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일반 기업이나 공기업 등에 빌려준 대출액이 15조원대에 달했다. 약 21년 만의 최대치다. 세수 부족으로 재정 조달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정책자금 지원에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는 발권력이 자주 동원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1일 한은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현재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한 대출금은 15조3671억원으로, 1년 전(9조2289억원)보다 66.5%나 증가했다.
정부의 회사채 시장 정상화 방안을 뒷받침하기 위한 재원 조달용으로 한은이 작년 3월 3조4590억원을 정책금융공사에 저리 대출해준 데다가 기술형 창업지원 등 금융중개지원대출을 대거 확대한 데 따른 것이다.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그동안 중소기업에 한해 지원해온 여수신 제도인 금융중개지원대출은 2월 말 현재 11조9081억원으로, 1년 전보다 36.3% 늘었다.
이에 따라 지난 2월 말 한은의 대출금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최고치인 2009년 11월의 13조1361억원을 이미 뛰어넘었다. 또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2월(15조884억원) 이후 처음으로 15조원대를 기록했다.
통화 가치의 변화를 따지지 않고 비교하면 1994년 7월(15조6300억원) 이후 20년 7개월 만의 최대 규모다.
이렇게 되자 한은이 발권력을 남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앙은행의 발권력 동원은 화폐 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져 사실상 ‘세금’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은의 발권력 동원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당장 이달 1일부터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가 종전 15조원에서 20조원으로 증액됐다. 설비투자 지원 프로그램에 한정하기는 했지만 이 대출제도의 지원대상에 처음으로 중견기업이 포함됐다. 또 안심전환대출을 통한 가계부채 구조개선을 위해 한은의 주택금융공사에 대한 출자도 2000억원 규모로 검토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 발권력을 활용한 대출 등 정책자금을 지원하는 일은 세금처럼 입법부의 통제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최근 발권력을 통한 대출 증가 속도가 빠른 점이 눈에 띈다”면서 “국회에서 상한을 정해두는 방식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