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대통령'이자 재벌가의 '안방마님'

국내 미술계를 움직이는 대표적인 인물인 홍라희 전 관장은 지난 2008년 4월 삼성특검 여파로 리움 관장직에서 물러난 후 공식석상에 모습을 감춰왔다.
하지만 남편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3월 전격 복귀하면서 동반 퇴진했던 홍 전 관장도 복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에 화답하듯 홍 전 관장은 지난 1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했고 5월 말에는 일본 가가와현(香川縣)의 나오시마(直島)섬에서 열린 이우환 미술관 준공식에도 참석하는 등 최근 들어 공식행사에 잇따라 참석하고 있다.
그가 관장으로 있던 삼성미술관 리움도 2년여의 휴식기를 마치고 오는 8월 기획전을 연다. 8월 25일부터 내년 2월까지 현대미술 전시인 '언모뉴멘털(Unmonumental)'전을 개최하는 것.
그 동안 상설전시만 열어왔던 리움이 본격적인 기획전을 여는 것은 2년2개월 만이다. 홍 전 관장의 국내 미술계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는 관장직에서 물러 난 후에도 미술잡지 아트프라이스의 '한국 미술계를 움직이는 파워 인물' 조사에서 수년째 연속 1위를 차지해 온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지난 1967년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한 홍라희 전 관장은 그해 5월 당시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삼남 이건희와 결혼한다.
홍 전 관장의 아버지인 고 홍진기 중앙일보 전 회장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둘도 없는 파트너였다.이승만 정권 때 장관직을 두루 거친 홍 회장이 3·15 부정선거로 옥고를 치를 때 이병철 회장의 도움을 받은 것이 양가 친분의 계기가 됐다.
이같은 친분 관계가 이어져 자녀를 결혼 시키기에 이른 것.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 전 관장이 그 주인공이었다.홍라희 전 관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 그리고 막내딸인 고 윤형씨를 출산한다.
홍 전 관장이 본격적인 대외활동에 나선 것은 지난 1983년. 현대미술관회 이사를 맡으면서 부터다. 그는 1985년부터 1998년까지 중앙일보 상무로 재직하면서 1993년 6월부터 1998년 8월까지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와 이사장직에 올랐다. 1995년 1월 호암 미술관장으로 취임했다.
이처럼 활발한 대외 활동을 해온 홍 전 관장의 모습은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부인 이정화 씨나 구본무 LG그룹 회장 부인 김영식 씨가 가풍에 따라 내조의 길만을 걸어온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는 홍 전 관장의 미술에 대한 관심과 미술품 애호가였던 고 이병철 회장의 열정이 어우러졌기 때문에 가능했다.홍라희 전 관장은 이른바 '재벌 미술관' 관장으로선 유일하게 미대 출신이다. 고 이병철 회장은 미대 출신 며느리인 그를 일찌감치 미술관장으로 점찍었다.
이병철 회장은 새댁이었던 홍 전 관장에게 매일같이 10만원을 주며 인사동에 가서 마음에 드는 골동품을 사올 것을 지시했다는 일화는 꽤 유명하다.
그가 시아버지께 처음 인사를 드린 곳이 국전 전시장이었다는 점도 재미있는 일화다. 어느 날 홍 전 관장의 아버지인 고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은 홍관장에게 “이병철 회장을 모시고 국전을 안내하라”고 일렀다.
홍 전 관장은 당시 대학 3학년이었고 국전 공예부문에 티테이블을 출품해 입선한 바 있었다. 그는 별 생각 없이 이병철 회장을 안내했다.
하지만 사실 그 자리는 이병철 회장이 며느리감을 보러온 자리였던 것. 몇 달후 자신이 ‘이병철 회장의 셋째아들과 약혼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홍관장은 강하게 반발하며“이제껏 누구의 딸이라는 것만으로도 유명세를 충분히 치렀다. 누구의 며느리 소리까지 듣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유학길을 포기하고 결국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결혼하게 된 홍라희 전 리움관장.
그는 지난 2003년 자랑스런 서울대인인 상을 수상한 뒤 언론 인터뷰에서 "전공 공부를 계속했더라면 지금쯤 대학 강단에 서 있거나 공예가,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시간나는 대로 국내 또는 해외의 여러 미술관과 전시장을 찾는다”며“국내는 물론 해외 문화계 인사들도 자주 만난다”고도 말했다.
홍 전 관장이 불교계와 인연을 맺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지난 3월 초 홍라희 전 관장은 11일 입적한 법정 스님의 병원비 6000만원 상당을 기부했다.
독실한 원불교 신자인 홍 여사가 오래 전부터 법정 스님의 인품을 흠모해 왔다는 게 삼성 안팎의 전언이다.홍 여사는 불교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는 조계종 불교여성개발원이 지난 1월 선정한 '여성불자 108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삼성이란 거대 재벌가의 안 사람이자 미술계를 호령하는 인물로 살아온 홍라희 전 관장. 이건희 회장 부인이기 보다 미술계 대통령 홍라희로 불리는 그가 한국의 문화와 예술에 대해 다시 한번 열정을 쏟을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