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공불락 美 뚫은 한화 K9...아직 ‘X’가 붙은 이유

난공불락 美 방산시장 뚫었다…K9, 9년 도전 결실
평가 1위에도 막판까지 협상…시제품 9문 주문 확보
무기 구매국서 공급자로…시험평가·양산 수주 과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차륜형 자주포(K9MH)가 국방과학연구소 시험장에서 사격 시험을 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1776’.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해다. 미 육군은 한국에서 개발한 차륜형 자주포에 이 숫자를 붙였다. 이름은 ‘XM1776’. 미국의 포병 지원을 받던 한국이 이제 미군에 자주포를 공급한다. 다만 이름 앞의 ‘X’는 아직 넘어야 할 문턱을 보여준다. 개발·시험 단계라는 뜻이다.

15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한화디펜스USA는 미 육군 기동전술화포(MTC) 사업에서 XM1776 시제품 총 9문을 주문받았다. 추가 9문을 구매할 수 있는 옵션도 있다. 지난 8월 시제품 공급계약을 체결한 뒤 이달 첫 장비를 납품했다. 현지시간 12일 미국 육군협회 연례행사 ‘AUSA 2026’에서는 미 육군과 함께 XM1776이라는 명칭을 공개했다.

평가 1위에도 계약 막판까지 긴장감

미국 시장 진입은 9년간 준비한 결과다. 한화는 2017년 미 육군 방산전시회(AUSA)에 K9 실물을 전시하며 시장을 두드렸다. 미국은 세계 최대 방산시장이지만 국내 기업에는 문턱이 높았다. 탄약과 부품을 넘어 한국산 완성 무기체계를 미군에 공급하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제품부터 미군 수요에 맞췄다. 기존 K9은 궤도로 움직이지만 미국에 공급하는 K9MH는 바퀴로 이동한다. 한화는 K9의 기술을 활용해 차륜형 자주포를 개발했다. 이미 수출한 제품의 성과에 기대기보다 미국이 필요로 하는 장비를 제안한 것이다.

경쟁 상대는 영국 BAE시스템스와 독일 라인메탈 등 세계적인 방산기업들이었다. 댄 드리스콜 미 육군장관은 의회 청문회에서 MTC 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화를 직접 언급했다. 그는 “한국은 한화와 함께 매우 좋은 모델을 갖고 있다(The Koreans have a very good version with Hanwha)”고 말했다. 6월께 한화가 유력 후보로 부상하면서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 최종 선정까지는 두 달 가량 남은 시점이었다.

결정적인 변화는 8월에 포착됐다. 한화는 평가점수 1위에 올랐고 BAE시스템스가 뒤를 쫓고 있었다. 먼저 시제품 6문을 공급하는 사업 구조도 구체화됐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미국 측과 최종 계약 조건을 조율하는 절차가 남아 있었다. 언제든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웠다. 결과 발표 일주일 전까지도 한미 양측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막판까지 치열한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최종 선정 사실이 알려진 것은 8월 19일이었다. 미 육군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MTC 사업을 위한 K9MH 시제품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그다음 달 미국 아칸소주에 약 3조원을 투자해 155㎜ 포탄과 추진장약을 생산하는 거점을 구축하겠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확정 주문 50% 증가…미군 공급자로 첫발

첫 계약 이후 공개된 확정 주문은 늘었다. 지난 8월 발표는 시제품 6문과 추가 12문 옵션이었다. 한화가 13일 공개한 영문 보도자료에는 주문 9문과 추가 9문 옵션으로 명시됐다. 발표 기준으로 확정 물량이 3문, 50% 증가했다. 옵션은 미군이 필요에 따라 추가 구매할 수 있는 권리다. 한화 입장에서는 판매 여부가 정해지지 않았던 물량 일부가 실제 일감으로 바뀐 셈이다. 공급할 물량이 늘어난 만큼 생산과 납품 계획을 세울 기반도 커졌다.

다만 사업 전체 규모가 확대된 것은 아니다. 옵션을 포함한 최대 공급 가능 물량은 18문으로 같다. 주문 증가가 기존 옵션 행사에 따른 것인지, 계약조건을 조정한 결과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시제품 주문 증가를 미군의 정식 채택이나 대량 도입 결정으로 해석해서도 안 된다.

이번 계약은 한국이 미국의 무기 구매국에서 공급자로 역할을 넓혔다는 의미가 있다. 미국산 주요 무기체계를 도입해온 한국이 자체 개발한 장비로 미군 전력 현대화에 참여하게 됐다. 한미 방산협력이 완성 무기체계의 개발·생산 분야로 확대되는 사례다.

후속 양산으로 이어지면 사업 범위도 넓어진다. 자주포 운용에는 교체 부품과 정비, 교육이 필요하다. 장비 판매 이후에도 장기간 후속 사업이 이어질 수 있다. 미군의 시험과 운용을 통해 성능을 입증하면 다른 국가의 차륜형 자주포 사업에서도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첫 납품이 끝 아냐...다음은 성능·가격·납기

한화는 미국 내 생산을 뒷받침할 기반도 마련하고 있다. 앨라배마주 오펠라이카에 XM1776과 K9 계열 자주포의 체계통합·시험을 위한 1단계 거점을 구축하고 있다. 부품과 장비를 결합하고 성능을 확인하는 시설이다.

공급망 현지화도 추진한다. 한화 경영진은 기존 거래업체와 신규 협력 후보를 포함한 70여 곳을 만나 미국 내 포병장비 생산 협력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한국에서 시제품을 납품하는 데서 나아가 미국에서 생산과 운용을 뒷받침하겠다는 구상이다.

남은 첫 관문은 시험평가다. 미 육군은 약 4년에 걸쳐 시제품 제작과 시험, 장병 운용평가를 진행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사격 성능은 물론 반복적인 운용과 정비에서도 신뢰성을 입증해야 한다. 양산 발주 과제도 남았다. 시제품 공급만으로 후속 주문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미군의 소요와 예산, 평가 결과가 발주 규모와 시점을 좌우한다. 현지 생산을 확대하면서 국내 협력사의 참여와 수익성을 얼마나 유지할지도 과제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이번 계약은 한국이 미국에 무기를 파는 데서 나아가 미군의 전력과 생산 기반을 뒷받침하는 파트너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진정한 성과는 시험평가를 통과하고 국내 협력사까지 참여하는 생산·정비 체계를 구축해 장기 주문으로 연결할 때 완성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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