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와 여성, 2부-②] "女프로골퍼 문화처럼 선순환구조 완성되면 여성임원 더 많아질 것"

입력 2015-08-26 10:49수정 2015-08-2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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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하영구 은행연합회장 "정부·CEO가 스폰서로 나서야… 시간선택제·임금체계 개선 앞서 경단녀 만들지 않는 기업문화 필요"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시간선택제·임금체계 개선에 앞서 경단녀를 만들지 않는 기업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경단녀(경력단절여성) 활용이요? 시간선택제, 임금체계 개선 등이 있겠죠. 그러나 이들 모두 해결책에 불과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경단녀를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경단녀 활용에 대한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의 관점은 확고했다. ‘위미노믹스(Womenomics, 여성의 경제 참여를 통한 경제성장)’ 시대보다 진지한 고민이었다.

1980년대 씨티은행에 입행한 하 회장은 지난 30여년간 그 누구보다 여성 금융인들의 지위 향상에 앞장섰다. 인종, 출신, 성별에 상관없이 능력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씨티은행의 다양성 문화가 그 배경이 됐다.

“1981년 씨티에 입행했을 때 두 분의 여성 임원이 있었어요. 극도로 보수적이던 당시 금융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죠. 저도 처음엔 놀랐어요. 자연스레 다양성을 존중하는 글로벌 기업 문화를 흡수했어요. 그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 배경, 학력, 인종, 성별은 상관 없어요. 중요한 건 능력이죠.”

하 회장이 수십년간 몸 담은 씨티은행은 금융권에서 양성 평등이 가장 잘 갖춰진 곳으로 꼽힌다. 일과 삶의 균형(Work & Life Balance), 자기계발을 장려하는 조직문화가 뿌리깊게 박혀 있다. 이 때문에 금융권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유독 씨티은행 출신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대표적 인물이 조윤선 전 여성가족부 장관이다. 조 전 장관은 김앤장 변호사로 일하다 2007년 씨티은행으로 자리를 옮겨 1년여간 하 회장과 함께 일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조 전 장관은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며 부행장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해 해냈다. 이 같은 그의 모습은 하 회장의 뇌리에 깊게 박혀 깊게 박혔다.

“기억에 남는 여성금융인들은 많죠. 조 전 장관이 대표적인 것 같네요. 기업부문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사라 김 최고재무책임자(CFO), 비즈니스 라인에 있던 유명선 부행장, 가장 많은 직원이 속해 있던 업무지원본부를 진두지휘한 김명옥 부행장도 제가 존경하는 여성 금융인들입니다.”

수십년간 금융권 ‘여풍(女風)’의 중심에 서 있는 하 회장. 그가 바라본 금융권 여성인력 활용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또 그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인터뷰를 통해 그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금융권 여성고용률은 50%에 달할 정도로 높은 편입니다. 그러나 여성 임원 비율은 턱없이 낮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다.

“한국 여성인력고용 비율은 글로벌 기업과 비교하면 거의 차이가 없어요. 문제는 임원이죠. 아직 우리나라 여성의 다양성이 선순환구조에 접어들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한국 금융권이 여성 프로골퍼 문화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KLPGA가 세계 무대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지 않습니까. 선순환구조가 완성됐기 때문이에요. 우선 선수층이 두꺼워요. 플레이할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예요. 선수층이 두꺼우면 그만큼 스폰서도 많아지죠. 자연스레 대회가 잦아지고 상금이 올라가요.

목표도 분명하게 설정돼 있죠. 박세리 선수의 업적이 여성 골퍼들의 지향점, 좌표가 됐잖아요. 이런 것들이 모이다 보니 대중들의 관심도가 높죠. 이게 바로 선순환구조예요.

일단 한국 금융권 여성인력은 풍부한 편입니다. 플레이어가 많다는 얘기예요. 그런데 지원이 부족해요. 골퍼로 따지자면 스폰서로 CEO나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여성 인력에 대한 풀(pool)을 확보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성 인력에게 기회를 주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해요. 이 과정에서 지향점이 될 수 있는 임원들을 많이 배출해야 합니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여성임원 할당제가 거론되고 있는데요. 한국 금융권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장단점이 있어요. 정책적인 부문을 고려해야겠지만 전반적으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입니다. 금융권 여풍이 현장으로까지 전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여성임원 할당제를 도입하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요.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유럽 쪽 국가에서 여성임원 할당제를 실행하고 있는데 이 나라들은 할당제를 시작해서 여성들이 임원까지 오른 게 아니에요. 여성 임원들이 많이 포진돼 있는 상황에서 할당제를 실시해 모멘텀이 생긴거죠. 물론 내가 여성임원 할당제를 반대하는 건 아니에요. 좀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거죠.

재미있는 집계가 있어요. IMD나 월드이코노믹포럼 조사 결과를 보면 기업 이사회의 역할과 여성 임원 비율이 깊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어요. 사회의 투명성이 높은 나라가 여성인력의 활용도도 높다는 얘기예요. 많은 것을 시사하죠.”

△말씀하신 내용은 결국 조직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되는 데요. 좀 더 구체적 방안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인력을 키우는 게 중요해요. 인력개발의 중요성 중 하나가 다양성 확보입니다. 다양성 확보를 위해 인재 풀이 어떻게 되느냐, 부족한 게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CEO나 정부의 스폰서십이 필요하다는 게 이런 이유죠.”

△여성 금융인들의 강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른 조직으로 이동했을 때의 적응력이 뛰어나요. 유연성이 좋죠. 예전에 직원들에게 농담으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씨티은행서 일하다 그만둔 사람들 모두 다른 회사 가서 더 잘한다고. 그만큼 적응 능력이 빠르다는 뜻이에요. 남자 직원들은 여성들보다 유연성이 부족한 것 같아요.”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의 여성금융인 활용 현주소는 어디인가요.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처럼 유리천장이 완전히 깨졌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그러나 여성 인력 채용 면에서는 거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급하게 따라잡으려고 해서는 안돼요. 미국도 오랜 시간을 거쳐 경력(커리어)이나 교육을 시행해 왔어요. 다른 업권보다 여성인력이 많이 배치돼 있고 중요 업무에도 많이 포진돼 있는 금융권이 앞장서야 해요.”

△CEO들의 인식 변화가 중요한 거네요. 은행권 CEO들도 공감하고 있는 부분인가요.

“실제로 여성인력과 같이 일해보지 않으면 느끼기 쉽지 않아요.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은행권 여성 임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두드러진 업무 성과를 내고 있다는 거예요. 직접 같이 일하고 호흡한 CEO들이라면 여성 금융인들의 능력을 인정하겠죠. 많은 행장들이 이미 그 부분에 대해 인정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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