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러 시승차 편법으로 선(先)구입… 공정거래 무너져
자동차 가격은 다양한 경제 논리와 맞물려 있습니다. 자동차 원가에는 생산비용은 물론 개발비와 인건비, 물류와 마케팅 비용까지 포함됩니다. 광고 비용 역시 차 가격에 포함돼 있습니다.
애프터서비스(AS)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차를 구입할 때 서비스 비용을 포함해 이를 모두 지출한 셈입니다. 비율은 자동차 회사별로, 차급과 종류, 보증기간별로 차이가 납니다.
시장 규모와 (예상) 판매량 역시 신차 가격을 좌우합니다. 자동차 회사 역시 시장논리에 따라 수익을 내야하는 기업입니다. 자연스레 신차 출시를 앞두고 다양한 판매 전망치와 경제 상황을 고려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차 가격을 책정합니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책정되는 차 가격은 시장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입니다. 우선 회사별로 매달 할인 이벤트를 실시합니다. 재구매 고객에게 좀더 혜택을 주거나, 카드사 제휴 이벤트에 따라 할인 금액이 커지기도 합니다. 신차 판매는 '4→2→3→1분기' 순으로 감소하는데요. 시기별로 할인율을 조정해 판매를 끌어 올리거나,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막 출시한 신차라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이 경우 할인 폭이 적은 편이지요. 라이프사이클(교체주기) 막바지에 이르러, 즉 새 모델 출시를 앞두고 있다면 할인 폭은 더 확대되곤 하지요.
그나마 우리나라는 지역별로 차 가격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생산공장에서 고객이 있는 지역까지 탁송료 정도에서 차이가 날 뿐입니다. 그나마 지역별 출고장으로 1차 이동을 하고, 통상 이 출고장에서 대기하다 대리점 또는 고객에게 2차 탁송이 이뤄집니다.
◇지역별로 수백만 원 차이를 보이는 미국=땅덩어리가 큰 미국에서는 지역별로 최대 수백만 원의 차이를 보이기도 합니다. 먼저 주마다 세금제도가 다르고 판매 모델도 차이를 보입니다. 세금과 기름값, 유지비용이 제각각인 셈이지요.
물론 차 가격에서 탁송료를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탁송이란 말 그대로 생산지에서 고객이 있는 곳까지 차를 옮겨오는 일입니다. 지역에 따라 수백만 원의 탁송료가 필요합니다. 좁은(?) 한국 땅에서도 수십만 원의 탁송료가 필요한데 몇십 배 더 큰 미국에서는 더할 나위 없겠지요.
탁송료 부담이 싫다면 직접 출고장으로 달려가 차를 가져오면 됩니다. 물론 출고장까지 비행기로 이동하고, 새 차를 받아 몇날 몇일 밤낮없이 운전해야 한다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실제 미국 고객들은 이런 차이에 둔감합니다. 탁송료 차이를 각 딜러별 할인 프로그램으로 상쇄하는 일이 많습니다. 리스로 차를 구입하는 일이 많다보니 부대비용이 간과되기도 합니다.
◇들쭉날쭉 한국 수입차 가격=그럼 이제 우리나라 수입차 가격을 알아볼까요.
국내 수입차 시장은 정부의 수입선 다변화 정책에 따라 미국과 유럽차, 일본차에 순차적으로 개방했습니다. 초기에는 배기량 제한도 있었지요. 때문에 초기 수입차 시장은 고급 대형차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소형차 위주의 국산차와 경쟁을 애초에 막아놓은 자국 산업보호법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수입 제한이 해제되면서 국산차와 경쟁할 수 있는 중저가 소형차도 쏟아졌습니다. 수입차 시장 점유율이 10%를 넘어설 무렵이었습니다.
치열한 경쟁이 이뤄지고, 매달 경쟁의 결과가 수치로 나오다보니 수입차들의 경쟁도 치열합니다. 자연스레 가격 경쟁도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수입차 시장에서는 제 가격을 모두 지불하고 차를 구입하는 일이 없습니다. 이제 막 출시한, 그래서 차 가격을 지불하고도 몇 개월을 기다려야하는 신차가 아니고서야 굳이 제값을 내는 경우는 없다는 것입니다.
메이커별로 기본적으로 10% 가까운 할인율을 제공하고 있는데요. 그렇다한들 몇몇 딜러만 돌면서 발품을 팔면 가격은 더 내려갈 수 있습니다. 이런 수입차 역시 수입원가와 세금, 물류비용, 배송비용을 기본으로 본사 수익과 딜러사 수익을 더해져 책정이 됩니다.
◇개소세 인하? 관세 혜택?…콧방귀 뀌는 수입차 업체= 수입차 가격을 언급하기 앞서 판매 구조를 먼저 알아볼까요.
자동차 판매는 '직영체제'와 '딜러체제'로 나뉩니다. 직영체제는 제조사가 대리점을 직접 운영하는 구조입니다. 후자는 제조사와 판매회사가 별도로 존재하는 구조입니다. 국내 수입차 판매구조는 임포터와 딜러사(판매회사)로 나뉩니다. 후자인 셈이지요.
임포터는 수입 차종을 결정하고 수입과 통관, 인증을 담당합니다. 광고와 마케팅 역시 임포터의 몫입니다. 한 마디로 수입차 제조사의 한국지사인 셈이지요. 한국지사는 각 지역별로 딜러사(社)를 선정합니다. 이들 딜러사에게 넉넉하게 마진을 주고 해당지역 판매권, 애프터서비스 권한을 줍니다.
수입차별로 차이가 있지만 공식적인 딜러사의 마진은 15% 안팎입니다. 때문에 10% 정도 가격을 할인받아 수입차를 구매하는 고객들이 많습니다. 단종을 앞두고 있거나 악성 재고로 분류된 모델은 최대 20% 안팎까지 할인율이 커지기도 합니다.
때문에 애초 수입차 임포터 또는 딜러사의 경우 개별소비세 인하, FTA에 따른 관세인하 효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수십만 원의 할인 효과는 고객의 관심을 모으는 계기일 뿐, 실제 수익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오히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 아침, 딜러사 대표들은 웃으면서 출근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빙판길에 사고를 당한 수입차들이 줄줄이 수리를 위해 대기하기 때문이지요. 이같은 사고차를 수리하면서 생기는 수입이 차 판매 수익보다 더 많습니다.
◇1억 원짜리 수입차, 반값에 구매하기?= ‘억’소리나는 수입차를 반값에 사는 방법도 존재합니다. 한 때 수입차 시장에서 왕왕 벌어졌다가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지면서 잠잠해진 편법이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한 임포터는 수입과 인증을 바탕으로 홍보와 마케팅 업무를 지원합니다. 딜러사에서 운영하는 시승차 가운데 일부도 이 임포터가 지원한 차입니다.
판매 가격이 1억원으로 책정된 고급 대형차를 예로 들어볼까요. 소매를 담당하는 딜러사는 본사에 시승차를 요청합니다. 본사는 시승차(신차)를 먼저 지원하고 시승 기간이 끝나면 나중에 차 값을 돌려받고는 합니다. 딜러는 처음 시승차를 받아 자사의 ‘법인명의’로 등록을 합니다. 여기에 보험을 추가해 시승차로 운영합니다.
이런 시승차는 6개월 또는 1년의 시승기간이 끝나면 중고차로 판매됩니다. 딜러는 이때 중고차 판매 대금을 본사에 송금합니다. 본사는 이때 발생하는 감가상각을 마케팅 비용으로 처리합니다. 이 과정에서 본사에 송금하는 중고차 판매금액은 시승운영 기간에 따라 달라집니다. 최대 절반만 본사에 되돌려보내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반값에 수입차를 구매하는 방법은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데요. 본사에서 받은 시승차를 딜러가 곧바로 특정 고객에게 전달합니다. 고객은 이 과정에서 차 가격의 절반 수준만 딜러사에 지불합니다. 그리고 신차를 받아 바로 운행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6개월 또는 1년 뒤, 즉 시승 운영이 종료되는 시점에 오너는 자신 이름으로 명의를 가져옵니다. 본사 입장에서는 서류상, 시승차로 운영 중인 차에 대해 세세하게 살펴보지 못합니다. 따라서 딜러사는 이를 악용하는 것이지요. “부지런히 마케팅에 이용하시라”는 명목으로 보냈던 시승차는 이미 누군가가 자기 차로 여기면서 이용 중이라는 것입니다.
모 지방딜러는 빈약한 월 판매량에 비해 십여 대의 시승차를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고객에게 팔린 차나 다름 없는 셈입니다.
이 과정에서 분쟁도 일어납니다. 딜러사가 파산하면 딜러 명의인 만큼 차를 압류당합니다. 본사와 딜러사 사이의 딜러십이 끝나도 차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엄연히 차 명의는 딜러사 법인명의로 돼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들어 각 수입차 회사들이 자사에서 인정하는 ‘인증 중고차’ 매장을 열고 있습니다. 시승차 가운데 일부도 수백가지 점검을 마치고 이 매장을 통해 팔립니다. 이 때문에 앞서 언급한 병폐도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또 다른 편법이 등장하고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할 수는 없겠지만, 공정한 거래와 선의의 피해자 발생을 막기 위해 본사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