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암묵지'가 사라져가는 K-제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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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고려대AI연구원 교수

▲최병호 고려대 휴먼인스파이어드 AI 연구원 연구교수. (사진제공=최병호 교수)

제조 공장은 사라지고 있다. 버티는 현장은 만성 적자에 허덕인다. 스마트공장 도입은 천천히 늘고 있으나, 여전히 엑셀에 의존한다. 그만큼 원청의 공급망에서 점차 소외될 위험성도 커지고 있다. 제조업을 빠져나가는 인재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남아 있는 노동자는 쇠락해 가고 있으며, 청년의 유입은 잘 보이지 않는다. 전수해야 할 제조의 노하우는 증발하고 있다. 국가 제조업의 경쟁력은 희석되고 있으며, 지방의 산업 전망은 암울하다. 돌파구라 불리는 AI의 적용은 노후 설비에서 막히고, 열악한 환경에서 주춤하며, 인력 부재와 비용의 벽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제조 산업의 핵심 축인 국가산업단지 내에서만 2025년 한 해 동안 무려 1090개의 공장이 조업을 멈추고 휴·폐업했다. 역대 최대치다. 2026년 7월 중소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5.2%에 불과하다. 공장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 손익분기점(약 80%)에 고질적으로 미달하는 한계 상황에 처해 있다. 수주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발주처는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극단적인 수율 방어와 설비종합효율(OEE)의 극대화를 지향한다. 당연히 협력사에 실시간 품질 통제가 가능한 제조실행시스템(MES) 등의 투명한 데이터 연동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중소 제조기업의 스마트공장 도입률은 18.6%에 지나지 않는다. 더 절망적인 것은 스마트공장을 도입한 기업 중 75.5%는 여전히 엑셀 수기 입력이나 바코드 스캔 등 단순 전산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실시간 데이터 파이프라인이 원천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깜깜이 공장에서 이는 예견된 미래다. 고객사의 실시간 데이터 연동 요구에 엑셀 수작업으로 대응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데이터 시차가 발생하여 품질 제어 실패와 리드타임(Lead time) 지연을 초래한다. 결국 고객사의 수주 삭감을 거쳐 제조기업의 가동 중단과 퇴출로 이어지는 불가피한 과정을 겪게 된다.

2026년 기준 전체 취업자 중 제조업 비중은 사상 처음으로 15% 선이 붕괴된 14.7%로 추락했다. 제조업 내 60세 이상 노동자는 220만 명으로, 청년층을 추월하는 심각한 고령화를 보여준다. 제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숙련공의 뇌와 손끝에서 수십 년간 축적된 미세 공정을 제어하는 체화된 기술, 즉 암묵지에 있었다. 지식을 이어받을 청년이 이탈한 자리에는 언어 장벽과 잦은 이직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외국인 노동자가 있다. 그마저도 고령화 추세다. 국가 뿌리 산업을 지탱하던 기술적 핏줄이 끊어지고 있다. 숙련공의 노화는 품질 저하로 이어진다. 인적·기술적 단절은 공간적 공동화라는 파급 효과를 낳는다. 지역 경제의 역성장과 지방 소멸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국가적 위기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제조 일선의 AI 도입률은 0.1%다. 제조 데이터와 AI 부서나 인력을 단 한 명이라도 보유한 기업은 전체의 0.8%다. AI 도입의 극초기 상태다. AI가 예지보전을 수행하거나 사전 수율을 방어하려면 기계의 온도, 압력, 미세 진동 등 정제된 시계열 데이터를 초 단위로 수집해야 한다. 노후 설비에는 IoT 센서를 부착할 인터페이스조차 없다. 작업자가 임의로 수기 입력한 엑셀 데이터는 AI 학습에 활용할 수 없다. 디지털 전환(DX)이 없으면 AI로의 전환(AX)도 없다. 심지어 분진, 기름때, 쇳가루를 비롯해 극심한 온도 변화에 노출된 소규모 제조 현장에서는 초정밀 AI 디바이스를 도입하더라도 잦은 고장과 오탐지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 연합학습 모델을 통제하고, 시스템을 유지보수하며, 휘발되는 암묵지를 명시적 데이터로 서둘러 치환할 사내 IT 인력의 수급은 난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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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 공장에서 자율 제조 체제로: 대·중소기업 격차를 허무는 AI 상생 생태계

사업장이 영세하면, AI의 도입과 운영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가. 발주처는 불량품이 하나도 없이, 최고 속도로, 1초도 멈추지 않는 상태(OEE)를 늘 지향한다. 오늘 비가 와서 습도가 10% 올랐으니 건조기 온도를 3도 올리고 롤러 압력을 1% 낮추라는 공정 최적화(Process Optimization)의 암묵지를 실시간 처리하는 AI 기술이 시급하다. 미세한 마찰음이나 진동 패턴의 변화를 포착하여 설비가 언제 고장 날지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예지보전 AI 기술(Predictive Maintenance)도 필수적이다. 이 기술들은 버리는 원자재 비율을 극단적으로 낮추는 사전 수율 방어(Proactive Yield Defense)가 가능하다. 최종 공정 단계에서 미세 결함을 0.1초 이하 단위로 탐지하는 AI 기술(Machine Vision AI)로 불량품을 걸러낸다. 이러한 AI 기술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공공 인프라로 구축하여 빠르게 현장으로 확산해야 한다.

1~4차 협력사 전체에 공공 인프라를 접목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영세성을 최대한 고려하여 공사가 거의 없어야 한다. 계기판이 있는 장비에는 수치를 읽어 서버에 전송할 저가 카메라를 장착한다. 기계 수명을 예측하기 위해서 기계 근처에 전류-진동-음향 등을 감지하는 센서를 배치한다. 컨베이어 벨트에 품질 관리하는 초경량화 AI 모델이 탑재된 디바이스를 설치한다. 공정 최적화와 중앙 통제를 위해서 공장 사무실에 경량화 AI 모델이 동작하는 소형 서버를 구비한다. 공공 인프라 도입 비용이 거의 없고, 클라우드 비용을 포함한 운영비를 창의적으로 상생할 수 있는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서버에서 활용할 분야별 맞춤형 사전학습된 AI(Vertical Zero-shot AI Model)를 배포해야 한다. 공장만의 해자(Moat)인 데이터를 자동 수집하면서도 보안 이슈 없이 AI 모델의 수준을 강화하는 연합학습(Federated Learning) 기법으로 모두가 이익인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공장 직원이 별도로 익혀야 할 사항을 최소화하되, 제반 시스템의 이해를 높이도록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제조 공장은 단번에 자율 제조 체제로 도약한다. 고객과 직결되고, 품질과 해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진다. 대기업과 협력사 간의 격차는 사라진다. 우리가 꿈꿔야 할 미래이며 준비해야 할 현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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