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율과 지식재산 축적 평가하고
공정한 계약 통해 창작기반 다져야

세계는 K콘텐츠에 열광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 뒤에 얼마나 많은 기업이 성장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콘텐츠산업의 경쟁력을 살피려면 흥행작과 수출액뿐 아니라 산업을 떠받치는 사업체의 구성과 변화도 함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사업체 수는 생태계의 저변을 보여주지만, 숫자만으로 성장의 질을 판단할 수는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4년 기준 콘텐츠산업조사에 따르면 사업체 수는 12만875개다. 2020년 9만9551개에서 4년 동안 약 21% 늘었다. 외형상 성장세가 뚜렷하다. 그러나 장르별 통계를 살펴보면 각기 다른 산업의 현실이 담겨 있다.
가장 많은 사업체를 가진 장르는 음악이다. 3만7082개로 전체의 30.7%를 차지한다. 이 숫자를 K팝 제작 생태계의 크기로 읽기는 곤란하다. 음악 사업체의 78.9%가 노래연습장이기 때문이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9156개 사업체 가운데 79.1%는 게임방이고, 제작·배급업체는 15.3%다. 음악과 게임의 사업체 수에는 창작 기업과 생활밀착형 서비스 기업이 함께 들어 있다.
출판 역시 3만3629개라는 숫자만으로 창작의 활력을 설명하기 어렵다. 출판업뿐 아니라 도소매업과 인쇄업이 포함돼 있어서다. 출판사의 성장을 보려면 실제로 책을 내는 기업과 신간 발행 실적을 함께 봐야 한다. 정책의 출발점은 장르별 총사업체 수를 비교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기능을 맡은 사업체가 늘고 줄었는지 확인하는 데 있다.
한편 사업체 수가 감소하는 장르도 신중하게 해석해야 한다. 만화는 2020년 6144개에서 2024년 4991개로, 게임은 1만1541개에서 9156개로 줄었다. 이를 창작 기업의 쇠퇴나 대형 플랫폼의 독과점 탓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만화는 도소매·임대업과 웹툰 제작·유통업을, 게임은 PC방과 게임 제작·배급업을 구분하여 증감을 분석해야 한다. 여기에 제작사의 생존율과 시장 집중도, 창작자의 수익 배분을 함께 분석하면 산업 생태계의 실체가 드러난다.
사업체 수가 늘어난 장르도 숫자 너머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캐릭터 사업체는 4722개로 2020년보다 크게 늘었지만, 3분의 2가 상품 유통업이다. 판매점의 확대가 창의적 캐릭터 지식재산의 축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면 애니메이션은 773개로 전체의 1%에도 못 미치지만, 제작업이 91.1%를 차지한다. 기업 수는 비록 적지만 정책적 중요성까지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지식정보 사업체는 같은 기간 9949개에서 1만3831개로 늘었다. 교육과 정보 서비스 등 콘텐츠 활용 분야에서 사업체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이러한 변화를 성장의 기회로 연결하려면 제작 기업의 기술 활용뿐 아니라 데이터를 가공하고 서비스를 구현하는 기업과의 협력도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사업체 수 증가만으로 기술 경쟁력이나 수익성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콘텐츠 정책의 성과 기준을 바꿀 때다. 몇 개 기업을 창업시켰고 몇 개 업체를 지원했는지를 넘어, 지원받은 기업이 살아남아 매출과 고용을 늘리고 자체 지식재산을 얼마나 축적했는지 평가해야 한다. 평균 매출만으로는 대기업의 성과에 가려진 영세기업의 현실을 놓칠 수 있으므로 기업 규모별 성과와 생존율도 함께 봐야 한다.
지원 방식도 기업이 맡은 기능에 맞춰 달라져야 한다. 창작·제작 기업은 개발자금과 지식재산을 확보하고, 유통 기업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기술 기업은 제작 현장과 협력해 연구개발 성과를 활용할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 이러한 지원이 개별 기업의 성장을 넘어 산업 생태계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지려면 거래의 투명성도 높아져야 한다. 특히 플랫폼과 창작자 사이의 공정한 계약을 통해 성장의 성과가 창작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업체 수는 정책 판단의 출발점이다. 그 숫자 뒤에 어떤 기업이 있고, 누구에게 성장의 기회가 돌아가는지를 읽어야 한다. K콘텐츠의 미래는 기업의 수를 늘리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양한 기업이 창작의 가치를 지키며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