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주·수출주 중심 매도 공세… 전문가 “국제유가 하락에 오일머니 이탈”
외국인이 코스피 시장에서 34일째 순매도 행진을 이어갔다. 7년 6개월 만에 역대 최장 순매도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가장 많이 팔아치운 종목은 ‘대장주’ 삼성전자였다.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날 2970억원 순매도했다. 지난 6일 한국항공우주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로 인한 순매수 전환을 제외하면 지난달 2일부터 이날까지 사실상 34거래일 연속 ‘팔자’ 공세를 벌인 셈이다. 2008년(6월 9일~7월 23일)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세운 33거래일 연속 순매도 기록도 이날 결국 깨졌다.
외국인의 순매도는 시가총액 상위 대형주·수출주에 몰렸다. 34일간 외국인의 자금이 가장 많이 빠져나간 종목은 삼성전자로 1조8200억원 순매도했다. 삼성전자우선주도 6000억원어치 팔아 치웠다. 이 기간 삼성전자의 주가는 132만원대에서 113만원대로 떨어져 14% 하락했다. 외국인들은 삼성생명(2600억원)과 삼성화재(2400억원)도 아낌없이 내다 팔았다.
하염없는 주가 내리막길을 걷는 포스코(3900억원)는 삼성전자의 뒤를 이었다. 시가총액 3위 현대차(2800억원), 5위 현대모비스(2200억원), 8위 네이버(1800억원)도 차례로 외국인의 장바구니에서 비워졌다.
이 같은 외국인의 대형주 집중 매도세는 그간 매수 패턴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상재 유진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중국 불안과 유가하락, 미국 달러 강세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외국인들이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에 대한 투자 비중을 줄이고 있다”면서 “업종 대표주를 중심으로 매수했던 물량을 다시 시장에 내놓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총 최상위 종목이 순매도 순위 10위권을 대부분 채운 가운데 최근 부진을 겪는 호텔신라(시총 85위)에서 2900억원의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갔다. 이와 관련 한 증권사 연구원은 “사실 호텔신라는 그동안 밸류에이션 논란이 있었던 종목”이라며 “원래 공매도가 많았는데 서울 시내 면세사업자 변경 이후 출혈 경쟁이 예상되면서 매도세가 더욱 거세졌다”고 분석했다.
대신 외국인은 수익성 개선이 기대되는 정유화학주와 경기방어주 일부를 순매수했다. 외국인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에는 한국전력(900억원), BGF리테일(840억원), SK이노베이션(770억원), 삼성SDI(700억원), LG생활건강(680억원) 등이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순매도 규모와 비교하면 조촐한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외국인의 순매도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현재 자금이탈은 국제유가 하락에 타격을 받은 오일머니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재 팀장은 “중동계 자금이 재정악화로 해외 투자를 환수하는 과정에서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투자 자금 유출로 연결됐다”면서 “불안 요인이 진정되기 전까지는 이탈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성환 부국증권 연구원은 “추가적인 유가 급락현상이 주춤하더라도 장기간 저유가 기조가 예상되는 만큼 외국인 순매도세는 좀 더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