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키즈 김 기자] 불참 잇따른 북미오토쇼… '모터쇼'와 '자국 텃세' 함수 관계는

입력 2016-01-0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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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 재규어 미니 등 불참… 美 자국산업 보호에 '부메랑'

2005년 서울모터쇼 때 일입니다. 이제 막 도요타와 혼다, 닛산 등 일본차 메이커 3인방이 한국 수입차 시장에 진출하던 무렵이었지요.

여느 모터쇼처럼 자동차회사별로 각각 30분간의 신차발표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당시 일본차 메이커 혼다는 중형세단 어코드와 함께 2족 보행 로봇 '아시모(ASIMO)'를 무대 위에 올렸습니다. 야심 차게 진출한 한국의 첫 모터쇼였지요. 신차가 소개되고 아시모가 등장했으며 마침내 혼다 한국법인 대표가 등장하는 순간, 일이 벌어졌습니다.

혼다의 바로 맞은편 부스에는 쌍용자동차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쌍용차는 혼다 발표회를 기다렸다는 듯 엄청나게 큰 음량으로 음악을 틀었습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전시장 지붕이 날아가는 줄 알았었지요. 바로 옆 사람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누가 봐도 혼다 발표 행사를 훼방을 놓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빠른 박자의 음악을 크게 틀기 시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노래 역시 남달랐습니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200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국제 수준 못지않은 서울모터쇼 텃세= 반복되는 ‘독도는 우리 땅’ 노랫말에 처음에는 “재밌네”라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너무하네, 조금 심하다”라는 웅성거림도 나왔었지요.

어디 쌍용차만 그랬을까요. 현대자동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현대차는 자신의 부스 앞에 버티고 서있는 도요타 부스가 눈엣가시였습니다. 총리가 참석할 예정인 행사장에서 보다 돋보이고 싶었기 때문일까요?

▲2007년 서울모터쇼 혼다 부스에 등장한 2족보행 로봇 아시모(ASIMO). 혼다는 서울모터쇼에서 종종 차별대우를 받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현대차 역시 일본에서 차별대우를 받다가 결국 '시장 철수'를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뉴시스)

토요타와 신경전(?)을 벌이던 그들은 “부스 벽면을 없애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양측의 실랑이가 이어졌고, 결국 도요타 부스의 벽면에 네모 형태의 커다란 구멍을 뚫어주는 것으로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이미 인테리어 공사를 마친 도요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재공사를 했습니다.

당시 서울모터쇼는 한 마디로 대한민국 자동차 회사의 텃세가 가득했던, 그런 행사였습니다. 일본 차 업체를 옹호하거나, 국산 차 업체를 비난하자는 게 아닙니다. 부끄럽지만 글로벌 주요 국제모터쇼를 다니면서, 어느 틈엔가 그런 모터쇼 텃세가 저 스스로 익숙해졌음을 고백합니다.

◇제네바 모터쇼, 5대 모터쇼로 성장한 이유는= 세계 5대 모터쇼는 미국과 독일, 프랑스, 일본 그리고 스위스에서 열립니다. 대부분 산업혁명 이후 자동차 산업이 급성장한 곳이지요. 이들 국가는 자동차를 많이 만들거나, 많이 수출하거나, 아니면 자동차가 제법 많이 팔리는 나라들입니다.

단, 예외는 있습니다. 바로 스위스 제네바입니다. 스위스는 기계와 금속, 전자산업이 발달해 있지만 유독 자동차와는 인연이 없습니다. 스위스를 모국으로한 자동차 회사가 없다는 것이지요. 하기야 전 세계에서 자동차 브랜드와 생산시설을 보유한 국가는 10여개 나라에 지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계와 정밀공업이 발달해 있으니 자동차 부품산업은 남부럽지 않습니다. 굴지의 자동차 부품기업이 이곳에 공장을 건설하고 완성차가 요구하는 부품을 조립하기도 합니다.

▲영원한 중립국 스위스에서는 어느 나라도 차별하지 않습니다. 모든 참가 메이커가 동일한 면적의 부스를 배정받아 공정한 경쟁을 치르는 셈이지요. 사진은 글로벌 5대 모터쇼로 추앙받아온 제네바 모터쇼 현장입니다. (사진제공=NEWSPRESS)

여기서 한 가지. 왜 버젓한 자동차 회사 하나 없는 스위스가 굵직한 모터쇼를 열고 있을까요. 스위스 인구는 약 800만명, 연간 자동차 판매는 30만대 수준입니다. 인구 5000만명에 연간 약 150만대의 자동차가 팔리는 한국과 비교해 본다면 5분의 1밖에 안 되는 시장입니다.

그런데도 스위스에서 열리는 제네바 모터쇼는 5대 모터쇼에 당당히 이름을 올립니다. 이유는 하나, 영원한 중립국 스위스에는 브랜드에 대한 차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뿐인가요. 자동차에 대한 평가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 이뤄지는 모터쇼이기도 합니다.

스위스 제네바 모터쇼는 세계 어떤 자동차 회사도 차별하지 않습니다. 잘나가는 현대기아차를 우대하거나 규모가 작다고 쌍용차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미국 GM이든 독일 벤츠든 한국의 쌍용차든, 모든 자동차 회사가 같은 규모의 전시 공간을 분양받습니다. 모터쇼에서 자국 텃세가 있을 수 없는 국가이기도 하니까요.

반면,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의 경우 독일 메르세데스-벤츠나 BMW는 주최 측의 특혜를 받아 건물 하나를 통으로 임대해 전시 부스를 차립니다. 행사장에는 일산 킨텍스에 버금가는 전시 건물이 7~8개나 됩니다. 전시 부스가 아닌, 전시 건물인 셈이지요. 프랑스 파리오토살롱도 푸조와 르노가 가장 큰 규모로 전시 부스를 차리고, 현대차는 한쪽 구석으로 밀려납니다.

▲2008년 리먼쇼크 이후 많은 국가가 "자국산업 보호"를 외쳤고, 자동차산업의 꽃으로 불리는 모터쇼 역시 이같은 맥락을 이어왔습니다. 독일 메이커는 모터쇼에서 아에 건물 전체를 빌려 전시회장을 꾸미기도 합니다. 사진은 프랑크루프트 모터쇼의 모습. (사진제공=NEWSPRESS)

◇텃세 넘버원은 북미오토쇼= 사실 이런 텃세는 미국이 가장 심합니다. 미국은 자동차 산업혁명의 근간이었던 디트로이트에서 해마다 모터쇼를 열고 있는데요. 전시공간의 위치와 규모, 발표 시간 등에서 미국 메이커를 우대합니다. 심지어 모터쇼 건물 바깥에도 신차를 전시할 수 있게 배려해 줍니다. 또 전시 부스를 박차고 나온 SUV가 건물 밖에서 험로주행 퍼포먼스를 하기도 합니다.

미국의 텃세는 어느 정도 이해는 됩니다. 자동차 대량생산을 처음 시작하고, 차 산업의 근간을 만들었던 미국입니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 유럽 메이커에 밀리기 시작하면서 벼랑 끝으로 몰린 이들이 처연한 몸부림을 치는 셈이지요.

그래서일까요? 마침내 굴지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하나둘 미국의 텃세가 심한 북미오토쇼를 등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는 11일 프레스데이를 시작으로 막을 올릴 예정인 북미오토쇼에서는 고성능 프리미엄 소형차의 대명사 '미니(MINI)'가 나오지 않습니다. 미니의 경우, 제품 주기가 북미국제오토쇼 행사 기간과 맞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히며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사실 미니는 2003년 북미오토쇼 올해의 차에 뽑혔던 차입니다. 그랬던 미니가 10여년 만에 불참까지 선언하게 된 것이지요.

그뿐인가요. 회사 주인이 인도로 넘어가기는 했지만, 영국의 자존심 재규어, 랜드로버 역시 북미오토쇼 불참을 결정했습니다. 이들은 “다른 행사에 집중하기 위해 이번 행사를 피하겠다”는 말을 남겼죠.

독일 초호화 고급차의 대명사 벤틀리 역시 북미오토쇼에 불참합니다. 중동 부호가 드나드는 두바이 모터쇼라면 모를까, 잘 팔리지도 않는 미국 동부에서 굳이 고급차를 전시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모터쇼 참가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작았다는 판단이 섰겠지요.

▲2016 북미오토쇼에는 굵직한 메이커들이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벤틀리, 미니, 테슬라, 랜드로버(출처=NEWSPRESS, 테슬라모터 홈페이지)

혜성처럼 떠오른 전기차 메이커 테슬라도 기존 빅 메이커들인 GM과 포드, 크라이슬러가 주도하는 텃세를 피하고자 불참을 알려왔습니다. 테슬라 역시 미국 브랜드지만 미국 토종 자동차회사 텃세의 피해자입니다. 지난 10월 미시간주는 전기차 테슬라의 판매를 불허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테슬라는 이에 대한 불만으로 모터쇼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잇단 자동차업체의 불참으로 세계 5대 모터쇼 가운데 견고한 철옹성을 자랑했던 미국 모터쇼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중국의 모터쇼인 '오토차이나'가 새롭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대규모 리콜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일본 자동차산업이 휘청이는 사이, 오토차이나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자국 자동차 시장을 무기로 빠른 외연 확장에 성공하고 있는 것이지요.

자칫, 그릇된 애국심이 그나마 힘겹게 버티고 있는 대한민국 자동차산업의 위상을 흔들어서는 안 되겠지요? 불참선언이 속속 이어지고 있는 올해 북미오토쇼를 반면교사 삼아 지켜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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