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문화재단 '스토리업' 선정⋯상업영화 진출 발판 마련
"완벽하지 않아도 도전해야⋯독창적인 소재 선정 중요"

공포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어둠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을 때, 익숙한 공간이 낯설게 느껴질 때, 곁에 있는 누군가를 믿을 수 없을 때 두려움은 커진다. 영화 '살목지'는 이처럼 인간이 감각하는 세계의 불확실성을 공포의 동력으로 삼는다.
영화는 로드뷰 촬영팀이 정체불명의 형체가 포착된 저수지 '살목지'로 재촬영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물과 땅의 경계가 모호한 저수지에서 인물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남겨진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진실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지난 4월 개봉한 '살목지'는 관객 324만 명을 동원하며 한국 공포영화 흥행 역사를 새로 썼다. 2003년 '장화, 홍련'이 세운 314만 명의 기록을 23년 만에 넘어선 것이다. 1995년생 이상민 감독이 첫 단독 장편 상업영화로 거둔 성과다.
이 감독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극장에서 봤을 때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극장에서 체험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가 주목한 것은 저수지라는 공간과 물귀신의 특성이었다. 이 감독은 "살목지에 직접 가봤을 때 가장 크게 느꼈던 특징은 땅과 물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었다"며 "영화에서도 어디까지가 땅이고 어디부터가 물인지 모호하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사방이 트인 저수지는 일반적인 밀폐 공간과 달리 공포를 만들어내기 쉽지 않은 장소다. 이 감독은 오히려 어둠을 극대화해 관객의 시야를 제한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는 "촬영감독과 가장 많이 이야기했던 게 어둠이었다. 얼마나 어둡게 할 것인지, 어디까지 보여주지 않을 것인지를 계속 고민했다"며 "손전등이 비추는 곳은 밝지만 그 외의 공간은 굉장히 어둡게 만들어 그 안에서 무엇이 나올지 모르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이 처음부터 영화 연출을 꿈꿨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웹툰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다.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영화과에 진학했고, 영화를 공부하면서 영상으로 이야기를 표현하는 일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첫 단편영화를 만들 때는 어려움이 많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선택이 옳은지 판단할 기준이 없었다. 이 감독은 "처음 영화를 찍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이었다"며 "로케이션부터 시나리오까지 모든 선택을 후회했다. 이게 맞는 선택인지 계속 의심했는데, 확신을 가질 만한 기준조차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런 그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된 작품은 군 의장대를 소재로 한 단편영화 '돌림총'(2021)이었다. CJ문화재단의 신인 영화 창작자 지원사업 '스토리업(STORY UP)'을 통해 제작한 작품이다.
'돌림총'의 탄생 과정은 극적이었다. 군 복무 당시 의장대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지만, 시나리오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하던 중 우연히 영화 '위플래쉬'를 보게 됐다.
이 감독은 "갑자기 '위플래쉬'가 보고 싶어서 봤는데, 의장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깨닫게 됐다"며 "마침 지인에게 스토리업에 지원했느냐는 연락이 왔다. 확인해 보니 마감까지 3일밖에 남지 않았더라. 거의 밤을 새워 시나리오를 썼다"고 말했다.
스토리업 선정은 제작비 확보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에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사실 자체가 감독으로서의 자신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시나리오에 대한 자신감을 줬다"며 "선정되고 나면 스태프나 배우들에게도 확신을 갖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그게 정말 컸다"고 말했다.

CJ문화재단 스토리업은 2010년 시작된 '프로젝트S'를 전신으로 하는 신인 영화 창작자 지원사업이다. 2018년부터 단편영화 감독 지원사업으로 전환해 시나리오 개발부터 제작, 후반작업, 영화제 출품까지 창작 전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이 감독은 그중에서도 멘토링을 가장 큰 도움으로 꼽았다. 기획·개발 단계에서는 이옥섭 감독에게, 제작과 후반작업 단계에서는 허정 감독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는 "이옥섭 감독님과는 시나리오를 놓고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인물의 감정과 캐릭터에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며 "허정 감독님에게는 콘티와 편집 단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감독님 사무실에서 오랜 시간 함께 편집을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특히 현업에서 활동하는 감독들의 사고방식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감독님들이 어떤 기준으로 좋은 영화를 판단하고, 장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대화를 나누면서 무의식적으로 배우는 것들이 있었다"며 "어떤 호흡으로 편집해야 하는지, 장르적인 문법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알게 된 것이 컸다"고 설명했다.
'돌림총'은 제6회 충무로영화제 감독주간에서 관객상과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는 등 여러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다. 작품을 완성한 뒤에는 영화 제작사 더램프의 박은경 대표와 인연을 맺었고, 이는 훗날 '살목지'를 만드는 발판이 됐다.
이 감독은 후배들에게도 스토리업 지원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다. 다만 경쟁이 치열한 제작지원 사업에서 주목받으려면 이야기의 완성도만큼 소재와 장르의 선택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제작지원 사업은 경쟁률이 높기 때문에 일단 눈에 띄어야 한다"며 "남들이 잘 쓰지 않을 것 같은 장르나 소재를 찾아보는 것도 전략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지원을 망설이지 말라고 당부했다. 실제로 '돌림총' 역시 처음 제출한 시나리오와 최종 완성작의 내용이 상당히 달라졌다.
이 감독은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지원하지 않았다는 후배가 있었다. 그때 무조건 내라고 했다"며 "떨어지더라도 배우는 게 많다. 저 역시 '돌림총'을 처음 제출했을 때는 엉성한 부분이 있었지만 일단 냈다"고 말했다.
이어 "시나리오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기획적인 접근이 더 중요한 순간도 있다"며 "이야기의 핵심이 있다면 그것을 보고 가능성을 발견해 줄 수도 있다. 어차피 작품은 개발하고 촬영하는 과정에서 계속 바뀐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