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계절이 지났다. 매년 찾아오는 가을이 아쉬워 발을 동동 구르게 되는 건, 찰나이기 때문이다. 뭘 위해서 이렇게 바쁘게 사는 건지. 낙엽 한번 밟아보지 못한 서러움이 복받쳐 리뷰 핑계로 바람이나 쐬고 왔다. 함께한 제품은 아주 예쁜 카메라다. 개인적으로도 본래 좋아하는 후지필름 인스탁스 시리즈의 신제품, 인스탁스 미니 70.
가을 나들이를 함께하기에 스마트폰 카메라나 DSLR은 너무 낭만 없는 기기다. 즉석 카메라는 조금 다르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괜히 긴장하게 되고, 필름에 인화된 색감도 더 따뜻하다. 우리가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면서 ‘즉석 카메라’ 느낌의 필터를 입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게 더 감성적이니까.
맘 먹고 감성놀이를 하고 온 후기다. 덧붙여 제품 특징도 소개한다.
[사진을 기다리는 멍멍이.jpg]
나는 인내에 인색한 사람이다. 뭐든 기다리는 건 질색이다. 유튜브의 5초 후 광고 스킵도 못 기다려 마우스를 연신 두드려대곤 한다. 그런데 즉석 카메라라니. 사진이 인화될 때까지 100초나 기다리라니. 못 참을 것 같지? 근데 이건 좀 다르다. 사발면에 물을 붓고 기다리는 시간처럼 괜히 설렌다.
[사진이 잘 나왔다고 생각하는 멍멍이.jpg]
사진이 어떻게 나왔을까. 혹시 눈을 감은 건 아니겠지. 내가 의도한 구도대로 촬영이 잘 됐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필름에 점점 색이 번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어떨 땐 아직 희뿌연 필름을 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한참 후에 확인하곤 한다.
이 기다림은 즉석 카메라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다. 사실 앞서 말했듯 사진을 더 쉽게 찍을 수 있는 방법은 많다. 하지만 생각 없이 셔터를 눌러 촬영한 수십 장의 디지털 이미지는 언젠가 잊혀지기 마련이다. 촬영이 쉽다 보니 너무 자주, 많이 촬영해 파일이 흘러넘치는 것도 문제다. 더 선명하고 공유하기 쉬운 방식일진 모르지만 소중하지 않다. 그러나 필름 속에 인화된 진짜 사진은 영원히 추억할 수 있다.
실제로 손으로 만지고,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인화된 사진은 지갑 속에 넣어놓을 수도 있고, 책상 한편에 붙여두고 수시로 감상할 수도 있다. 나도 지금 사무실 PC 바로 옆에 인스탁스 미니 70으로 촬영한 사진을 붙여두었다. 문득문득 일하기 싫어지는 순간마다 가을 냄새나는 사진을 바라본다. 이건 분명 디지털 파일이 줄 수 없는 친근한 경험이다.
제품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자. 일단은 예뻐서 좋았다. 본래 내가 사용하는 제품은 인스탁스 미니 8 핑크 컬러다. 처음 이 제품을 살 때만 해도 20대였는데, 30대가 되고 나니 지나치게 사랑스러운 디자인이 간혹 남사스럽다. 소녀 취향의 여리여리한 파스텔톤 컬러와 깜찍한 디자인은 인스탁스 시리즈의 매력 포인트지만, 난 이제 살짝 더 도시적인 디자인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인스탁스 미니 70의 디자인은 바람직하다. 일단 더 가볍고 슬림해졌으며, 디자인도 여러모로 덜어냈다. 화이트, 옐로, 블루의 산뜻한 컬러 역시 과하지 않고 스타일리시하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남자 사람이 들고 다니기에도 전혀 위화감이 없는 모던함을 득템했달까. 내가 리뷰한 모델은 오래 사용해도 질리지 않는 화이트 컬러.
나는 가을 여자니까 억새밭에서 사진을 찍는 컨셉으로 포즈를 취해보았다. 분명 굉장히 분위기 있는 사진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상상과는 다르다. 트렌치코트를 입고 카메라를 손에 쥔 내 모습은 어쩐지 야생에서 사냥감을 노리는 밀렵꾼 같다. 조금 더 좋게 보면 조류학자…? 모델 불량인가.
어쨌든 신나게 사진을 찍어보았다. 따뜻한 색감이 좋다. 해지기 직전이라 억새가 햇빛을 받아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인스탁스 미니70로 촬영한 사진을 다시 스캔한 것이라 조금 뭉개졌지만, 확실히 이전 모델보다 사진이 훨씬 더 잘 나온다. 보통 햇빛이 강할 때 찍으면 사진 일부가 날아가거나 디테일이 뭉개지는 일이 있었는데, 미니 70은 그런 현상이 전혀 없다. 억새의 모습이나 색깔이 아주 선명하게 담겼다.
일부러 역광 촬영도 해보았다. 예전에 딱 이런 각도로 찍었다가 필름만 버린 일이 몇번 있었는데, 이번엔 성공했다. 피사체의 모습을 살리되 실루엣을 강조해 근사한 사진이 나왔다. 이 제품은 자동 노출 제어 기능을 지원해, 특별한 설정을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주변 밝기를 감지해 셔터 속도와 플래시 양을 조절해준다. 실내 촬영처럼 사진을 망치기 딱 좋은 어두운 환경에서도 자연스러운 밝기를 연출해준다는 것. 화사하게 촬영할 수 있는 하이키모드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선명하게 나오는 사진을 좋아해 하이키모드는 선호하지 않는다.
기능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설정할 수 있는 촬영 모드야 간단하다. 타이머 기능을 사용할 수 있으며 풍경모드와 접사모드를 지원한다. 특이한 점은 셀카모드다. 아예 버튼을 따로 만들어놨다. 아이콘도 귀엽다. 카메라를 들고 스스로의 모습을 찍으려 하는 저 깜찍한 아이콘을 보라.
셀카 모드는 이 제품의 화룡점정이다. 즉석 카메라의 맹점은 셀카를 찍기 힘들다는 것이 아니던가. 화각을 확인하기도 어렵고. 설령 각도를 잘 잡아 촬영한다고 해도 희뿌옇게 나오기 일쑤다. 귀신처럼 날아간 얼굴에 눈코입만 간신히 달려있는 셀카를 경험해 본 이들은 내 말을 이해할 것. 그런데 인스탁스 미니 70은 셀카에 모든 것을 걸었는지, 내 얼굴을 촬영할 때가 제일 잘 나온다.
너무 잘 나오길래 여러 장 찍었는데… 신성한 리뷰에 내 얼굴을 박아 넣기가 멋쩍어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모델 사진으로 대체한다. 전면에 달린 거울을 통해 대략적인 각도를 잡고 찰칵! 셀피 모드로 찍은 것과 일반 모드로 찍은 사진의 차이가 굉장히 크니 반드시 설정을 바꾸고 촬영하시길. 아무리 팔을 힘껏 뻗어도 초근거리 촬영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사람 얼굴에 기가 막히게 초점이 맞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머리카락이나 피부결도 자연스럽게 표현되며, 뒷배경이 날아가거나 시커멓게 되는 일도 없다.
CR2 배터리 2개로 구동하며, 최대 400매까지 인화 가능하다고. 현재 50장 정도 인화한 것 같으니 아직도 한참은 더 쓸 수 있다. 배터리도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필름 종류도 다양하니 취향에 맞게 화사한 필름을 골라보자. 스트라이프 패턴이나 유니크한 코믹 패턴의 미니필름을 고르면 사진이 더 재밌어진다. 인화한 사진을 친구들과 나누고 냉장고에 붙이고, 책상 옆에 붙이고, 지갑 속에 한 장 넣고 나니 마음이 든든하다. 몇 장 예쁘게 늘어놓고 찍어서 인스타그램에도 업로드한다. 이렇게 짧은 계절을 간직하게 되는 것이다. 즐거운 리뷰였다.
The post 즉석 카메라가 즐거운 이유 appeared first on GEARBA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