억원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회사가 신주를 발행하는 경우 미리 약정된 가격에 따라 일정한 수의 신주 인수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된 채권)를 매입하는 조건으로 비지니스 파트너쉽 관계를 형성했다.
이후 범우이엔지는 수년간 포스코건설이 발주하는 발전플랜트 사업의 일종인 폐열회수보일러(HRSG) 부문을 독식하면서 급성장 궤도를 타게된다. 지난 8년간 포스코가 발주한 HRSG 공사는 범우이엔지가 전량 수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포스코그룹 내부에 철강·에너지플랜트 전문계열사 포스코플랜텍이 HRSG를 취급하고 있어, 외부기업에 일감을 몰아주는 배경에 갖가지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포스코플랜텍이 화공플랜트 전문기업이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화공과 발전플랜트는 설계도 차이로 제품을 생산하는데 기술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포스코플랜텍과 범우이엔지는 경쟁사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 전 사장 퇴임 직전에 체결된 범우이엔지와의 수의계약은 사업이 중복되는 포스코플랜텍의 수주가 급감해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도 일감을 몰아주기 위한 조치로, 이 회사 성장 배경에는 한 전 사장을 비롯해 이후 정준양 전 회장, 정동화 전 부회장 등이 깊숙히 개입된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포스코건설, 송도사옥 지으면서 테라피앤디에 일감 몰아줘 = 포스코건설이 인천시 송도에 포스코 E&C 타워(지하 5층, 지상 39층)를 지으면서 시공 경험이 없던 테라피앤디에 일감을 몰아준 것도 풀리지 않는 의혹이다.
포스코건설은 포스코 E&C 타워를 짓기 위해 테라피앤디와 함께 2007년 특수목적법인 PSIB를 설립했다. 현재 등기부상 포스코건설 송도사무소의 주인은 PSIB다. PSIB는 포스코건설이 49%, 테라피앤디가 5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테라피앤디가 포스코 E&C 타워의 실질적인 소유권을 갖고 있는 셈이다. 테라피앤디는 포스코 E&C 타워를 통해 연간 200억원 가량의 임대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포스코건설은 자사가 PSIB의 대주주가 되면 건물 설립에 필요한 차입금의 채무보증을 서야 하는 부담이 있어 과반의 지분을 테라피앤디에 넘긴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테라피앤디가 시공 경험이 전혀 없었던 것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테라피앤디는 2007년 11월 자본금 1억원으로 설립됐다. 당시 대표는 김경진씨였다. 이후 2008년 2월 자본금을 10억원으로 늘렸다. 이 중 5억1000만원으로 PSIB 주식 51%를 매입했다. 테라피앤디는 5억원의 자금으로 5000억원 이상으로 평가되는 포스코 P&C 타워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업계 일각에서는 테라피앤디가 포스코 전직 고위 관계자와 관련이 있을 것이란 추측을 제기해왔다. 전직 고위 관계자가 퇴사 시기를 전후해 만든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포스코의 전형적인 병폐 중 하나가 아니겠냐는 것이다. 테라피앤디의 현 대표는 한성일씨다.
PSIB와 포스코건설이 현재 다수의 소송을 진행 중인 것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2007년 포스코 E&C 타워 건설 사업자 선정 단계가 순탄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를 두고 포스코의 사업 구조조정 여파가 PSIB와 포스코건설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PSIB는 2013년 포스코건설에 329억원 규모의 임대료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포스코건설은 2014년 PSIB에 52억원 규모의 공사대금 청구소송을 냈다. 이들 소송은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