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그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은 막대한 국가 지원을 바탕으로 디스플레이, 배터리, 석유화학, 조선, 철강 등 여러 제조업 분야에서 한국을 추월하고 있다. 공급과잉과 저가 공세도 거세다. 2023년에는 한중 수교 31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 무역수지가 적자로 전환됐다.
마지막 보루인 반도체도 안심할 수 없다. D램의 기술격차는 약 2~3년 수준으로 좁혀졌고, 낸드는 곧 기술 격차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그리고 기술과 인력의 해외 유출 우려까지 겹치면서 이를 기업 간 경쟁만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경제가 안보다. 오늘날 안보는 국경을 넘어 우리가 먹고사는 경제와 산업을 지키는 문제까지 확장되고 있다. 9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는 중국을 제외한 19개국이 ‘비시장 정책·관행’을 해소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고, 이는 의장성명에 반영됐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경제가 국가안보의 영역이라면 그 대응을 기업에만 맡길 수 있는가? 기업은 이윤과 비용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반면 국가는 핵심기술과 산업기반, 위기 시 산업 유지 가능성을 살펴야 한다. 그리고 두 기준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기업은 국산이라는 이유로 두 배 가까이 비싼 소재를 선택하기 어렵다. 더 안전한 공급망을 선택하기 위해 발생하는 추가 비용은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공공의 비용, 즉 ‘안보 프리미엄’으로 봐야 한다.
중국의 국가 지원을 비판하면서 국가가 나서자는 것이 모순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과잉생산과 가격왜곡을 만드는 지원과, 위기에 대비해 핵심 산업기반을 유지하는 지원은 목적부터 다르다.
미국은 이미 국가안보에 필요한 산업기반을 시장 논리에만 맡기지 않는다. 공급망 위기 이후 반도체, 배터리, 핵심광물·소재, 의약품을 핵심 공급망으로 관리하고, 반도체법(CHIPS법)과 국방생산법(DPA)을 통해 재정지원과 투자·구매확약 등의 수단을 활용하고 있다.
한국도 이른바 ‘공급망 3법’의 제도적 틀을 갖췄다. 이제는 어떤 기술과 소재, 부품, 장비의 생산기반이 사라졌을 때 국가안보와 산업 전체가 취약해지는지를 진단하고, 반드시 지켜야 할 대상을 선별해야 한다. 특히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중소·중견기업을 살펴봐야 한다. 가격경쟁에 밀려 사라지는 기업 가운데에는 위기 시 대체하기 어려운 기술과 생산능력을 가진 곳도 많다. 그리고 지키는 비용보다 사라진 뒤 되돌리는 비용이 훨씬 크다.
이제는 이 ‘안보 프리미엄’을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추가 비용을 연구개발비와 조달가격 등에 반영하고, 시장 논리만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핵심 산업기반에는 장기계약과 선구매, 금융지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조달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가격보다는 보안성과 공급망 신뢰성, 위기 시 공급 지속 가능성도에 대한 비중이 높아져야 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신뢰할 수 있고 지속 가능한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한미동맹을 비롯해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과 함께 구축해야 한다. 우선 반도체와 우주항공·방위산업의 핵심 소재·부품·장비부터 시작해보자.
평상시에는 기업이 시장에서 경쟁한다. 그러나 위기 시에는 그 기업의 기술과 생산능력이 곧 국가의 힘이 된다. 경제가 안보라면, 경제를 지키는 비용도 국가가 함께 부담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