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그러자 탁문군은 사마상여를 따라 청두(成都)에 있는 그의 집으로 야반도주(夜半逃走)를 했다. 사마상여의 집은 너무 가난해 방 안에는 살림살이 하나 없이 사방으로 벽만 둘러져 있었다. 그래도 탁문군은 그와 백년가약을 맺고 술집을 차려 생계를 꾸려 갔다. 나중에 한무제가 사마상여의 글을 읽고 크게 기뻐해 도성으로 불러 벼슬을 내렸다. 사마상여는 필명을 크게 떨치며 일세의 대문장으로 우뚝 섰고, 탁씨 집안에서도 더 이상 그를 깔보지 못했다.
사마상여와 탁문군의 사랑은 많은 드라마 연극 영화 만화로 만들어졌다. 이들의 고사에서 나온 말이 가도벽립(家徒壁立), 가도사벽(家徒四壁)이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나오는 원문은 ‘家居徒四壁立’이다. 徒는 한갓, 헛되이, 보람 없이라는 뜻이다. 도난인의(徒亂人意)라고 하면 ‘공연히 남의 마음만 뒤숭숭하게 만든다’는 말이다.
“문장은 서한(西漢)의 두 사마(司馬)요, 경제는 난양(南陽)의 와룡(臥龍)이다”라는 말이 있다. 문장이라면 한무제 때의 문인이었던 사마상여와 사마천(司馬遷)을 꼽고 경세제민(經世濟民)으로는 제갈량을 친다는 뜻이다. 근대 중국의 문호 루쉰(魯迅)도 ‘한문학사강요(漢文學史綱要)’에서 “부(賦)는 사마상여만 한 이가 없었고, 문(文)은 사마천만 한 이가 없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