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콜옵션 행사로 차익 독점…잔여 지분 가치 5000억 넘어
본업 실적, 유동성 방어 및 자사주 소각 여력 확보 관측

유진그룹이 5년 전 베팅했던 우리금융지주 투자가 막대한 현금과 지분 가치로 돌아왔다.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보유하던 우리금융지주 지분 절반을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로 매각해 인수금융(차입금)을 전액 갚고도 3100억원이 넘는 현금을 손에 쥐게 됐다.
투자 초기 리스크를 낮추기 위해 외부 투자자에 넘겼던 지분을 올 초 주식매도청구권(콜옵션)으로 되사오며 수천억 원대 차익을 독점한 구조화 금융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이번 거래로 건설 경기 침체로 본업 적자를 겪고 YTN 인수로 현금이 묶였던 지주회사 유진기업은 물론, 펀드에 함께 출자한 계열사들까지 그룹 전반의 재무구조에 유동성 단비가 내리게 됐다.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유진기업의 종속회사인 유진더블유 유한회사(유진더블유)는 보유 중인 우리금융지주 보통주 1400만 주를 블록딜 방식으로 처분하기로 2일 이사회에서 결정했다. 처분 단가는 주당 3만3189원으로 이날 종가(3만4500원) 대비 약 3.8%의 할인율이 적용됐다. 총 처분금액은 4646억원이며, 제비용을 제외한 순처분액은 4622억원이다.
이번 거래로 유진더블유는 기록적인 차익을 실현했다. 유진더블유는 2021년 12월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하던 우리금융지주 지분 4.0%(2912만2421주)를 주당 약 1만2700원에 사들였다. 이번에 매각한 1400만 주의 취득원가가 약 1778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매각 대금만으로 원금 대비 160%에 달하는 2844억원의 매각차익을 거둔 셈이다.
매각 대금이 유입되면서 SPC의 차입금 부담도 완전히 사라진다. 유진더블유가 보유한 인수금융 잔액은 2025년 말 기준 1498억원(전액 유동부채)이다. 매각 대금(4622억원)으로 이 빚을 전액 상환하고도 SPC 내부에는 3124억원의 현금이 남게 된다. 확보된 대금의 분배 시기와 방식은 향후 사모펀드 사원총회를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유진그룹 관계자는 잉여 현금의 배분 절차에 대해 “구체적인 규모와 방식, 시점은 총회를 거쳐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주목할 점은 절반을 팔고도 남은 지분의 가치다. 유진더블유에는 우리금융지주 주식 1512만2421주(2.06%)가 그대로 남는다. 이번 블록딜 처분 단가 기준으로 환산한 잔여 지분의 시장 가치만 약 5019억원이다. 초기 투자원금과 인수금융 원리금을 모두 회수하고도, 5000억원 규모의 우량 금융지주 지분을 빚 하나 없는 ‘무차입 알짜 자산’으로 남겨두게 된 것이다.
시장에서는 유진그룹이 설계한 ‘콜옵션 레버리지’에 주목하고 있다. 유진그룹은 2021년 11월 유진프라이빗에쿼티(유진PE)를 통해 기관전용 사모투자펀드(PEF)인 유진더블유사모투자 합자회사를 결성하고, 그 100% 자회사로 투자목적회사(SPC)인 유진더블유를 세워 우리금융 지분을 인수했다. 이후 2022년 4월 유진기업은 초기 자금 부담을 줄이고 리스크를 위험회피(헤지)하기 위해 펀드 출자지분 57.26%(1005억원) 중 선순위 지분 39.89%(700억원)를 새마을금고와 산은캐피탈, 신한캐피탈 등 외부 기관투자가에 재매각(셀다운)했다.
당시 유진기업은 안전장치를 걸어뒀다. 펀드 만기 1년 전부터 만료일까지 해당 700억원의 선순위 지분을 확정 수익만 주고 다시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 계약을 체결했다. 우리금융지주의 주가가 오르고 실적이 개선되자 유진기업은 올해 2월 623억원에 콜옵션을 행사해 선순위 지분을 되찾았다.
이 결정으로 유진기업의 펀드 지분율은 17.09%에서 56.98%로 확대됐고, 유진투자증권(22.79%)과 동양(17.09%) 등 계열사 지분을 합쳐 유진그룹의 펀드 지분율은 97.15%까지 치솟았다. 외부 투자자에게 분산될 뻔했던 수천억원대 매각 차익과 잔여 지분의 권리를 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인 유진기업으로 집중시킨 셈이다. 유진기업은 올 상반기 이 같은 사업결합 과정에서만 이미 570억원의 회계상 염가매수차익을 반영하기도 했다.
콜옵션 조기 행사 배경에 대해 그룹 관계자는 “투자 수익 제고를 위해 기존 계약에 따라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블록딜은 본업 부진과 인수합병(M&A) 등으로 유동성이 빠듯해졌던 유진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재무구조 개선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현재 유진기업은 건설ㆍ레미콘 전방산업의 장기 침체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올 상반기 유진기업의 별도 기준 매출은 415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늘었으나, 영업손실은 73억원으로 적자를 키웠다. 여기에 2024년 종속회사 유진이엔티를 통해 YTN 지분 30.95%를 3199억원에 인수하는 등 대규모 자금을 집행하면서 유동성 부담이 가중된 상태였다. 상반기 말 기준 유진기업의 연결 차입부채는 1조3575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유진더블유가 차입금을 갚고 남긴 잉여현금 중 상당액이 펀드 감자나 배당을 통해 유진 계열사들로 배분될 예정이다. 2025년 말 차입금 상환을 기준으로 추산할 경우, 펀드 지분율에 따라 유진기업으로 1780억원이 유입되는 것을 비롯해 유진투자증권 712억원, 동양에 534억원의 현금이 고르게 배분될 것으로 추산된다.
유입될 대규모 현금의 용처에 대해 그룹 관계자는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예정이며, 현재 특정 용도로 정해진 사항은 없다”고 답했다.
회계상 반영 시기와 처분손익에 대해선 “이번 거래에 따른 구체적인 회계상 처분손익과 반영 시점은 관련 회계기준에 따라 결산 과정에서 확정되는 만큼 반영시기를 특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상반기 말 장부가액(주당 2만9136원 수준) 대비 이번 매각으로 발생하는 처분 차액 약 543억 원이 3분기 연결 손익계산서상 금융자산처분이익으로 추가 반영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시장의 다음 시선은 우리금융지주의 지배구조와 유진기업의 주주환원 정책으로 쏠리고 있다. 우선 과점주주 지위의 향방이다. 유진그룹은 2021년 인수 당시 4% 지분을 확보하며 우리금융지주 이사회에 사외이사 1인을 추천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이번 매각으로 잔여 지분이 2.06%로 축소되면서, 기존 과점주주로서 행사해 온 사외이사 추천권 등 지배구조상 권리가 그대로 유지될지 금융권의 관심이 모인다.
이에 대해 그룹 관계자는 “관련 절차 등에 따라 판단될 사항이며, 별도로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잔여 지분의 향후 운용 방안에 대해서도 “현재 잔여 지분의 장기 보유 또는 추가 매각 여부와 관련해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유진기업 자체의 주주환원 확대 여력도 대폭 커졌다. 유진기업은 현재 발행주식수의 11.35%에 해당하는 자기주식을 보유 중이다. 회사는 정관 개정 및 공시를 통해 임직원 주식보상 약정 물량을 제외한 자사주를 상법상 의무소각 기한인 2027년 8월 말 전까지 단계적으로 소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주주환원 정책 실행 가능성에 대해 그룹 관계자는 “자기주식 소각이나 배당 등 주주환원에 관한 구체적인 규모와 시기는 관련 절차에 따라 결정될 사항으로 현재 결정된 내용은 없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