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당도 추모관도 ‘접속’합니다…‘온라인 공간’에 모여든 사람들 [해시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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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I 생성)


숲으로 둘러싸인 법당에 들어서자 ‘느린 발걸음’이라는 이름을 단 동자승이 나타납니다. 방석을 찾아 앉으면 절을 올릴 수 있고, 화면을 손가락으로 밀어 염주알을 하나씩 굴릴 수도 있는데요. 법당 안에는 같은 모습을 한 동자승 수십 명이 함께 있지만 말을 걸 수는 없습니다.

주소를 바꾸면 풍경도 달라지는데요. 온라인 성당에서는 촛불을 밝히고, 사우나에서는 낯선 이용자와 말없이 외기욕(병의 치료나 건강을 위하여 바깥 공기를 쐬는 것)을 합니다. 야영장에서는 모닥불을 바라보고, 추모관에서는 먼저 세상을 떠난 반려동물의 사진과 편지를 읽죠.

장소와 행동은 제각각이지만 사람들이 찾는 것은 비슷한데요. 혼자 쉬고 싶지만, 완전히 혼자이고 싶진 않은 그 ‘모순’이 담겼죠.


(출처=온라인 산사 캡처)


온라인 절 ‘산사’는 20대 취업준비생 박진원 씨가 AI를 활용한 바이브 코딩으로 만든 웹 기반 가상공간인데요. 지난달 26일 문을 열었죠. 별도 프로그램이나 앱을 설치하지 않아도 스마트폰과 PC에서 주소만 입력하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용자는 동자승 모습의 캐릭터를 받아 법당을 걷고 방석에 앉아 절하거나 염주를 굴릴 수 있죠. “절까지 갈 시간도, 기운도 없어서”. 개발자의 창조(?)이유대로 반야심경 독송과 새소리를 들을 수도 있지만 다른 이용자에게 말을 걸거나 메시지를 보낼 수는 없는데요.

접속자가 몰리면서 법당의 규모도 숫자로 커졌습니다. 처음 마련한 방석 20개를 100개, 1200개, 1만 개로 늘렸는데요. 최대 100명이 들어가는 법당 100곳도 만들었죠.


(출처=온라인 갓바위 캡처)


지난달 31일 바이브차트에 등록된 ‘온라인 갓바위’는 대구 팔공산 갓바위를 가상공간으로 옮겼는데요. 이용자는 닉네임과 응원팀을 선택해 부처 앞에 자리를 잡고 합장하거나 절할 수 있죠. 절을 30회 이상 하면 다른 이용자에게도 보이는 공개 소원을 남길 수 있는데요.

지역 영향일까요?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팬들이 유독 갓바위에 진심이었습니다.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바라는 팬들이 대거 모여들었고, 한국시리즈 1차전을 앞둔 3일 접속자가 몰리면서 입장까지 10분 이상 기다리는 ‘웨이팅’까지 벌어졌죠.

산사가 주목받자 비슷한 방식의 온라인 공간도 잇따라 등장했습니다. 종교 공간에서 출발한 흐름은 휴식과 여가, 취미로 빠르게 넓어졌는데요.

대표적인 사례는 명동성당을 모티브로 만든 온라인 성당 ‘인피스(InPeace)’입니다. 산사 공개 나흘 뒤 등장한 인피스는 높은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 성당을 걸으며 기도하거나 묵주를 돌리고 촛불을 밝힐 수 있는데요. 고해 공간과 미사포 기능도 마련됐죠.


(출처=노엘 예배당 캡처)


온라인 교회인 ‘새벽 예배당’과 눈 내리는 성탄 풍경을 구현한 ‘노엘 예배당’도 문을 열었는데요. 대화나 음성 기능 없이 다른 이용자와 같은 공간에 머무는 방식은 산사와 닮았죠. 노엘에서는 눈 내리는 마당과 1·2층 예배당을 돌아다니며 촛불을 밝히고 기도하거나 성경을 읽을 수 있는데요. 강가 야영장에서는 장작을 넣어 모닥불을 피우고 마시멜로를 굽거나 걱정거리를 적어 불에 태웁니다. ‘온라인 순례길’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763.7㎞를 실제 보행 속도에 맞춰 걷고, 실제 순례자 여권 도장과 비슷한 마을별 도장을 받는 구조죠.

종교색을 걷어낸 공간도 있죠. ‘사우나 고요’에서는 주황색 찜질복을 입은 캐릭터가 건식 사우나·냉탕·외기욕 쉼터·목욕탕·노천탕·카페를 오갑니다. 물을 붓거나 자리에 앉고 인사할 수 있지만 동일하게 채팅과 음성 대화 기능은 없죠. 같은 공간에 접속한 이용자의 모습만 실시간으로 보입니다.


(출처=사우나 고요 캡처)


‘스윔픽 물멍’에서는 수영장 물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데요. ‘강가 야영장’에서는 모닥불을 피우고 고구마를 굽습니다. 이 밖에도 낚시터·온천마을·루프톱 클럽·혼술바·독서실·야구장·탄광·비행기 좌석을 구현한 공간까지 등장했죠.

온라인 공간의 확장은 휴식과 놀이에서 그치지 않았는데요. 먼저 세상을 떠난 존재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공간도 생겼죠.

반려동물 온라인 추모관 ‘별꾹(옛 꼬리별)’에는 나무 사물함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사물함마다 강아지와 고양이의 이름과 사진이 놓여 있고 보호자가 남긴 편지를 읽을 수 있죠. 이용자는 촛불을 밝히거나 국화를 헌화하고, 꽃다발·간식·테니스공 같은 가상의 선물을 놓습니다.


(출처=별꾹(옛 꼬리별) 캡처)


떠난 반려동물과 산책하거나 쓰다듬는 기능도 마련됐는데요. 다른 보호자에게 ‘토닥토닥’이나 포옹을 보내며 말없이 위로를 건넬 수도 있습니다. 긴 대화 대신 정해진 행동으로 마음을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산사의 합장과도 닮았습니다. 4일 오전 공식 공개 목록에 올라온 추모공간은 1만6921곳에 달했습니다.

사람을 추모하는 공간도 있습니다. 지난달 31일 등록된 ‘기억의 뜰’은 봉안당과 자연장지를 걸으며 그리운 사람을 기억하고 기록을 남기는 무료 온라인 추모공간을 표방하죠. ‘다시산책’은 먼저 떠난 반려동물뿐 아니라 현재 함께 사는 반려동물의 사진과 영상도 등록할 수 있는 3D 추억관과 기억공원입니다.

장례식장이나 봉안시설을 찾지 못하는 날에도 그리움까지 멈추는 것은 아닌데요. 온라인 추모관은 휴대전화로 촛불을 밝히고 편지를 남기며, 사람과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슬픔을 천천히 꺼내놓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애도 공간이 되죠.

과거의 메타버스가 거대한 도시와 가상 경제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면, 2026년 가을 등장한 온라인 공간은 작고 단순합니다. AI를 활용한 바이브 코딩은 아이디어를 실제 공간으로 옮기는 시간도 크게 줄였는데요. 전문 개발 인력이나 별도의 앱 없이 개인이 웹 기반 공간을 만들고, 이용자는 주소를 누르는 것만으로 접속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만드는 문턱이 낮아졌다고 운영까지 쉬워진 것은 아니죠. 이용자가 몰리면 서버를 늘려야 하고 접속 장애와 신고, 콘텐츠 관리에도 대응해야 하는데요. 산사와 반려동물 추모관 별꾹이 후원 기능을 마련한 것도 늘어난 서버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특히 사진과 편지가 쌓이는 추모공간에는 개인정보 보호와 기록 보존이라는 더 무거운 책임이 따라오죠.

이들 공간의 핵심은 ‘말하지 않아도 되는 동석’입니다. 승패를 가르는 규칙도, 반드시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요구도 없는데요. 이용자는 법당을 걷고 방석에 앉거나 모닥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공간에 참여합니다.

팔로어와 좋아요, 끊임없는 자기표현을 요구하는 SNS와도 다른데요. 합장·절하기·촛불 밝히기·헌화처럼 의미가 정해진 행동을 고르면 말하지 않고도 자신의 마음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부담은 덜고, 같은 시간에 다른 사람이 머물고 있다는 감각은 남기는 방식이죠.

종교시설을 직접 찾기에는 시간이나 심리적 문턱이 높은 사람에게도 선택지가 되는데요. 성해영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지난달 31일 연합뉴스에서 종교시설의 일상 밖 분위기와 성스러운 느낌을 원하면서도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받는 데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익명 온라인 공간을 찾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우나에서는 낯선 사람과 말없이 앉아 있고, 야영장에서는 같은 불을 바라봅죠. 추모관에서는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반려동물에게 국화를 놓습니다. 혼자 머물 자유는 지키면서도 완전히 혼자는 아니라는 감각, 이 느슨한 연결이 사람들을 온라인 공간으로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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