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가 분기 영업이익 100조원 시대를 열었다. 국내 기업은 물론 글로벌 기술기업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기록이다.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은 107조4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82.5% 급증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범용 D램 가격까지 치솟으면서 반도체 산업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불과 몇 년 전 메모리 불황으로 실적 부진에 시달렸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그런데 시장의 반응은 의외로 차갑다.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한 8일 주가는 오히려 하락했다. 최근에는 중국 반도체 기업의 기술 진전과 AI 투자 지속성에 대한 우려가 겹치며 글로벌 반도체주가 일제히 흔들린다. 기업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벌고 있는데 투자자들은 벌써 다음 불황을 걱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반도체 산업에서 지금의 호황이 미래의 호황까지 보장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메모리는 대표적인 경기순환 산업이다.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이 오르고 기업들은 생산능력을 확대한다. 그러나 수요 증가 속도가 둔화하거나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은 다시 하락한다. 수십 년간 반복된 공식이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의 추격이다.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D램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첨단 메모리 기술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아직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기술력과 양산 경쟁력을 따라잡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이 범용 메모리 시장에서 공급을 늘리면 국내 기업의 가격 결정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누리는 높은 수익성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장담하기 어려운 이유다.
AI 투자에도 불확실성이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확보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하지만 투자 규모에 걸맞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검증 과정에 있다.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 부족도 변수다. 아무리 많은 그래픽처리장치(GPU)와 HBM을 확보하더라도 이를 가동할 전력과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투자 계획은 늦춰질 수 있다. AI 시장의 성장 가능성과 AI 투자가 현재 속도로 지속될 수 있는지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
그렇다고 반도체 호황을 거품으로 치부할 이유는 없다. AI는 산업 전반의 컴퓨팅 수요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HBM과 고성능 D램은 AI 인프라의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시장이 얼마나 성장하느냐보다 그 성장에서 누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익을 가져가느냐다.
이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고민해야 할 것도 여기에 있다. 높은 메모리 가격에 기대는 수익 구조를 넘어 차세대 HBM과 첨단 패키징, 고객 맞춤형 반도체 등으로 기술 격차를 벌려야 한다. 호황기에 확보한 막대한 현금은 생산능력을 무작정 확대하는 데 쓰기보다 불황에도 흔들리지 않을 경쟁력을 만드는 데 투입해야 한다. 정부 역시 반도체 산업의 성과에 기대기보다 전력망과 용수, 인재 확보 등 기업 투자가 실제 경쟁력으로 이어질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의 진짜 실력은 호황기에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느냐로만 평가할 수 없다. 호황이 끝난 뒤에도 경쟁력을 지키고 새로운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실적이 좋을 때는 누구나 낙관한다. 그러나 산업의 미래는 가장 잘나갈 때 어떤 준비를 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100조원이라는 숫자에 취하기보다 그다음 10년을 고민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