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째라’가 아니라 ‘방법이 없다’…28만 톤 골재 사태, 행정은 출구전략을 내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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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서포면 야산에 재생골재 28만 톤 적재…300억 원대 행정대집행 검토
코로나19 여파로 공장 가동 중단…사업주 책임과 별개로 처리 대안은 여전히 불투명
관급 자재 활용·토지 공익 전환 등 단계적 해법 검토해야…처벌만으로 산더미 치울 수 없어

▲사업주가 재생골재가 쌓여있는 현장을 설명하고 있다 (서영인기자 @hihiro)

경남 사천시 서포면의 한 야산. 이곳에는 28만 톤에 이르는 재생골재가 산처럼 쌓여 있다. 행정은 불법 적재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고, 사업주를 상대로 한 고발과 이행강제금 부과도 이어졌다. 사천시는 300억 원대 행정대집행까지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300억 원을 들여 골재를 치우겠다는 계획은 있지만, 그보다 적은 비용으로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이 사태를 사업주의 '배째라식 버티기'로만 규정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현장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골재가 쌓인 경위와 사업주의 책임뿐 아니라, 지금 이 물량을 처리할 현실적인 방법이 있는지 여부다.

사업주 측 설명에 따르면 당초 재생골재는 벽돌 생산에 필요한 원료로 공급·사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장기화로 건설경기가 위축되고 관련 공장의 가동이 중단되면서 원료의 공급과 소비가 끊겼다. 공장은 멈췄지만 이미 반입된 골재는 남았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개인 소유 부지에 재생골재 원료를 보관하는 상황이 이어졌고, 적재량은 결국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로 불어났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설명이 적재 행위의 적법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법 위반 여부와 환경적 책임은 엄정하게 따져야 한다. 사업주가 자신의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책임을 묻는 것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행정명령과 강제금 부과를 반복했는데도 28만 톤의 골재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이제는 기존 대응 방식이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부터 되짚어봐야 한다.

처벌은 반복됐지만 골재는 그대로…300억 원 대집행이 최선인가

사업주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책임을 묻는다고 쌓인 골재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수차례 행정조치가 이뤄졌음에도 골재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행정은 기존 대응의 실효성을 점검해야 한다. 사업주가 처리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 자력으로 처리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사천시가 검토하는 300억 원대 행정대집행이 실제로 추진된다면 재정 부담은 상당하다. 집행 비용을 사업주에게 구상 청구할 수 있다고 해도 실제 회수 가능성은 별개의 문제다.

사업주에게 변제 능력이 없다면 공공이 먼저 비용을 부담하고도 상당 부분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고 대집행을 무조건 포기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환경오염이나 주민 안전에 급박한 위험이 있다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다만 수백억 원을 투입하는 강제 집행이 최선인지, 단계적 처리와 민관 협의를 통해 비용을 줄일 수 있는지는 사전에 검증해야 한다.

강제 집행만을 앞세운 강대강 대치가 장기화하면 사업주도, 사천시도, 시민도 모두 부담을 떠안게 된다. 행정의 목적은 처벌 자체가 아니다. 위법 상태를 해소하고 시민의 안전과 공익을 회복하는 데 있다.

28만 톤을 버릴 것인가, 활용할 것인가…재생골재의 가능성부터 따져야

가장 먼저 검토할 대안은 골재의 성상과 품질을 확인한 뒤 적법한 재활용 경로를 찾는 것이다.

당초 벽돌 생산 원료로 사용하려 했다는 사업주 측 설명이 사실이라면, 해당 골재가 어떤 품질과 성분을 갖고 있는지부터 객관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유해성 검사와 품질시험을 거쳐 관련 기준에 적합한 물량이 있다면 도로·토목공사 등 공공사업의 관급 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지도 검토해야 한다.

경남도와 사천시가 추진하는 도로·기반시설 사업은 물론 인근 공공 토목사업까지 활용 가능성을 조사하는 방식이다. 기준에 적합한 골재는 단계적으로 공급하고,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물량은 별도의 처리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물론 28만 톤 전량을 관급 자재로 전환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재생골재의 종류와 품질, 사용처별 기준, 운반비와 가공비, 실제 수요를 따져야 한다. 관련 법령과 인허가 절차도 충족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폐기하거나 무조건 재활용하는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활용할 수 있는 물량과 별도 처리가 필요한 물량을 구분하고, 실제 수요와 비용을 따져 단계적인 처리계획을 세워야 한다.

재활용 가능한 자원을 공공사업에 다시 활용할 수 있다면 환경과 재정 측면에서 모두 검토할 가치가 있다. 300억 원대 대집행이라는 하나의 선택지만 놓고 판단하기 전에 경제성과 환경성을 비교한 복수의 처리 시나리오를 마련해야 한다.

사업주에게는 퇴로를, 시민에게는 공익을…토지 활용도 해법이다

▲사천시 현장 컨테이너 생활공간에서 사업주 유씨가 자력이 없는 상황에서 어쩔수 없음을 항변하고 있다 (서영인기자 @hihiro)

토지 활용 방안도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

사업주가 소유한 부지를 사천시가 공익적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기부채납이나 장기 임대 등 다양한 방식을 협의하는 것이다. 골재 처리와 토지 활용을 하나의 공공사업으로 묶을 수 있다면 행정의 협상 여지도 넓어질 수 있다.

다만 기부채납이 사업주의 법적 책임을 면제하거나 기존 행정조치를 무효화하는 수단이 될 수는 없다. 토지의 감정평가와 환경 상태, 소유권 이전에 따른 비용과 법적 책임을 따져야 한다. 사업주에게 현실적인 퇴로를 제공하되 공공이 불법 행위의 책임까지 떠안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원칙을 세워야 한다.

골재가 처리된 뒤 해당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지도 처음부터 함께 설계해야 한다. 친환경 공원이나 체육시설, 지역 산업 기반시설 등 시민에게 실질적인 편익을 돌려줄 수 있는 공익적 활용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경남도와 사천시, 중앙부처가 함께 참여하는 공공개발 구상도 가능하다.

핵심은 사업주에게 일방적인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다. 사업주의 처리 능력과 공공의 재정 부담, 환경적 책임을 함께 고려해 문제를 끝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행정의 능력은 처벌이 아니라 해결에서 드러난다

이번 사태는 한 사업주의 책임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골재가 대량으로 쌓이는 동안 행정은 무엇을 했으며, 적재가 장기화한 뒤에는 어떤 대안을 검토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법 위반을 확인하고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것만으로 행정의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사업주의 책임은 분명히 물어야 한다. 그러나 책임을 묻는 것과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동시에 가능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업주를 무조건 감싸는 것도, 사천시가 무조건 대집행을 강행하는 것도 아니다.

경남도와 사천시, 환경부 등 관계 기관이 함께 골재의 품질과 처리 비용, 활용 가능한 수요, 토지의 공익적 활용 가능성을 검증해야 한다. 그 결과를 토대로 단계적 재활용과 잔여 물량 처리, 토지 활용을 아우르는 현실적인 실행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배째라'는 식의 버티기로만 몰아붙여서는 28만 톤의 골재를 치울 수 없다. 반대로 '방법이 없다'는 사업주의 호소만으로 책임을 덮을 수도 없다.

행정이 해야 할 일은 양쪽의 책임과 한계를 직시하고 실행 가능한 출구를 만드는 것이다. 300억 원을 투입하기 전에 다른 방법이 있는지 끝까지 찾는 것. 그것이 지금 사천시에 요구되는 행정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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