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추가 완화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놨다. 시장은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으나, 일각에서는 미국 금리 인상 이후 시장 혼란에 대비해 ‘실탄’을 남겨둔 최선의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3일(현지시간) ECB는 정례 통화정책회의에서 현재 마이너스(-)0.2%인 예금금리를 -0.3%로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경기 회복이 더딘 가운데 저물가 기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특단의 조치다. 마이너스 금리 확대는 은행들의 기업 대출을 촉진하기 위한 것으로 시장의 예상에 부합하는 조치다. 기준금리는 예상대로 현행 0.05%로 동결했다. 유로화 표시 채권 매입 프로그램은 2017년 3월까지 연장하고 매입 대상에 독일 주 정부 등이 발행하는 지방채도 추가하기로 했다. 다만, 자산 매입 규모는 기존대로 월 600억 유로로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자산 매입 규모 확대를 기대했던 터라 ECB의 이날 결정은 실망감으로 이어졌다. 이 영향으로 독일과 영국 등 유럽 증시는 3% 급락세로 마감했고,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한때 3% 넘게 급등했다.
ECB 위원회 내에서도 이번 결정에 한 목소리를 낸 건 아니었다. 드라기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결정이 만장일치를 통해 내려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드라기 총재가 25명으로 구성된 정책위원회 위원 중 5명을 제외하고 전원 설득에 성공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시장의 기대가 지나치게 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마크로 발리 우니크레디트 SpA 유럽부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의 기대가 너무 높았다. 이번 조치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였다”면서 “보수파의 의견이 반영된 것일 수 있지만, 드라기 총재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유동성 실탄을 남겨둔 것”이라고 말했다. JP모건의 사만다 아자렐로 애널리스트 역시 “이번 부양패키지가 시장에 실망감을 안겨줬지만, 결과적으로는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금리 인상을 앞두고 나온 선제 조치이기 때문에 향후 시장의 변동성에 대비해 양적완화 규모를 종전대로 유지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다음 회의에서 자산매입 규모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드라기 ECB 총재는 “이번 결정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인플레이션율을 2%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것으로 중장기 기대 인플레이션율을 안정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서 “이번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며 예금금리 인하는 ‘충분한’조치”라고 자평했다.
현재 유로존은 경기 침체와 저물가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지난달 유로존의 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0.1%였다. 이는 ECB의 목표치인 2%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다. 이에 드라기 총재는 지난 10월부터 “인플레이션을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거듭 강조했으며 2달 만에 행동으로 보여줬다. 이는 지난 3월, 연내 금리인상 가능성 시사하고 9개월 만에 이를 기정사실화한 미국 연준보다 과감한 행보라는 평가다. 이로써 ECB와 연준 간 정반대의 행보가 본격화하게 됐다.
한편 같은 날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상·하원 합동 경제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해 “금리인상을 미루면 시장에 혼란을 가중시킨다”며 이달 금리인상 가능성을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