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윗선 눈치보느라 대우조선 사장 인선 연기…KB금융, 정치권 입질에 사장직 부활 보류
“금융권 인사는 청와대ㆍ정치권에서 내려준다.”
최근 대우조선해양과 KB금융지주 사장 인사를 놓고 이 같은 설(設)이 난무하면서 금융권과 관련 업계가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에 곪아 가고 있다. 관치와 정치가 득세하면서 신뢰와 전문성을 뒤로하고 경력과는 무관한 사람들이 한 자리씩 꿰차는 인사가 거듭되고 있다.
◇산은 “대우조선 사장 선임 5월로 미뤄질 수 있다” = 산업은행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대우조선 사장 인선은 홍기택 회장의 청와대 눈치보기로 몇 달째 오리무중에 빠졌다. 연 매출 16조원의 세계 2위 조선업체가 관치(官治) 논란에 손발이 꽁꽁 묶여 있는 것이다. 대우조선은 9일 오전 고재호 사장 유임 또는 교체 안건을 배제한 채 이사회를 개최했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투자 계획과 재무제표 등 일반 경영 안건만 다뤘다. 고 사장의 임기가 이달 말 종료되는 만큼 연임 여부 또는 후임 인선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더 혼란을 초래하게 됐다.
대우조선은 사장 인선 안건이 이번 이사회에 상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법을 근거로 정기 주주총회(31일 예정) 2주일 전인 16일까지 사장 인선 안건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산업은행 측은 대우조선 사장 인사를 놓고 시간적으로 얽매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차후 사장추천위원회를 열고, 임시이사회와 임시주총을 통해 선출하게 된다. 그러나 임시주총를 위한 권리주주 확정을 위해 주주명부를 폐쇄하는 과정 등을 고려하면 대우조선 사장 인선은 5월이나 돼야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청탁거절에 KB금융 사장직 부활 물 건너가 = KB금융지주는 권력 독점화 방지 차원에서 사장직을 부활시키려던 계획을 정치권 인사 논리에 보류시켰다. 또 수백조원 자산을 감독해야 할 국민은행 상근감사 자리도 정치권 인사들이 눈독을 들이면서 석 달째 결정을 짓지 못하고 있다. KB금융 입장에선 지난해 관치금융 폐해가 이젠 정치권에 의한 정치(政治)금융으로 피해자로 전락하고 있다.
KB금융은 정치 논란에 몸살을 앓고 있다. 지주 사장직 부활 방침이 나오자마자 정치권에서 금융사 경력이 전무한 인사들의 입질이 시작됐다. 실제 18대 국회의원 출신의 친박계 인사 H씨를 사장으로 뽑으라는 압력이 거세게 몰아쳤다. 급기야 윤종규 회장 측은 인사 청탁을 모두 거절하고 사장직 부활을 보류시켰다.
앞서 정치금융의 막강한 파워는 KB금융 인사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행태를 보였다. 당초 KB금융 현직 임원이 내정돼 있던 KB캐피탈 사장이 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열리기 직전 박지우 전 국민은행 부행장으로 바뀌었다. 그는 6년간 서금회(서강금융인회) 회장을 맡았다. 지난해 KB금융사태 당시 사외이사 편에 서서 이건호 전 행장과 대립각을 세웠던 핵심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