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반기문 총장으로 분식(粉飾)을?

입력 2014-11-1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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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직설적으로 물어보자. 우리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얼마나 잘 알고 있나? 국제사회로부터 존경을 받는 훌륭한 외교관이란 사실은 안다. 유엔 사무총장직을 잘 수행하고 있는 유능한 인물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물어보자. 우리 경제와 산업구조에 대한, 또 우리의 정치사회적 구조와 현안에 대한 그의 생각을 잘 알고 있나? 또 이와 관련된 그의 정책역량이나 혁신의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자세히 들어 본 적도 없고 제대로 관찰할 기회도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이 그러니 다른 사람이야 오죽하겠나. 그저 떠도는 말 몇 마디로, 또 쏟아져 나온 그에 관한 책들을 통해 넘겨짚을 수밖에 없다. 그가 일해 온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외교 문제에 있어서도 확실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이를테면 독도 문제만 해도 외교부가 견지해 온, 하지만 국민 정서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조용한 외교’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일부러 숨겨서가 아니라 그의 직업이 외교관이기 때문이다. 직업 외교관에 있어 모호한 태도는 때로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된다.

이렇게 잘 모르는 인사를 대통령 후보로 영입하느니 마느니 한다. 좋은 사람 같으니 같이 한 번 알아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수락하기만 하면 지금 당장 후보로 올려 세우겠다는 태도이다.

나오는 욕을 눌러 참는다. 입을 버릴 것 같아서이다. 무릇 정치인이라면 국정을 잘 운영할 생각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이기기도 하고 집권도 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뭔가. 제대로 된 정책 하나 내어 놓지 않고, 벌써부터 잘 알지도 못하는 인사를 대선 후보 운운하고 있다. 그것도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거나 달았던 사람들이 말이다.

사실 분칠로 못난 얼굴을 가리는 분식(粉飾) 행위는 우리 정치의 오랜 관행이다. 최불암, 황수관, 안철수, 문재인, 박원순… 선거만 다가오면 이 사람 저 사람 끌어들여 평소의 흉한 모습을 가린다. 어떤 생각과 능력을 가진 인물인지는 묻지도 않는다. 대중적 인기만 있으면 그저 그만이다.

현실 정치는 원래 이런 것이라 우긴다면, 또 나라가 어찌되건 일단 권력은 잡고 봐야 하겠다면 할 말은 없다. 어차피 너도나도 체면 불구하고 집어 먹는 마당이다. 예의 지키다 굶어 죽을 판에 예의 지키며 살아가라 할 명분이 없다.

그래도 그렇지. 이번 건은 해도 너무하다. 새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이제 겨우 1년 8개월이다. 풀어야 할 문제도 첩첩이 쌓여 있다. 이런 상황에 조기 레임덕을 부를 이런 ‘짓’을 해서 되겠나. 대통령마다 이런 상황을 맞는다고 해 보자. 반기문 총장이 아니라 그 누구를 대통령으로 만든들 그 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나.

국익 문제는 더 심각하다. 잘 알다시피 반기문 총장의 유엔 사무총장 당선은 범국민적 지원과 국가 차원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누가 되었건 반드시 후보를 내고, 또 반드시 당선시킨다는 국가 차원의 의지도 있었다. 쉬운 일이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정부는 표를 얻기 위해 이 나라 저 나라에 특사를 파견하는 등 최선을 다 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도 했다.

국민 부담도 적지 않다. 우호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대한 이런저런 지원을 늘렸다. 하나의 예가 되겠지만 지금도 우리는 국제공항을 이용할 때마다 아프리카를 지원하기 위한 항공권연대기금 1000원씩을 내고 있다. 좋은 일이고 또 당연히 해야 할 원조활동이지만 일단은 반 총장의 유엔 사무총장 프로젝트와 무관하지 않다.

이렇게 해서 당선된 반기문 총장이다. 국민적 자부심도 크다. 이런 인사가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면 어떻게 되겠나. 지지성향에 따라 국민의 반은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직무수행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당연히 국익과 국격은 그만큼 훼손될 수밖에 없다.

못난 자들이다. 누구든 끌어다 제 못난 얼굴에 분칠을 하겠다는 파렴치범들이다. 모두 잘 기억해 두었으면 한다. 아울러 이 기회에 정치권 근처에서 ‘대권’ 바람잡이를 하는 자들도 잘 봐 두었으면 한다. 모두 나라를 어지럽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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