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된 건조 슬롯에 조선사 협상력↑
한정된 도크에 고부가 선박 골라 받는다

중동 전쟁 장기화로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수요가 늘면서 국내 조선사들의 '도크 몸값'도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이미 수년 치 일감을 확보한 국내 조선사들의 건조 여력이 제한된 상황에서 VLCC 등 선박 발주가 늘면서 한정된 건조 슬롯을 둘러싼 선주들의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어서다.
30일 조선·해운업계에 따르면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글로벌 원유 운송 시장의 선박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 등 주요 에너지 수송로의 불안이 지속되면서 VLCC 운임도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홍해를 피해 희망봉 등으로 우회하면 운항 거리가 길어지면서 선박 한 척이 운송에 투입되는 기간도 늘어난다. 이에 따라 원유 운송에 투입할 수 있는 선박이 기존보다 부족해져 운임이 상승하며 선주들의 선박 확보와 신조 발주를 자극하는 요인이 된다.
실제 VLCC 발주는 빠르게 늘고 있다. 해운 분석업체 베손노티컬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글로벌 VLCC 발주 잔량은 현재 운항 중인 선대의 38% 수준으로, 지난해 같은 달 15%에서 두 배 이상으로 높아졌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발주 증가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조선소의 건조 능력이 수주 계약의 최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배를 주문하려는 선주는 늘고 있지만 이를 지을 수 있는 조선소의 도크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 조선업계에는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HD현대의 조선 계열사와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국내 주요 조선사들은 LNG운반선과 컨테이너선 등 기존 수주 물량을 바탕으로 이미 수년 치 일감을 확보했다. 최근에는 2030년 인도 예정 선박까지 계약이 체결되고 있다.
여기에 중동발 VLCC 주문까지 몰리면 조선사들의 가격 협상력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도크를 채우기 위해 저가 수주에 나설 필요성이 줄어든 만큼 높은 선가와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선박을 골라 받을 수 있어서다.
실제 VLCC 신조선 가격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해양진흥공사에 따르면 지난 24일 기준 32만DWT급 VLCC 신조선가는 1억2914만달러로 집계됐다.
국내 조선사들은 중국 조선소와 수주량 경쟁을 벌이기보다 친환경·고사양 선박을 중심으로 수익성을 높이는 선별 수주 전략에 더욱 힘을 실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LNG 이중연료 추진 등 고부가 선박에 한정된 도크를 우선 배정하면 선가 상승과 함께 향후 수익성 개선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할수록 이 같은 흐름이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조선업 불황기에는 도크를 채우기 위한 물량 확보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한정된 도크에 어떤 선박을 배치하느냐가 수익성을 좌우하는 국면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내 조선사들은 이미 충분한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수주량 자체보다는 수익성을 고려한 선별 수주가 중요한 상황"이라며 "탱커 시장까지 강세가 이어지면 좋은 조건으로 선박 수주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여지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