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철 한국씨티은행 커뮤니케이션부 과장

이익(李瀷)은 지금의 안산, 당시 지명으로 별을 바라다 보는 마을(瞻星里)에 은거하면서 일흔일곱 편의 짤막한 글을 남겼는데, 이를 ‘관물편(觀物篇)’이라 이름하였다. 주로 위와 같이 생활 속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짤막한 감상을 덧대는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여, 도학자로서의 면모에 가려진 친근한 성호 선생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본편의 주인공 ‘개’는, 모두가 같은 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본편 외에도 5군데에나 출현하고 있다. 한번은 들짐승에게 잡아 먹힐 뻔한 닭을 구해주었는데, 닭이 이 은혜를 알지 못하고 개가 낳은 새끼를 난폭하게 쪼아대어 이익이 닭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다른 대목에서는 동물의 미덕에 대해 논하면서 “개의 너그러움(狗之寬)”이 덕이라고 하면 덕이겠지만, 그럼 그 개가 무슨 쓸모가 있겠냐고 되물으며, 개의 쓸모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데에 있다”고 한다. 다행히 이익이 키웠던 개는 천직에 충실한 개였던 듯하다.
사실, 천직에는 단순히 타고난 직분, 하늘이 내려진 쓸모라는 의미에 더해 ‘관직(官職)’이라는 뜻도 있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관직은 천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무튼 그 의미를 알고 나면 이야기가 좀더 재밌게 읽힌다. 개가 밥을 먹다 말고 낯선 사람을 쫓아가 짓고 있는 상황 자체가 코믹한 데다가 ‘그 놈 참 천직에 충실하구나, 사람보다 낫구만’ 하고 중얼거리는 이익의 모습을 떠올리니 더욱 그렇다.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은거하며 공부에 전념했던 그는, ‘이놈들아, 우리 집 마당의 개도 밥그릇 보다 천직에 충실하건만, 네 놈들은 어째서 밥그릇만 쫓느냐’하고 현실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던지려 했던 것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