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답변 검증·위임 범위 판단 등 ‘인간중심 AI 리터러시’ 제안

정부가 전 국민의 인공지능(AI) 활용 능력을 높이기 위한 교육을 확대하고 있지만, 단순히 AI를 ‘잘 쓰는 법’을 가르치는 데서 벗어나 AI를 왜 사용하는지, AI가 내놓은 답을 어디까지 믿을지, 어떤 판단까지 AI에 맡길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2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발간한 ‘KISDI AI Outlook’에 실린 황주성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의 ‘AI 리터러시 정책, 디지털 리터러시 정책과는 어떻게 달라야 하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AI 리터러시 정책은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 기술적·기능적 활용 역량에 상대적으로 무게가 실린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생성형 AI 확산으로 기존의 ‘디지털 격차’와는 다른 형태의 ‘AI 격차’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생성형 AI는 이미 보편화된 PC나 스마트폰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별도의 복잡한 사용법을 익히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지만, 접근성이 높다고 해서 모든 이용자가 같은 성과를 얻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기존 디지털 격차는 인터넷이나 기기에 대한 ‘접근→역량→활용→성과’가 단계적으로 이어지는 방식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 정책도 인터넷망과 PC 보급에서 이용교육, 전자정부·전자상거래 등 서비스 확대 순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생성형 AI는 다르다는 게 보고서의 분석이다. AI는 접근부터 활용과 성과까지 단계 간 장벽이 낮고 거의 동시에 이뤄진다. 정보 검색뿐 아니라 번역과 요약, 초안·보고서·발표자료 작성, 통계 분석과 결과 해석 등 과거 사람이 직접 하던 업무까지 빠르게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AI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 역시 단순히 ‘사용법을 몰라서’만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가 2025년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 AI 서비스를 이용해본 경험이 없는 응답자의 71.4%는 AI 기술이 어디에 적용됐는지 식별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AI 이용자의 경우 이 비율은 28.1%였다. AI를 이용하면 자신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응답도 미이용자는 68.0%에 달한 반면 이용자는 20.7%였다. AI에 대한 인식과 이해 자체가 새로운 격차를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확인됐다. 보고서가 인용한 영국의 ‘AI Skills for Life and Work’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7%가 AI를 알고 있고 73%가 최근 한 달 동안 AI를 사용하거나 소비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지만, AI를 상세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응답은 17%, 일상에서 AI를 사용하는 데 자신이 있다는 응답은 28%에 그쳤다. 연구진은 기술교육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AI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황 교수는 이에 기존의 디지털 리터러시와 구별되는 개념으로 ‘인간중심의 AI 리터러시’를 제시했다. 단순히 AI를 사용할 줄 아는 것을 넘어 인간이 자신의 목적과 가치에 따라 AI 사용 여부와 방식을 결정하고, AI가 제공하는 정보와 추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AI에 어느 정도까지 판단을 맡길지 스스로 통제하는 능력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능력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목적지향적 역량’은 “AI를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능력이다. 두 번째인 ‘인식론적 역량’은 “AI와 함께 어떻게 더 잘 알고, 생각하고, 판단할 것인가”에 관한 능력이다. 마지막 ‘행위주체적 역량’은 “AI에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인간에게 남길 것인가”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보고서는 싱가포르와 핀란드, 네덜란드, 독일, 캐나다 등 5개국의 전 국민 대상 AI 리터러시 정책도 비교했다. 국가마다 강조점은 달랐지만 AI를 단순한 도구 사용 능력을 넘어 인간의 판단과 사고 능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싱가포르는 AI를 어떤 문제와 목적에 적용할 것인지 판단하는 ‘목적지향적 역량’을 상대적으로 강조했다. 핀란드·네덜란드·독일은 AI의 결과와 주장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인식론적 역량’에 무게를 뒀다. 캐나다는 AI가 자신의 삶에 어디까지 관여하도록 할 것인지 이용자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행위주체적 역량’을 명시적으로 정책 목표에 포함했다.
예컨대 핀란드의 ‘Elements of AI’에서는 학습자가 신문·잡지·블로그 등에 등장하는 AI 관련 주장을 직접 찾아 정확성과 사회적 함의를 평가하도록 한다. ChatGPT 등 생성형 AI를 참고하는 것은 허용하지만 최종 답변은 학습자 자신의 의견으로 작성하도록 한다. 일부 과제에서는 다른 학습자의 답변을 평가하는 동료평가도 이수 요건에 포함하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대한민국 인공지능 행동계획’은 생애주기별 맞춤형 AI 역량 강화와 국민 대상 기본역량 교육 콘텐츠 개발, 지역 거점 AI·디지털 학습공간 운영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누구에게 어떤 AI 활용 능력을 가르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게 보고서의 진단이다.
황 교수는 AI 리터러시 정책의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 ‘인간중심의 AI 리터러시’를 국가 AI 정책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원칙으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AI 윤리가 공정성이나 안전, 개인정보 보호 등 지켜야 할 규범을 제시한다면 인간중심 AI 리터러시는 이를 실제 AI 사용 과정에서 판단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개별 사업으로 흩어진 AI 교육을 넘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범국민 AI 리터러시 전략을 마련하고, 국민의 역할 역시 단순한 교육 수혜자에서 벗어나 AI와 관련한 문제 발굴과 학습, 평가에 참여하는 주체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