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야 나와라"⋯지갑 털어가는 '쿠지', 무슨 매력이길래 [솔드아웃]

기사 듣기
00:00 / 00:00

지금 화제 되는 패션·뷰티 트렌드를 소개합니다. 자신의 취향, 가치관과 유사하거나 인기 있는 인물 혹은 콘텐츠를 따라 제품을 사는 '디토(Ditto) 소비'가 자리 잡은 오늘, 잘파세대(Z세대와 알파세대의 합성어)의 눈길이 쏠린 곳은 어디일까요?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분명 '꽝'이 없긴 한데, 만족감이 좀처럼 채워지지 않습니다. 손에 작은 굿즈가 하나둘 쌓여도 A상 경품인 대형 피규어가 탐이 나는데요. 한 번만 더 뽑기에 참여하기로 마음먹고 용지를 뽑아 듭니다.

'쿠지' 이야기입니다. 일본 편의점에서 판매되던 뽑기가 국내 캐릭터 상점과 편의점으로 판매처를 넓히더니, K팝 팬덤에도 등장해 눈길을 끌죠.

'최애'를 소장하고 싶은 마음에 당첨의 짜릿함을 더한 쿠지. 뽑는 즐거움만큼 지갑을 자주 열게 한다는 우려도 나오는데요. 꽝 없는 뽑기는 어떻게 '한 번만 더'를 부르는 소비가 됐을까요?

▲나루토의 이치방쿠지. (출처=이치방쿠지 공식 X)

일본서 홍대·용산으로…'쿠지'의 매력은?

쿠지는 일본어로 제비나 추첨을 뜻합니다. 국내에서는 주로 뽑기권을 구매한 뒤 결과에 따라 굿즈를 받는 방식을 가리키는데요. 대표 브랜드는 반다이 스피리츠의 '이치방쿠지'입니다. 국내에서는 '제일복권'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죠.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쿠지' 검색어에 대한 관심도는 130% 증가했는데요. 지난해 10월 75를 기록, 올해 3월 100을 찍으며 관심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반다이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이치방쿠지는 1996년 바람을 이용한 추첨 방식으로 등장했습니다. 지금처럼 매장에서 종이 뽑기권을 뽑는 형태로 일본 편의점에서 판매를 시작한 것은 2003년인데요. 이후 서점과 취미용품점, 공식숍과 온라인으로 판매망을 넓혔습니다.

참여 방법은 간단합니다. 원하는 시리즈의 뽑기권을 구매하고 그 자리에서 결과를 확인한 뒤 해당 상품을 받으면 됩니다. 시리즈마다 1회당 가격은 다르지만 국내에서는 대략 1만3000원 안팎으로 형성돼 있는데요. 피규어와 인형, 수건, 아크릴 소품 등이 등급별로 배정되죠.

이치방쿠지의 특징은 '꽝이 없다'는 겁니다. 원하는 피규어가 나오지 않아도 다른 상품은 받습니다. 마지막 남은 뽑기권을 구매하면 특별 상품을 받는 '라스트원상'도 있죠.

쿠지의 매력은 상품을 얻는 과정에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캐릭터의 굿즈를 앞에 두고 뽑기권을 고르는 순간부터 결과를 확인할 때까지 짧은 긴장감이 이어집니다. 원하는 상품이 나오면 소장의 기쁨에 '내 손으로 뽑았다'는 성취감까지 따라붙죠.

'무엇이든 하나는 받는다'는 점은 첫 구매의 부담을 낮추는 요소로 볼 수 있습니다. 빈손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안도감에 "한 번쯤 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겁니다. 캐릭터 상품을 구경하다가 뽑기라는 놀이에 참여하는 소비로 이어질 수 있죠.

결과를 공유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뽑기권을 뜯는 순간과 당첨 반응은 숏폼 영상의 소재가 되고, 같은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끼리는 어떤 시리즈에서 어떤 상품을 얻었는지가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쿠지는 굿즈에 추첨의 설렘과 획득의 기억을 더하는 상품인 셈입니다.

▲GS25의 '이치방쿠지' 특화 매장. (사진제공=GS리테일)

편의점에서도, K팝에서도…'최애' 따라 넓어지는 쿠지

쿠지 상품은 애니메이션과 만화,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를 소재로 합니다. 국내에서도 '드래곤볼', '에반게리온', '하이큐', 등 여러 작품의 이치방쿠지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최근 인기를 끄는 '치이카와'는 물론 버추얼 유튜버 그룹 '홀로라이브' 상품도 판매 목록에 올라 있습니다. 팬들이 좋아하는 대상에 따라 뽑기의 선택지도 넓어진 모습이죠.

국내 이치방쿠지 계정이 안내하는 공식 판매점은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홍대 AK플라자, 잠실 롯데월드, 부산 신세계센텀 등에 있습니다. 이 밖에 개별 굿즈숍과 온라인 판매점에서도 쿠지를 취급하는데요. 매장이 상품과 뽑기 구성을 직접 마련하는 이른바 '자체 쿠지'도 어렵지 않게 포착됩니다.

편의점도 판매 채널로 합류했습니다. GS25는 지난해 이치방쿠지 키오스크를 도입한 데 이어 올해 7월 부산 서면스타점을 특화 매장으로 선보였습니다. 1층은 편의점, 2층은 이치방쿠지와 캐릭터 상품을 접하는 공간으로 구성했는데요. 생활용품을 사는 매장에 팬들이 머물며 즐길 콘텐츠를 더한 겁니다.

이마트24는 플래그십스토어 '트렌드랩 성수점'에서 이치방쿠지를 운영하는데요. 국내 편의점 업계 최초로 이치방쿠지의 지류형 방식을 도입했고, '라스트원상' 역시 운영합니다.

K팝 시장에도 쿠지가 등장했습니다. K팝 콘텐츠 플랫폼 엠넷플러스는 그룹 아이브(IVE)의 월드투어를 기념해 특별한 쿠지 이벤트를 진행하는데요. 7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되는 해당 이벤트는 총 6개 등급의 경품이 준비돼 있습니다. A상은 이름을 불러주는 15초 내외의 영상, B상은 친필 사인 폴라로이드, C상은 콘서트 친필 사인 머천다이즈(MD), D상은 키링, E상과 F상은 각각 유닛 포토카드 세트와 개인 포토카드입니다.

가장 눈길을 끈 상품은 A상 '이름을 불러주는 영상'입니다. 팬에게 최애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영상은 일반 굿즈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는데요. 캐릭터를 실물로 소장하는 데에서 나아가, 자신에게 건네는 인사를 간직할 기회까지 추첨 상품으로 나온 셈이죠. 해당 쿠지의 판매 가격은 1회당 7500원인데요. 이벤트 오픈 당일 품절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출처=엠넷플러스 공식 X)

"한 번만 더"의 대가?…과소비부터 조작 논란까지

다만 아이브 쿠지의 경우 우려도 나왔습니다. 일부 팬들은 희소한 상품을 기대하며 결제를 거듭하게 하는 방식이라는 취지의 비판을 내놨는데요. 앞선 안유진·장원영의 미디어아트 전시 '안녕(AN-YOUNG)'의 티켓 가격 논란과도 겹치면서 '팬심 수익화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이어졌죠. 이 전시회는 일반 티켓이 3만원, 추가 MD가 제공되는 스페셜 티켓이 6만6000원으로 책정됐습니다.

사실 쿠지는 사행성에 대한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확률형 사업인 데다가 시리즈로 출시되는 만큼 전체 컬렉션을 모으고 싶다는 수집 욕구가 결합돼 소비를 부추기곤 하죠.

이와 별개로 운영의 투명성 논란도 불거진 바 있습니다. 추첨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 부정 판매 사례가 포착된 건데요.

일본 간사이TV는 2022년 오사카 닛폰바시의 이치방쿠지 공식숍에서 이전 세트에 남은 뽑기권 32장을 새 세트에 사전 고지 없이 섞은 사건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원래 80장인 세트에 뽑기권이 추가되면서 소비자들이 예상한 수량을 구매하고도 라스트원상을 받지 못한 건데요. 해당 매장은 영업을 종료했고, 운영사는 영수증을 보유한 고객을 대상으로 반품·환불을 진행한다고 밝혔죠.

쿠지는 안내된 상품 구성과 실제 추첨 조건이 일치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합니다. 정해진 상품을 소진하는 방식이라면 목표 상품과 뽑기권이 각각 얼마나 남았는지가 구매 판단에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요. 판매자가 이를 몰래 바꾸면 소비자는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돈을 쓰게 되죠.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자체 쿠지의 공정성을 의심하는 글을 다수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장 지난달에도 홍대에 있는 한 업체가 조작 논란에 휘말렸는데요. 한 고객이 모든 뽑기 용지를 구매했는데도 A상 당첨용지가 나오지 않은 겁니다. 해당 업체의 해명에 따르면 직원의 실수로 A상 경품 용지 한 장이 누락됐다고 하는데요. 해당 쿠지에 참여한 고객들을 대상으론 환불을 진행한다고 설명했죠.

이런 사례는 쿠지의 재미를 지탱하는 요소가 결국 신뢰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어떤 상품을 받게 될지는 알 수 없어도, 안내된 상품을 뽑을 기회가 실제로 있다는 점은 확실해야 하죠. 상품과 뽑기권 수량을 정확하게 관리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처리 과정을 투명하게 알리는 일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좋아하는 굿즈를 모으고 뜻밖의 당첨에 함께 기뻐하는 즐거움은 쿠지의 분명한 매력입니다. 믿을 수 있는 운영에 각자의 예산 안에서 즐기는 소비가 더해진다면 쿠지는 팬들이 '최애'를 만나는 또 하나의 놀이로 자리 잡을 수 있을 텐데요. 손에 쥔 상품뿐 아니라 뽑던 순간도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면, 그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도 없겠죠.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많이 본 뉴스
댓글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