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이민철 씨티은행 커뮤니케이션부 대리 "가만히 생각하기"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몇 시간이고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하는 것뿐이다. 대학을 마칠 무렵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색이 바래듯 생각은 처음의 무게를 조금씩 잃어갔던 것 같다. 애초에 무엇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조차 기억이 나질 않게 된 것이다. 아무려면 어때 라고 생각하는 한편 요즘도 나는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하곤 한다. 그 당시 나로 하여금 줄곧 생각하게 만든 것에 대해.

기억을 떠올릴 만한 뾰족한 수도 없는 마당에 기억을 해내려 애쓰는 일은 그닥 효율적인 일도 아니며 유쾌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앉아 바라보던 낡은 건물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 돌아보면 자질구레한 일들뿐이었지만 어찌됐든 지금의 나는 그런 일들의 결과로 여기 살고 있다. 아마 달리기를 시작한 것도 그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학교 중앙에 오래된 폐허처럼 있던 운동장에서 나는 몇 시간이고 달리곤 했다. 몇몇 학생들이 나와 함께 달리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났을 때였다.

우리는 분명 각자 달리는 시간대도 달랐고 달리는 방식도 달랐지만 거기엔 연대감이라고 불릴만한 분위기 같은 것이 있었다. 아마 저마다 사정이 있어 이 폐허같은 운동장 위를 달리고 있는 것일 테다.

그 중에 가장 눈에 띄었던 사람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쯤으로 보이는 남자로 항상 느리게 달렸다. 그의 레이스는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구석이 있었다. 한없이 부드러운 왈츠를 추듯이 그는 부드러운 리듬으로 운동장을 달렸다. 그것은 신성한 의식과도 같아서 그가 달릴 때면 비로소 운동장에 어떤 의미가 부여된 듯이 느껴졌다. 나는 아무리해도 저렇게 뛸 수가 없겠구나 하고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다.

나는 결국 달리는 것을 그만뒀다. 그것이 그의 달리기 때문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나는 더 이상 달리는 일에 흥미를 느낄 수 없게 돼버렸다. 나는 그저 처음처럼 벤치에 앉아 운동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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