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과 제언] 농촌 부채, ‘저금리 함정’ 살펴봐야

기사 듣기
00:00 / 00:00

정부의 농업정책을 살펴보면 ‘저리자금’, ‘정책자금’이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연 1~2%대의 낮은 금리로 농지를 구입하고 시설을 짓고 영농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은 농민에게 분명 도움이 된다. 특히 자본이 부족한 청년농에게 정책자금은 농업에 진입할 수 있는 중요한 사다리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이자가 싸다는 것과 그 돈을 갚을 수 있다는 것은 같은 이야기일까. 2025년 농가 한 곳의 평균 부채는 4771만원으로 전년보다 6% 증가하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특히 농업용 부채는 11.3% 늘었다. 스마트팜과 시설현대화, 후계농 육성 등 농업의 미래를 위한 투자가 확대된 영향도 있다.

물론 부채가 늘었다고 농가 경영이 모두 나빠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농업이라는 산업의 특수성이다. 농지를 사고 시설을 짓고 농기계를 구입하면 원금 상환은 시작된다. 그러나 농업소득은 농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 폭염과 집중호우, 냉해 한 번이면 한 해 농사를 망칠 수 있고 농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올라도 농산물 가격에 그대로 반영하기 어렵다. 심지어 풍년이 들어 생산량이 늘면 가격이 떨어져 소득이 줄기도 한다.

그런데 대출 원리금은 흉년에도, 가격 폭락에도 정확한 날짜에 돌아온다. 2025년 농가소득은 5467만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반가운 수치다. 그러나 농업소득뿐 아니라 공익직불금과 기초연금 등 이전소득 증가도 전체 농가소득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단순히 농가소득이 늘었으니 부채도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특히 청년농 정책은 더욱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농촌으로 청년을 불러들이면서 농지 구입부터 시설 설치, 스마트팜 조성까지 대출을 중심으로 지원한다면 청년은 농사를 배우기도 전에 채무자가 될 수 있다. 정책자금은 분명 기회다. 그러나 충분한 소득 모델과 판로가 없다면 낮은 금리의 대출도 결국 갚아야 할 원금으로 남는다. 부모 세대의 농장을 승계하는 청년에게는 시설과 농지만이 아니라 기존 부채까지 경영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농업정책의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얼마나 낮은 금리로 빌려줄 것인가’가 아니라 ‘농민이 무엇으로 갚을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대출을 늘리거나 줄이는 것만으로 해결할 문제도 아니다. 품목별 수익성과 농가의 상환 능력을 살피고, 기후재해나 가격 폭락이 발생했을 때 부채가 곧바로 농가의 몰락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소득과 경영 안전망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청년농 지원 역시 자금 공급을 넘어 판로와 적정가격, 경영 지원까지 연결되어야 한다.

정책금리가 1%라고 해서 농민이 짊어지는 위험까지 1%가 되는 것은 아니다. 농가가 빚을 감당하지 못해 농업을 떠나면 사라지는 것은 한 사람의 사업장만이 아니다. 농지와 생산기반, 지역 공동체와 우리의 먹거리 생산 능력도 함께 약해진다. 농민에게 필요한 것은 더 싼 빚만이 아니다. 빚을 갚고도 다음 해 다시 씨앗을 뿌릴 수 있는 농업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많이 본 뉴스
댓글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