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키즈 김 기자] 당신에게 추억을 선물합니다…오마주(Homage) 디자인

입력 2015-12-03 17:00수정 2015-12-0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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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회사에 처음 입사한 디자이너에게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현실은 스케치북을 채웠던 이상과 큰 차이를 지녔기 때문이지요. 차고 넘치는 ‘끼’와 센스, 경험과 지식을 지닌 신입 자동차 디자이너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바로 이것입니다.

“너, 끼부리지 마!”

◇특명, 멋진 차보다 잘 팔리는 차= 한국GM의 김태완 전 디자인총괄 부사장도 비슷한 경험을 들려줬는데요. 그는 스파크와 크루즈를 디자인했고, GM의 글로벌 소형차 디자인 전략에서 큰 축을 담당했던 거물급 디자이너입니다.

김 전 부사장은 꼭 새 차가 나오면 동시에 버려야 했던 다양한 프로토타입을 아까워했습니다.

“처음에 미니밴 올란도를 디자인할 때 멋진 디자인이 참 많이 물망에 올라왔어요. 딱 보면 차가 하늘을 날아갈 것처럼 생긴 디자인도 있었거든요. 아주 날렵하고 멋진 디자인이었었는데….”

그럼 그토록 멋진 디자인을 왜 포기했을까요. 그리고 왜 종이상자 모양의 평범한 올란도를 내놨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동차 디자이너의 의무는 멋진 차를 그리는게 아닙니다. 그들은 잘 팔리는 차를 디자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끼’를 부리기보다 ‘모두의 끼’를 찾는게 가장 중요한 임무인 것이지요.

▲피아트는 클래식 모델 500을 부활시켰습니다. 1957년 최초의 클래식 모델이 등장한지 반세기가 지난 2007년이었습니다. (사진제공=FCK)

자동차 디자이너(최근에는 ‘스타일러’라는 이름을 더 많이 씁니다)는 일상생활에도 제약이 많습니다.

어디에 가서 함부로 종이에 낙서조차 해서도 안되구요. 조카를 위해 멋진 자동차를 그려주는 것도 사규 위반입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 회사의 중요한 영업기밀인 디자인을 노출 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일과 삶이 인내의 연속이라해도 과언은 아닌 셈이지요.

◇ 새로운 디자인을 위한 처연한 몸부림=이러한 디자이너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자동차를 그려야한다는 강박관념이 가득합니다. 이미 잘 팔리는 다른 차를 대놓고 베낄 수 없습니다. 또 스스로의 자존심도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디자인 영감을 얻을 때마다 주변의 종이를 가져다놓고 바로바로 디자인 영감을 2차원으로 표현하고 기록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렇듯 언제나 새로운 디자인을 위해 싸우고 있는 디자이너들에게도 숙명과 같은 작업이 바로 오마주(Homage) 디자인입니다.

▲클래식 모델의 21세기적 재해석은 미니(MINI)에서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에 단종된 클래식 미니는 2000년 파리오토살롱을 발칵 뒤집으며 첫 등장했지요. 이후 미니의 부활은 많은 메이커에게 오마주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기 시작합니다. (출처=넷카쇼룸, BMW AG)

오마주 디자인은 단어 뜻 그대로 헌정 디자인입니다.

하나의 차 이름으로 맥을 이어온 것이 아닌, 이이 오래 전 단종된 모델의 디자인을 되살리는 작업을 주로 말하는데요. 과거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현대적 디자인 요소를 가미해 전혀 다른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셈입니다.

나아가 그 시절의 영광을 기억하며 추억을 찾는 고객의 본능을 끄집어내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끼 가운데, 추억을 찾는 이들의 끼를 노리는 것이지요.

아직 국내 자동차 산업은 역사가 짧은 탓에 이러한 오마주 디자인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저 기존 디자인의 답습이 존재할 뿐, 대놓고 자랑스럽게 “그 때 그 시절 디자인을 위한 헌정 자동차입니다”를 내세우는 차 회사는 없습니다.

◇미니에서 출발한 21세기 오마주 경쟁=이런 오마주 디자인은 역사가 깊은 메이커일수록 자주 등장합니다.

지난 2000년 파리오토살롱에서 만난 미니가 대표적이었는데요. 21세기 오마주 디자인의 첫 포문을 연 모델이기도 합니다. 1959년에 등장했던 클래식 미니 브랜드를 독일 BMW가 인수해 현대적 의미로 디자인을 재해석하고 새 모델을 만든 셈지이요. 물론 요즘은 클럽맨과 컨트리맨에 4도어 미니까지 다양한 가짜(?) 미니가 달리고 있지만 여전히 귀여운 디자인은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미니를 시작으로 다양한 자동차 회사들이 그 옛날 디자인을 다시 꺼내기 시작합니다.

미니에 버금가는 피아트 친퀘첸토(500을 의미하는 이태리어) 역시 21세기 해석을 담아 재등장했지요. 1957년 등장한 친퀘첸토를 50년만인 2007년 부활시키기도 했습니다.

▲1984년 사라졌던 토요타 랜드크루저(사진 위)는 20여년이 지난 2007년에 FJ 크루저(아래)로 부활합니다. 뚱뚱하고 못생긴 디자인이 여전히 투박합니다. 그러나 이런 점은 고스란히 상남자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기도 합니다. (사진제공=미디어토요타)

그 뿐인가요. 1960년대에 등장한 토요타 랜드크루저는 토요타 SUV의 출발점이었지요. 코드네임 J40은 2차대전 군용차를 양산형으로 개조한, 투박하기 그지없는 4륜구동차였습니다.

그렇게 1984년에 사라졌던 랜드크루저는 2006년 FJ 크루저라는 이름으로 부활했습니다. 기존 랜드크루저의 디자인만 뽑아내 새 차를 개발한 셈지이요.

예전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대신, 뚱뚱하고 못생긴 디자인에 균형미를 망쳤지만 그 시절 랜드 크루저의 부활이라는 명제 하나만으로도 가치가 엄청난 모델입니다. 투박한 겉모습은 상남자를 대변하기도 합니다.

BMW 역시 지난 2009년에 30년전 M1을 부활시켰습니다. 페라리와 람보르기니에 맞서기 위해 등장한 미드십 2인승 슈퍼카 였는데요. 30년이 지난 2009년에 재등장한 것이지요.

▲BMW는 1979년 M1을 추억하며 지난 2009년 30년만에 21세기 M1(사진 왼쪽)을 선보였습니다. 디자인에서도 잔뜩 독기를 품은 BMW의 오기가 서려있습니다. (사진제공=BMW AG)

◇한국형 오마주, 뉴 코란도의 부활=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런 오마주 디자인은 아직까지 국내 시장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내 1위 메이커인 현대자동차의 경우 더 많은 시장에, 더 많은 차를 판매하는 데 우선 순위를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포니 디자인을 부활시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다행입니다. 쌍용자동차가 이 오마주 디자인을 준비 중이거든요.

이러한 디자인 작업의 주인공은 1990년대 초, 이른바 뉴 코란도(구형이지만 세대 구분을 위해 항상 ‘뉴’가 따라 붙습니다) 개발에 참가했던 디자이너 이명학 대리입니다. 그는 요즘 밤잠을 줄여가며 새로운 뉴 코란도의 디자인 해석을 준비 중입니다.

처음 뉴 코란도가 나온지 20년이 지난 지금, 그 시절 장발머리를 고집했던 꽃띠(?) 디자이너 이명학 대리는 이제 흰머리가 가득한 쌍용차 디자인총괄 상무가 되어 있습니다. 쌍용차가 최근 모터쇼에 내세운 XAV 컨셉트가 바로 뉴 코란도의 오마주입니다.

쌍용차는 요즘 잘 나가는 SUV 티볼리에 조만간 롱보디 버전이 추가될 예정입니다. 뉴 코란도를 빼닮은 새로운 XAV는 이 티볼리 롱보디를 베이스로 개발 중입니다. 2018년께 양산 출시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우리에게도 오마주 디자인이 찾아왔습니다. 새로운 뉴 코란도를 기다리는 마음은 여러분도 저도 모두 마찬가지랍니다.

▲한국에도 마침내 오마주 디자인이 등장할 예정입니다. 바로 2015 서울모터쇼에 쌍용차가 공개한 콘셉트카 XAV인데요. 2018년께 티볼리 롱보디를 바탕으로 등장할 예정입니다. 한눈에 봐도 1996년 뉴 코란도를 빼닮은 모습입니다. (사진제공=쌍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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