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는 22일 ‘5자회동’을 통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비롯해 경제 전반의 문제 등 다양한 쟁점을 놓고 얼굴을 붉혀가며 치열하게 논의를 나눴지만 견해차만 확인한 채 끝내야 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국정화에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야당의 의견을 청취하고 노동개혁을 통한 청년일자리 해결과 경제활성화법,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처리 등을 호소했다. 하지만 야당은 “거대한 절벽과 마주하는 느낌”이라며 회동 결과에 실망감을 내비쳤고 여당 역시 “비슷한 심정을 느꼈다”고 밝혔다. 다만 여야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원내수석부대표 등 원내지도부는 ‘3+3 회동’을 통해 처리할 법안을 논의키로 했다.
이날 참석자인 새누리당 김무성·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새누리당 원유철·이종걸 원내대표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쟁점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입장차만 확인하고 끝냈다.
이날 1시간 50분가량 이어진 회동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쟁점은 역시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였다. 주로 새정치연합에서 교과서 문제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여기에 새누리당에서 준비한 자료까지 꺼내들며 맞받아치는 형국으로 치열한 논의가 오고갔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먼저 언급한 것은 문 대표였다. 그는 “친일·독재에 대해 미화를 시도하는 국정교과서 추진을 중단하고 민생과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대표는 새누리당이 플랜카드를 걸었다가 철거한 것을 놓고 문제를 제기했고 “교과서 검인정 문제는 검정을 제대로 못한 교육부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 대표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아직 집필진도 구성이 안 돼 있고 역사책도 따로 써지지 않고 있는데 왜 그런 발언을 하나. 그동안 참고 있었는데 그만 하시기 바란다”고 반박했다. 김 대표는 “왜 우리 아이들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배워야하나”라며 “(이런 내용들이) 교사용 지도서에 나와 있어서 선생님들 입으로 우리 아이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플랜카드에 대해 “여의도에 보궐선거가 있어 선거법에 위반된다고 해서 선거 있는 지방만 철거한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야당에서 친일과 독재를 미화한 교학사 교과서 사례를 들자, 김 대표는 “교학사는 국정교과서가 아니지 않느냐. 걱정이 되면 집필진 구성에 참여해라. 더 이상 옳지 않은 주장 하지마라. 이 문제는 국사편찬위에 맡기자”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도 국정화 논란에 대해 “현재 교과서는 우리 현대사를 태어나서는 안 될 정부가 못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이런 패배주의 바로 잡자는 순수한 뜻”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박 대통령은 △노동개혁 5개 법안과 경제활성화 법안의 조속 처리 △한중 FTA 비준안 11월 중순까지 처리 △내년도 예산안의 법정 시한 내 처리 등을 요청했다. 박 대통령은 노동개혁과 관련해 “우리 아들, 딸들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부모님에게 안정된 정년보장을 위한 것”이라며 “여야 원내대표들이 경제활성화 법안의 신속한 처리에 합의한 만큼 이번 정기국회 내에 반드시 처리해 달라”고 말했다.
문 대표는 회동 이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늘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일치되는 부분이 안타깝게도 하나도 없다”며 “박 대통령의 역사인식에 절벽같은 암담함을 느꼈다”고 반응을 내놨다. 그러면서 “한 마디로 왜 보자고 했는지 알 수 없는 회동”이라며 “모처럼 회동을 통해서 국민들께 아무런 희망을 드리지 못해서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김 대표는 “같은 교과서를 놓고 해석이 다르고 해법이 다르고 법안에 대해서 또 서로 해석이 달라서 뭐 저도 비슷한(암담함을) 걸 느꼈다”면서도 “우린 여당이니까 이걸 풀어야 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고 계속 노력하겠다”고 언급했다.
여야는 이후 추가 논의 및 협상안 마련을 위해 이른 시일 내에 ‘3+3 회동’을 개최할 계획이다. 새누리당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주 후반에 개최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