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공개변론
지난 14일 헌법재판소에서는 화학적 거세를 규정한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 4조 1항과 8조 1항에 대한 첫 공개변론이 열렸다.
이번 공개변론은 과거 보호감호 처분을 받았던 성범죄자가 화학적 거세를 규정한 법률의 위헌성을 지적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에 따른 것이다.
이날 공개변론에서는 화학적 거세 제도의 실효성부터 성범죄의 근본적 원인까지 다양한 토론이 이뤄졌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화학적 거세에 대한 위헌성은 무엇이고, 외국에서는 화학적 거세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본다. [편집자 주]
◇당사자 동의 없는 ‘화학적 거세’…헌재 입성=화학적 거세를 규정한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 4조 1항은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성도착증 환자로 성폭력 범죄를 다시 저지를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19세 이상 범죄자에게 검사가 약물치료명령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또 8조 1항은 치료명령 청구가 이유 있다고 인정되면 법원이 15년 범위에서 치료기간을 정해 판결로 치료명령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두 조항에서 보는 것처럼 화학적 거세를 당하는 당사자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은 없다. 이 때문에 화학적 거세법은 제정 당시부터 인권침해 가능성 등 논란이 적지 않았다.
이에 대전지법은 지난 2013년 미성년자 성추행 혐의로 기소된 임모씨의 재판에서 법원의 명령으로 화학적 거세를 집행하도록 한 법 조항이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다며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당시 재판부는 신체의 완전성을 강하게 훼손하는 것은 헌법 12조에서 보장한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자유를 침해하며, 당사자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생략돼 헌법 10조에서 보장한 자기결정권도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아직까지 화학적 거세의 치료 효과를 놓고 과학적으로 검증된 연구 결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약물치료제도를 도입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당사자 동의를 필수 요건으로 정한 점 등을 근거로 입법목적의 정당성은 있을지라도 수단의 적절성 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후 헌법재판소는 대전지법이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것을 수용, 지난 14일 화학적 거세를 규정한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 4조 1항과 8조 1항에 대한 첫 공개변론을 열었다.
◇화학적 거세, 위헌 vs 합헌…갑론을박=이날 헌법재판소는 성(性)범죄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가 위헌인지 여부를 가리기에 앞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폭넓게 들었다.
전문가들은 화학적 거세에 대해 ‘재범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주장과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과잉처분’이라는 주장이 격돌했다.
우선 화학적 거세 합헌성을 옹호하는 법무부 측 대리인은 “화학적 거세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은 성폭력 범죄의 심각성과 사용 약물의 안정성을 이해하지 못한 제청”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성도착증은 징역형 등 자유형 집행 중에는 겉으로 완화된 것처럼 보여도 출소 후 사회에서 자극에 노출되면 다시 발현될 가능성이 높다”냐 “성도착증 환자의 범죄는 예방이 불가능해서 약물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그는 “성폭력범죄는 인격살인으로 지칭될 정도로 피해자의 정신적·신체적 피해가 크다”며 “성도착자에 의한 성폭력 범죄의 근절이라는 공익적 요청이 크다”고 설명했다.
반면 화학적 거세의 위헌성을 주장한 청구인 측 법률대리인은 “화학적 거세가 제도의 도입 목적인 재범률을 낮추는 데 미치는 효과를 논할 수 있는 학문적 연구나 사례가 없다”며 실효성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어 청구인 측은 “화학적 거세는 치료대상자의 성적 정체성에 불가역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의를 구하지 않는 강제적 약물치료는 치료대상자의 인격권을 침해한다”고 강조했다.
재판관들 역시 “치료명령 선고 이후 장기간의 수감생활을 거치고도 치료의 필요성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의학적 연구결과가 있느냐”, “성적 충동이 아니라 가학적 행위 등에서 오는 지배욕구에 의해 성폭력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지 않느냐” 등 심도 있는 질문을 주고받았다.
한편 헌재는 이재우 공주치료감호소장과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장 송동호 교수를 참고인으로 불러 의견을 듣고, 이르면 올해 안에 위헌 여부를 가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