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경 국제팀장
세계적인 검색공룡 구글의 회사명이 길어졌다.
‘알·파·벳(Alphabet)’, 세 음절이 아니다. 알파벳 스물 여섯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사실은 무한대다. 알파벳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의 수를 셀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지난 10일 구글은 지배구조 개편 발표와 함께 혁신을 향해 가로놓인 벽을 스스로 허물었다. 투자 부문인 구글벤처스와 구글 캐피털, X랩스, 무인항공기, 택배 프로젝트 윙, 생명공학을 연구하는 칼리코 등은 기존 구글과 함께 지주회사인 알파벳 산하에 편입된다. 순다르 피차이가 이끄는 구글은 광고와 모바일 검색, 비디오 등 기존 사업에 주력하며 수익을 창출한다. 여기서 나오는 자금을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이끄는 투자 부문에 쏟아붓게 된다.
이들 3인방은 완벽한 사업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 피차이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한편, 페이지와 브린은 안심하고 야심찬 장기 프로젝트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글에겐 알파벳으로서의 새출발이 10년, 100년을 내다본 ‘불멸의 프로젝트’인 셈이다.
인터넷이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되는 세상이 올 줄 누가 예상했으랴. 페이지와 브린은 일찌감치 검색엔진과 크롬, 안드로이드 같은 인터넷 플랫폼으로 수익을 창출하며 세계 최대의 검색엔진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 한편으로 구글은 다양한 기업을 인수하고 새로운 분야에 손을 대는 등 사업 다각화에도 공을 들였다. 자율운전자동차, 건강관리, 무인항공기, 스마트홈 분야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혁신에 제동을 건 것이 자본주의 논리다. 혁신과 투명성은 공존할 수 없는 것일까.
구글은 지난 2004년 기업공개(IPO)를 하면서 ‘20% 룰’을 내세웠다. 모든 직원이 일반적인 노동 시간 중 일정 시간을 사용해 자신이 착수할 멋진 프로젝트를 생각해 낼 수 있게 하는 제도였다. 20% 룰을 통해 탄생한 것이 Search, Adwords, Toolbar, News, Gmail, Maps, Earth, Analytics 등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구글 내에선 20% 룰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직원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상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본업과 관련 없는 업무는 일과 시간 이외에 진행해야 하는 등 몸집이 커지면서 근무 환경이 까다로워졌다.
엔지니어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구글에 이는 심각한 사안이었을 것이다. 자유로운 발상과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성장한 이들에게 관리자나 그 이외의 역할이 요구되면서 혁신에 대한 동기 부여가 희미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페이지와 브린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사장이라는 직함 따위는 엔지니어였던 이들에게 혁신을 가로막는 거추장스러운 타이틀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이들이 알파벳이란 지주회사를 만들고 스스로 그 밑으로 들어가기로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페이지는 이번 조직 개편과 관련한 서한에서 알파벳의 의미에 대해 투자로 기대 이상의 수익을 거둔다는 의미의 ‘알파’와 도박을 뜻하는 ‘베팅’이라고 설명했다. A부터 Z까지 다양한 분야에 투자해 구글처럼 성공한 사업이 하나라도 나온다면 결코 손해 보는 투자는 아니다.
이는 우리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침체됐던 일본 기업들이 아베노믹스와 엔저를 등에 업고 연구·개발(R&D)에 사상 최대 규모의 자금을 쏟아붓는다는 소식을 얼마 전 접했다.
그동안 대기업을 중심으로 중국 시장 의존도를 높여왔다가 된서리를 맞은 한국과 대조적이다. 중국이 흔들리면서 한국 역시 휘청거리고, 기업들의 실적은 만신창이다. 대규모 R&D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페이지는 지주회사 설립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브린과 나는 지금까지 ‘미쳤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실현시켜 왔다. 잘 나가는 기업은 현상유지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기술 업계에서는 그렇지 않다”며 “앞으로도 미쳤다고 생각되는 프로젝트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지주회사제로 전환한다”고.
알파벳의 출범에 대해 기대반 우려반이다. 그러나 구글도 애초에 그렇게 출발했다. 구글의 원래 이름은 등을 긁어준다는 의미의 ‘BackRub(백럽)’이었다. 1997년 페이지와 브린이 지금의 이름을 붙이기 전까지는. 그때 이들이 회사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면 우린 지금 ‘구글링해볼래?’ 라는 말 대신에 ‘등 좀 긁어줄래?’라는 우스꽝스러운 표현을 늘상 쓰고 있을 거다.
구글이 검색의 대명사가 된 것처럼 알파벳도 언젠가 혁신의 대명사가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도 먼 미래를 내다보고 혁신에 도전하는 기업이 나와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