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人맥]암흑기 보낸 금피아, 전문성 앞세워 부활 꿈꾼다

입력 2015-04-01 10:57수정 2015-04-0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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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銀 감사에 주재성 前부원장 물망… 김성화·전광수 등 감사·사외이사로

“남 일 같지 않네요. 금감원 퇴직자 취업제한 기간 2년, 이거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나요.”

금융감독원 관계자들은 최근 1년간 금융감독원 퇴직자들의 방황(?)을 놓고 이같은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이맘 때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 논란이 거세지면서 금감원 출신들의 재취업도 길이 막혔다. 금감원 퇴직 후 관련 협회나 금융회사 감사, 사외이사 등 요직을 꿰찼던 호시절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금융권 요직에는 금피아(금융감독원+마피아) 출신 인사들이 어엿한 주류로 자리 잡았다. 주인없는 은행에서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권력집단으로 부상했다. 불필요한 규제와 금융기관의 경영능력이 직결되는 상황에서 권력 재생산을 위한 금피아 내 끈끈한 유대관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여기에 민간 금융회사가 규제산업이라는 척박한 경영환경에서 금피아 출신 인사를 방패막이로 활용하려는 전략이 금피아의 권력집단을 더욱 부추겼다.

◇금피아 전성시대, 한물 갔다? = 올해 초만 해도 지난 1년간 금감원에서 퇴직한 고위 임원 중 재취업에 성공한 인사는 한 사람도 없었다. 현역 시절 업무와 연관성이 없으면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취업할 수 있지만 사회 분위기상 심사신청 사례가 한 건도 없었던 것이다. 급기야 금감원이 나서 예탁결제원, 자산관리공사(캠코), 금융연수원 등으로 재취업시키는 방안을 들고 나왔다. 권인원 전 금감원 부원장보가 주택금융공사 상임이사로 내정된 것이 간만에 들려온 재취업 소식이었다. 이어 예탁원이 지난 24일 박임출 전 자본시장조사2국 국장을 신임 상무로 선임했다. 박영준 전 부원장은 캠코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권혁세 전 금감원장은 이달 취업제한 기간(2년)이 끝난다. 기존 업무와 상관없는 민간기업으로도 갈 수 있는 ‘자유의 몸’이 된다는 의미다.

지난 2월 금감원 1층 로비는 암울 그 자체였다. 금감원 임원 4명이 전부 임기(3년)를 채우지 못하고 1~2년 만에 조기 퇴임했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점에서 무거운 분위기가 이어졌다. 사실 금감원 출신 인사의 재취업 길이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다. 엄밀히 규정한다면 ‘취업제한’ 대상이 아니라 ‘심사’ 대상이다. 기존 업무와 연관성이 없으면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심사를 거쳐 취업할 수 있다. 은행 업무를 맡았던 금감원 전 임원은 심사를 거쳐 보험사나 증권사 재취업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사회적 분위기가 이를 가로막는다. 앞서 금감원은 3년 전 저축은행 사태 당시 이른바 낙하산 감사들의 비위가 드러나자 향후 낙하산 인사를 원천 봉쇄하겠다고 선언했다. 금융권에 대한 감사추천제 폐지나 퇴직 후 2년간 퇴직 전 5년간 속했던 부서의 유관업무에 취업하지 못 하도록 하는 공직자 윤리법 규정을 적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공직자윤리법을 우회하는 재취업 사례도 늘고 있다. 롯데손해보험은 지난달 20일 사내이사(감사위원)에 금융감독원 출신인 민안기 아이유플래너스 감사가 새로 선임됐다. 민 감사는 2013년까지 금융감독원에 재직했던 인사다. 또 한화손해보험은 전 금감원 보험감독국 팀장인 고명진씨를 사내이사(감사위원)로 선임됐다. 이들은 금융권 협회 부회장에 재직했다 임기를 마치고 금융사 감사로 옮겨간 경우다.

◇금피아, 부활을 꿈꾼다 = 최근 KB사태 이후 3개월째 공석 중인 국민은행 후임 상임감사에 주재성 전 금감원 부원장이 적임자로 논의되고 있다. 윤종규 회장과 경영진이 관료와 정치권 출신이 아닌 금감원 출신 인사 선임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KB금융 관계자는 "출신에 관계없이 감독업무에 정통하고, 은행의 내부통제를 잘 할 수 있는 감사전문가로서 kb와 잘 화합할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금융감독원 간부 출신들이 민간 금융회사의 감사. 사외이사 등으로 대거 이동했다. 김성화 전 신용감독국장은 신한카드 감사, 전광수 전 금융감독국장과 이명수 전 기업공시국 팀장은 메리츠금융지주 사외이사, 양성용 전 부원장보는 삼성카드 사외이사로 각각 이동했다. 이석우 감사실 국장은 대구은행 감사로 영입됐다.

금융회사들이 금감원 출신 인사들을 선호하는 것은 금융업무에 대한 전문성이 뛰어나기 때문이지만 각종 검사시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고 특정 사안에 대한 금융당국의 기류를 파악해 경영진이 미리 대처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일정한 수익을 추구하려는 금융회사 경영 특성 상 이같은 선택을 비난할 수는 없다. 이에 일각에서는 어차피 금감원 인사가 오지 않으면 감사원이나 국세청 출신들이 내려오는 만큼 차라리 금융 업무를 잘 아는 금감원 출신이 낫다는 시각도 상존한다.

지난해 5월 여신금융협회와 저축은행중앙회 신임 부회장에 금감원 출신 인사가 낙점되면서 금융협회장 자리는 금피아가 차지하는 공식이 재연됐다. 김영대 은행연합회 부회장은 전 금감원 부원장보, 오수상 생명보험협회 부회장은 전 금감원 국제협력국 연구위원, 장상용 손해보험협회 부회장은 전 금감원 감사실 국장, 이기연 여신금융협회 부회장은 전 금감원 부원장보, 정이영 저축은행중앙회 부회장은 전 금감원 조사연구실장 출신으로 채워져 있다.

또한 대형 보험대리점(GA)의 준법감시인 가운데 23%가 금감원 출신 인사들이다. GA는 보험회사를 대리해 보험 모집 및 고객 서비스를 하는 곳이다. 수수료를 좇는 영업 관행 탓에 불건전 영업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현역 시절 자신들이 감독했던 GA에 금피아들이 잇따라 재취업하면서 당국과의 유착 및 소비자 보호 역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금감원은 전문성을 갖춘 감독 인력이야말로 불법 영업을 막을 대안이라고 반박한다. GA의 금감원 출신들은 퇴직한 지 2년이 넘어 ‘공직자윤리법’ 심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 자본금 10억원 이상, 연매출 100억원 이상만 취업제한 대상이어서 중소형 GA는 사실상 이들의 재취업행을 막을 장치가 없다.

◇금피아 논란… 금감원, 인사적체 해소 길 막혀 = 금감원도 금피아 논란에 고민이 깊다. 고질적인 인사 적체를 해소할 방법도 없는데다 퇴직자들에 대해서는 2년이 지나면 금융권행을 막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과거 은행감독원·증권감독원·보험감독원·신용관리기금 등이 통합돼 설립되다 보니 출신별로 불꽃 튀는 경쟁의식이 남아 있다. 직원들의 뿌리가 서로 다르다 보니 본부 임원이나 국실장급 인사 시즌에는 자리 싸움이 치열하다.

앞서 금감원 직원의 금융권 감사 재취업이 제한되면서 국장급 인사들의 출구가 사라졌다. 그만큼 한 자리 차지하겠다는 경쟁이 치열하다는 얘기다. 저축은행 사태 이후 3년여 동안 금융권 재취업이 제한되면서 간부급 직원은 많은 상태에서 선임국장직을 만드는 등 자리를 늘리고 있지만 인사 적체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금감원 관계자는 “과거 감사로 나간 인사들의 경우 대부분 정년을 5~10년 정도 앞둔 국장급이었다”며 “이들의 이동이 금감원 인사적체 해소에 큰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금감원 출신 일부의 불법을 막기 위해 금감원 인사들의 출구를 닫아버린 것은 가혹한 처사라는 내부 불만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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