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출 수치 아닌 ‘증거 강도’ 따라 규제 차등화 제안

동국대학교 연구팀이 K-라면 수출 과정에서 불거졌던 에틸렌옥사이드(EO) 등 유해물질 검출 논란과 관련해 검출 수치가 아닌 ‘증거의 강도’에 따라 규제 조치를 달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28일 동국대에 따르면 식품바이오융합공학과 박유헌 교수 연구팀은 식품 중 EO와 2-클로로에탄올(2-CE) 잔류 문제를 종합 분석한 논문을 식품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Comprehensive Reviews in Food Science and Food Safety’에 게재했다. 이번 논문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최현서 주무관과 동국대 안유진 연구초빙교수가 공동 제1저자로, 박 교수가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이번 연구는 2021년 8월 유럽으로 수출된 국산 라면에서 2-CE가 검출돼 회수 조치된 이른바 ‘발암물질 검출’ 논란에서 출발했다. 당시 발암물질로 알려진 EO 자체는 검출되지 않았지만 EO가 남긴 ‘흔적 물질’인 2-CE가 검출됐다. 유럽연합(EU)은 이후 2022년 2월부터 한국산 라면에 공인 시험성적서와 정부 증명서를 요구하다 2023년 7월 관련 조치를 해제했다.
연구팀은 2-CE가 EO와 관련된 화학반응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지표로 활용될 수 있지만 오염이 언제, 어떤 경로로 발생했는지까지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특히 라면처럼 건더기와 분말스프 등 여러 원료가 혼합된 가공식품은 오염 경로 추적이 더욱 어렵고, 최근에는 훈증 처리가 없어도 2-CE가 생성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이에 연구팀은 △실제로 측정한 물질 △식품의 형태 △공급망 이력 확인 여부 △다른 발생 경로 존재 여부 등 네 가지를 토대로 검출 결과를 세 단계로 등급화하는 판단 틀을 제시했다.
증거가 강한 1단계에서는 특정 공급자나 로트를 대상으로 정밀 조치를 하고, 증거가 약한 3단계에서는 ‘예방적 조치’임을 명시한 유통 차단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같은 검출 수치가 나오더라도 해당 수치가 갖는 증거로서의 무게가 다르다면 규제 조치의 수위도 달라져야 한다는 취지다.
현재 EO와 2-CE를 해석하는 방식은 국가마다 차이가 있다. EU는 EO와 2-CE를 합산해 EO로 환산한 뒤 사실상 정량한계 수준인 0.02ppm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CE를 별도 물질로 보고 잠정기준을 30ppm, 영·유아용 식품은 10ppm으로 설정하고 있다. 미국 역시 두 물질에 각각 다른 허용기준을 적용한다.
연구팀은 이번 판단 틀이 식품 내 EO와 2-CE의 잔류물 정의를 논의하고 있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국가 간 ‘해석의 공통 언어’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박유헌 교수는 “검출 한계를 더 낮추는 경쟁은 이미 충분하다”며 “남은 과제는 검출된 값이 무엇을 증명하고 무엇을 증명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합의”라고 말했다. 이어 “K-푸드가 세계 시장에서 겪는 통상 마찰의 상당수는 과학의 부재가 아니라 해석의 불일치에서 비롯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