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5 200억원이 넘는 자동차 : 슈퍼리치들의 슈퍼카 [THE R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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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RARE ] VOL. 15

200억원이 넘는 자동차:
슈퍼리치들의 슈퍼카

"천외천(天外天). 하늘 밖의 하늘이 있다."

부자 중에서도 '슈퍼리치'라 불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명품관의 오픈런 줄에는 그들이 없습니다. 세상의 0.0001%로 살아가는 그들, '천외천'의 삶은 우리의 상식 밖 궤도에서 움직입니다.

로고가 없는 3000만원짜리 코트, 대중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1억원의 침대, 그리고 지도에서 지워진 리조트. 남들이 알아봐 주길 바라는 '과시'가 아니라, 남들은 결코 알 수 없는 '단절'을 사는 그들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요.

이투데이 [THE RARE]는 일반인들은 접하기도 힘든,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 훔쳐보고 싶은 견고한 성벽 안쪽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로고가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무엇인지, 그들이 지갑을 여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자본주의 최정점에 선 그들의 소비와 취향, 그 속에 숨겨진 부의 트렌드를 들여다 봅니다.

상위 0.0001%가 사는 세상의 문을 열다

VOL. 15 슈퍼카

(출처=페라리 공식 홈페이지 캡처)

몇 해 전, 세계 부호 순위에 이름을 올린 한 인물이 페라리에 원오프 모델 제작을 의뢰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페라리의 한정판 모델을 소유한 이력이 없어 브랜드와 충분한 ‘관계’를 쌓지 못했다는 이유였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일화는 세계 최상위 부호들의 실제 차고 사정과도 묘하게 맞아떨어집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억만장자가 된 뒤에도 한동안 낡은 혼다 어코드를 몰았고,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지금도 캐딜락 한 대로 만족합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파가니 우아이라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거리에서는 혼다 재즈를 타는 모습으로 더 자주 목격됩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가진 사람들 중 상당수가, 정작 이런 차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 롤스로이스만 500대 넘게 보유해 기네스 기록에 올랐고, 전체 컬렉션은 7000대, 약 50억달러 규모에 이릅니다. 그러나 그런 그조차 롤스로이스의 코치빌트 원오프 프로그램에 자동으로 초대되는 것은 아닙니다. 차고에 있는 차의 수보다, 어떤 관계를 맺어왔느냐가 더 우선이기 때문이죠.


보통의 세계에서는 '돈'이 자격입니다. 값을 치를 수 있다면 문은 열립니다. 그러나 단 한 대만 존재하는 차의 세계에서는, 돈은 입장권이 아니라 최소 조건에 불과합니다. 진짜 자격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 브랜드와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이 거래해왔는가. 현재 어떤 차들을 소유하고 있는가. 심지어 그 자격을 증명한 뒤에도, 최종 디자인을 결정하는 것은 구매자가 아니라 제조사입니다. 돈을 내는 사람과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다른 세계, 그것이 이번 호에서 짚어볼 첫 번째 풍경입니다.

그리고 이 세계에는 또 하나의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그토록 어렵게 자격을 얻어 차를 손에 넣고 나면, 그때부터 새로운 임무가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차를 완성된 순간 그대로 지켜내는 일입니다. 차 한 대를 만드는 데 들어간 시간 못지않게, 그 차를 처음 상태 그대로 유지하는 데도 만만치 않은 정성과 비용이 들어갑니다. 이번 호는 단순히 '가장 비싼 차'가 아니라, 그 차를 가질 자격과 그 차를 지켜내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세상에 단 한 대

그 자격과 방식을 들여다보기 전에, 먼저 짚어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 차들이 애초에 왜 이토록 다른 층위에 놓이게 됐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자동차가 있습니다. 팔리기 위해 만들어진 차, 그리고 단 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차. 전자는 아무리 비싸도 결국 몇 백, 몇 천 대의 형제를 갖습니다. 같은 도면, 같은 부품, 같은 조립 라인을 공유합니다. 반면 후자는 완성되는 순간 그 존재를 증명하는 도면 자체가 폐기됩니다. 금형은 부서지고, 데이터는 봉인되고, 다시는 같은 차가 태어나지 않습니다.

이 희소성은 숫자로 매길 수 없습니다. 한정판의 가치는 적은 생산 대수에서 나오지만, 원오프의 가치는 반복이 불가능하다는 데서 나옵니다. 비슷한 차를 추가로 주문할 수도, 같은 설계로 한 대를 더 만들 수도 없습니다. 제작 과정에서 내려진 모든 선택은 오직 한 번만 유효하며, 완성된 차는 그 자체로 유일한 원본이 됩니다. 원오프를 둘러싼 엄격한 자격과 까다로운 관리 방식도 바로 이 대체 불가능성에서 비롯됩니다.

단 한 명을 위해 제작된 차부터,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지하 개러지까지.

이번 호에서는 슈퍼리치들만이 공유하는 '천외천(天外天)'의 슈퍼카를 들여다봅니다.

STEP 01 . ONE OF ONE

부가티 라 부아튀르 누아르, 검은 차에 대한 헌사

▲부가티 라 부아튀르 누아르. (출처=부가티 공식 홈페이지 캡처)

2019년 3월, 제네바 모터쇼의 부가티 부스에는 사진 촬영이 금지된 차 한 대가 서 있었습니다. 라 부아튀르 누아르, 프랑스어로 '검은 차'. 공개 당시 부가티는 이 차가 이미 판매됐다고만 밝혔을 뿐, 가격도 구매자도 확인해주지 않았습니다. 이후 업계에 알려진 가격은 세금을 제외하고 약 1870만달러. 신차 기준 역사상 가장 비싼 자동차라는 타이틀이 이때 처음 붙었습니다.

이 차는 순수 창작물이 아니라 헌사입니다. 원형은 1936년 생산된 단 네 대의 부가티 타입 57SC 아틀란틱 중 하나, 그중에서도 2차대전 중 행방불명된 '전설의 한 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라 부아튀르 누아르의 길게 뻗은 보닛과 중앙을 가로지르는 리벳 라인은 이 잃어버린 원형의 실루엣을 그대로 재현한 결과입니다. 부가티 11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이 차는, 원형을 몰았던 창업주의 아들 장 부가티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겉모습과 달리 시론과 동일한 8.0L W16 엔진이 1500마력, 1만6000Nm의 토크를 뿜어내며, 탄소섬유 모노코크 위에 장인이 직접 두드려 만든 알루미늄과 탄소 패널이 올라갑니다. 뒷면 중앙에는 어둠 속에서도 불이 들어오는 부가티 엠블럼이 자리해, 이 차가 정지해 있을 때조차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한 대의 차체를 완성하는 데만 수천 시간의 수작업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유주 추측에 관한 보도

공개 직후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페르디난트 피에히 전 폭스바겐 그룹 회장이 구매자라는 소문이 세계 언론을 통해 확산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부가티 대변인은 데일리메일을 비롯한 여러 매체를 통해 "고객의 사생활을 존중하기 위해 구매자의 신원을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며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부가티는 이 차의 소유주를 지금까지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업계에서는 폭스바겐 그룹의 최대주주 가문 관계자라는 추측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부가티도 소유주 측도 이를 확인한 적이 없습니다. 원오프의 세계에서는 소유주가 누구인지보다, 이 차가 다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가치를 완성하기 때문입니다.

STEP 02 . INVITATION

원오프 프로그램, 초대 받은 자만의 권리

(출처=페라리 공식 홈페이지 캡처)

'단 한 대'라는 타이틀을 가진 차가 부가티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탈리아의 파가니는 2019년, 지붕도 앞유리도 거의 없는 로드스터 한 대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존다 HP 바르케타. 존다의 상징이던 뒷바퀴 위의 탄소섬유 패널은 그대로 두되, 나머지는 완전히 새로 그린 이 차는 메르세데스-벤츠의 7.3L V12 엔진을 얹었고 가격은 약 1750만달러에 달했습니다. 독일에서는 이보다 먼저, 다임러크라이슬러가 이탈리아 디자인 하우스 스톨라와 손잡고 마이바흐 엑셀레로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원래는 신형 타이어의 고속 주행 테스트를 위한 차였지만, 완성된 순간 그 자체로 800만달러짜리 단 한 대의 작품이 됐습니다. 트윈터보 V12를 얹은 이 차의 최고속도는 시속 350km. 만들어진 지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지금 봐도 낯설 만큼 파격적인 실루엣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차들이 보여주는 것은, 원오프의 세계가 한 브랜드나 한 나라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문지기를 자처하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페라리입니다.

페라리는 이 영역을 아예 별도의 조직으로 운영합니다. 이른바 '원오프(One-off)' 프로그램. P80/C, SP3JC, Omologata 같은 이름들이 이 프로그램을 거쳐 태어났습니다. 페라리는 이를 두고 "고객과 디자인 센터의 공동 창작"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문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가장 큰 오해는 "돈만 있으면 주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페라리의 원오프 프로그램은 신규 고객에게 문을 열지 않습니다. 라페라리, 몬자 SP1·SP2처럼 브랜드가 이미 내놓은 한정판을 다수 보유한 최상위 고객—이른바 '컬렉터 티어'—에게만 초청장이 전달됩니다. 딜러를 거치는 일반적인 구매 절차와 달리, 본사 디자인 센터가 직접 고객과 접촉합니다.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초대를 받는 구조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초대를 받은 이후에도 완전한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고객이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방향성과 취향뿐입니다. 최종 스케치와 엔지니어링 승인은 페라리의 수석 디자이너와 본사 위원회가 쥐고 있습니다. 이는 브랜드 헤리티지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설명됩니다. 아무리 큰돈을 낸다 해도, 브랜드가 수십 년간 쌓아온 조형 언어와 어긋나는 디자인은 통과되지 않습니다. 여기에 더해 다수의 원오프 계약서에는 일정 기간 내 재판매 시 제조사에 통보하거나 우선 매수권을 넘기는 조항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차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에도, 훗날 다른 손으로 넘어가는 순간에도 브랜드의 손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 셈입니다.

플라비오 만조니 페라리 수석 디자이너 인터뷰 발언

"돈이 많다고 해서 아무나 원오프 차량을 만들 수 없으며, 차량의 디자인이 페라리의 순수성을 해친다면 우리는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STEP 03 . BESPOKE

롤스로이스 드롭테일, 네 대의 예술품

▲롤스로이스 드롭테일. (출처=롤스로이스 공식 홈페이지 캡처)

부가티와 페라리가 '단 한 대'를 고집한다면, 롤스로이스는 조금 다른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 여정은 '드롭테일' 이전 두 대의 전작에서 시작됩니다.

첫 번째는 2017년 공개된 '스웹테일'입니다. 한 슈퍼요트ㆍ항공기 전문가가 2013년 의뢰한 이 차는 팬텀 쿠페를 기반으로 무려 4년에 걸쳐 완성됐고, 가격은 약 1280만달러였습니다. 두 번째는 2021년의 '보트테일'입니다. 이번에는 신원을 밝히지 않은 세 명의 억만장자가 함께 의뢰인으로 나섰고, 각자의 요트 취향을 자동차에 옮겨 담고 싶어 했다고 전해집니다. 롤스로이스 던을 기반으로 한 6.75L 트윈터보 V12 엔진을 얹은 이 차는 대당 약 2800만달러로, 당시 신차 기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자동차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2023년부터 2024년에 걸쳐, 이 계보의 세 번째 장인 '드롭테일' 시리즈가 공개됐습니다. 정확히 네 대뿐입니다. 라 로즈 누아르, 애머시스트, 아카디아, 세마포어. 각각의 이름처럼 네 대는 완전히 다른 테마와 색채, 소재로 완성됐습니다.

이 중 한 대의 인테리어 목재는 실제 피아노 제작에 쓰이는 원목에서 채취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계기판 위 목재 패널의 결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악기의 소재에서 왔다는 점은, 드롭테일이 지향하는 '완전한 비스포크'가 앞선 두 작품보다도 한 걸음 더 나아갔음을 보여줍니다. 대당 가격은 2000만달러에서 2800만달러 사이로 추정되며, 이 중 한 대는 한국의 소유주가 구매한 것으로 알려지며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습니다.

드롭테일은 부가티나 페라리의 완전한 원오프와 한정 시리즈의 경계에 서 있는 독특한 사례입니다. 네 대라는 숫자는 '유일함'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흔한 한정판도 아닙니다. 롤스로이스는 이 네 대를 하나의 세트가 아니라 각각 독립된 작품으로 설명합니다. 실제로 네 대의 오너들은 서로의 차를 직접 보기 전까지 다른 세 대가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알지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롤스로이스를 500대 넘게 보유해 기네스 기록에 오른 브루나이 국왕조차 이 세 편의 코치빌트 시리즈 중 어느 것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서문에서 언급했듯, 보유 대수는 이 세계의 입장권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알렉스 이네스 롤스로이스 코치빌트 디자인 총괄 인터뷰 발언

"드롭테일 시리즈는 총 4대 제작되지만 대량 맞춤화가 아닙니다. 차체 골격의 비율을 공통으로 설계했을 뿐, 4명의 고객 각자가 완전히 다른 스토리와 소재, 예술적 기호를 반영한 4개의 독립된 예술품입니다."

STEP 04 . PRESERVATION

차보다 비싼 방, 지하에서 완성되는 보존

(사진=AI 생성)

진짜 일이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수십억원짜리 차 한 대를 지키기 위해서는 정교한 숫자 작업이 필수입니다.

목표 온도는 보통 18도에서 21도, 상대습도는 40에서 55퍼센트 사이로 맞춥니다. 이 범위를 벗어나면 크롬과 알루미늄 표면은 부식되고, 가죽 시트와 우드 트림은 갈라집니다. 드롭테일처럼 실제 원목이 들어간 차라면 관리는 한층 더 까다로워집니다. 일부 컬렉터는 원목이 채취된 지역의 계절별 습도 조건까지 참고해 보관실의 환경을 그에 맞춰 설계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빛은 지하를 선택하는 이유가 됩니다. 자외선은 도장과 가죽 색상을 가장 빠르게 손상시키는 요인이기 때문에, 조명조차 자외선 스펙트럼을 걷어낸 제품을 쓰고 조도는 낮게 유지합니다. 여기에 HEPA급 필터와 활성탄 필터를 결합한 공기질 관리 시스템이 더해집니다. 타이어 고무나 오래된 가죽에서 나오는 미세한 가스가 다른 부품을 서서히 열화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화재에 대비해 물 대신 가스로 불을 끄는 소화 설비를 두는 것도 이 세계의 상식입니다. 물이 닿는 순간 전장 장치와 가죽, 목재는 불보다 더 큰 손상을 입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방진 바닥재, 부유식 구조, 개별 차량마다 연결된 상시 배터리 컨디셔너까지 더해지면, 이 모든 설비의 총합이 그 안에 세워둔 차 한 대의 가격을 넘어서는 일도 드물지 않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이야기입니다.

개러지의 정확한 위치는 보험사와 극소수의 정비 인력을 제외하면 누구와도 공유되지 않습니다. 소셜미디어에 위치를 남기지 않는 것은 컬렉터들 사이의 불문율입니다. 차는 세워두기만 하면 오히려 상하기 때문에, 전담 메커닉이 한 달에 한두 번 엔진을 걸고 짧게나마 차를 움직이는 '엑서사이즈' 루틴을 유지합니다. 보험도 일반 자동차 보험이 아니라 미술품에 준하는 감정가 보험을 들고, 매년 독립 감정사에게 재평가를 받습니다. 제작 당시의 서류와 브랜드 인증서는 차량과 물리적으로 다른 장소에 따로 보관됩니다. 도난이나 화재가 나더라도, 이 차가 진짜라는 사실만큼은 끝까지 지켜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EPILOGUE

소유와 향유 사이

(게티이미지뱅크)

지하 갤러리에 세워진 원오프 하이퍼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정적 속에서 보냅니다. 한 달에 한두 번, 전담 메커닉이 찾아와 차량의 상태를 점검하고 시동을 걸 뿐이죠. 엔진이 깨어나는 짧은 순간은 이 차가 수십억 원짜리 조각품이 아니라, 본래 도로를 달리기 위해 태어난 기계라는 사실을 확인시킵니다.

역설적으로 이 차들이 완성 당시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완벽한 상태로 보존하기 위해, 정작 존재의 목적인 ‘달리는 일’은 최소한으로 제한됩니다. 소유할 자격을 얻는 데도, 그 가치를 지켜내는 데도 막대한 비용과 노력이 필요했던 차는 결국 누구보다 조용한 방식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물론 모든 부호가 자동차를 대하는 방식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브루나이 국왕의 차고에는 약 50억달러 규모의 차량 7000여 대가 보관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코미디언 제이 레노는 150여 대의 차량을 직접 정비하고 운전하며, 배우 제리 사인펠드는 80여 대 규모의 컬렉션을 전담 관리팀과 함께 뉴욕의 3층짜리 건물에서 관리합니다.

이들에게 자동차의 가치는 단지 세상에 몇 대 없다는 사실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직접 시동을 걸고, 손질하고, 도로 위를 달리며 쌓아온 시간에서 완성됩니다. 원오프의 세계가 ‘단 한 번 이뤄진 완성’을 지키는 일이라면, 이들의 세계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손길’로 가치를 더하는 일입니다. 같은 부호의 차고라도 그 안을 채우는 철학은 서로 다른 셈이죠. 결국 자동차 컬렉션은 재산의 크기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무엇을 소유했는가만큼,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대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와 비슷한 것들이 있습니다. 자주 쓰면 닳을까 봐 서랍 깊숙이 넣어둔 물건, 너무 소중해 오히려 자주 꺼내 보지 못하는 사진 한 장처럼 말입니다. 온전하게 지키려 할수록 마음껏 누릴 수 없고, 충분히 누리려 하면 조금씩 닳고 변합니다. 지키는 일과 누리는 일 사이에서 자신만의 균형을 찾는 것은 재산의 크기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주어진 숙제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소중한 것을 지켜낸 여러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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