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진 산업은행 부장
“어릴 때 애들하고 골목에서 땅뺏기 놀이를 했다. 땅을 최대한 크게 그리려고 손을 쭉쭉 뻗었다. 1mm라도 크게 갖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런데 엄마가 ‘세진아, 밥 먹어라’ 하면 바지와 신발을 탈탈 털면서 미련 없이 떠났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이 그런 거 같다. 우리한테 땅뺏기란 부를 축적하고 명예를 얻는 것이다. 정말 치열하게 산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동안 쌓았던 부와 명성을 다 놓고 간다. 내일모레 환갑이다. 인생이 ‘어릴 때 소꿉장난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놀 땐 열심히 놀지만 끝내고 나면 미련 없이 떠나는 것처럼 가진 것은 얼마 없지만 남은 것을 베풀려고 한다.”
내년 1월 정년퇴직을 앞둔 김세진 산업은행 부장은 치열한 은행 생활을 이렇게 표현했다.
◇ 제2의 삶의 목표는 재능기부= 37년간 은행권에 몸담았기에 자금관리에는 자신 있다. 그는 “최근에도 돈에 대해 개념이 없는 일반인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며 “부채의 무서움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1000만원을 빌렸다고 치면 못 갚았을 때 받는 불이익에 대해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신용불량자가 되면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남은 인생을 이렇게 경제관념이 부족한 젊은이에게 최대한 저금리 대출을 받을 기회나 방법을 전파할 것이라고 했다. 높은 금리의 대출을 쓰는 이유가 다른 금융기관의 대출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김 부장은 “빚이 있는 대학생들을 만나보면 대출이자가 2~20% 이상까지 다양하게 분포돼 있었다. 악성 부채도 많았다. 제2금융, 대부업 등을 이용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오죽했으면 그걸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리 대출을 받기 전 상담을 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성금융인 사관학교의 실패 = 산업은행 최초로 1급 여성 부장이 된 그는 여성 후배를 양성하지 못한 걸 가장 후회스럽다고 말한다. 그는 여성들이 더 높은 직급으로 승진하기 위해 은행 내 ‘여성금융인 사관학교’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장애물은 남성도, 사회도 아닌 여성이었다. 그가 사관학교를 만들어 여성의 경력관리와 생활 노하우 등을 전수하려고 했을 때 막상 여성 후배들의 참여율이 낮아 중도 포기해야 했다.
김 부장은 실패한 이유로 여자가 아이 양육을 책임지는 문화를 꼽았다. 그는 “남자들은 여자들이 바깥에서 일 잘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동시에 집안일도 완벽하게 하길 원한다”며 “이런 문화에는 남편들의 고정관념이 깔려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남성에게 모든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여성 후배들에게 “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너희 일을 맡아 줄 사람을 찾아라”고 조언한다. 김 부장은 또 “급한 업무가 있을 때 여직원은 아기 때문에 가봐야 한다고 말한다. 너의 일은 어떻게 하냐고 물으면 남자직원에게 맡겼다고 하는 상황도 많았다. 굉장히 화가 났다. 여직원이 그런 정신으로 일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물론 환경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산업은행에서 여자들은 전체적으로 의기소침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은행에서 승진하고 싶으면 자기 일에 책임의식을 가져라”고 말했다.
◇ 눈물 많은 슈퍼우먼 = 김 부장은 지난 2006년 KBS1 ‘KBS스페셜’ ‘당신들의 슈퍼우먼’이라는 여성리더 5인을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는 “원래 슈퍼우먼의 성공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슈퍼우먼의 눈물’이 돼 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5명 다 모두 펑펑 울었다고 한다”고 당시를 전했다.
김 부장이 눈물을 보인 대목은 역시 자녀 문제였다. 그는 “자녀 이야기가 나오면 대부분 울더라”고 했다.
1980년 초 고무방(은행에서 쓰는 녹색 고무판) 밑에 사표를 넣어놓고 다녔다는 그는 “둘째 아이를 가졌을 때 도저히 못 견디겠더라”고 했다.
당시 임신한 그에게 한 상사가 창구에서 돈을 바꿔 오라는 등의 허드렛일을 계속 시켰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미스 김이 잘 알잖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상사는 임신한 여성이 일하는 모습이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눈물이 그를 강하게 만들었다. 수많은 남자 상사 밑에서 버티게 만든 오기가 생겼다. 김 부장은 “그 순간 오기가 생겨 사표를 찢어 버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