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4 상위 0.001%가 먹는 것 : 슈퍼리치들의 다이닝 [THE R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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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RARE ] VOL. 14

상위 0.001%가 먹는 것:
슈퍼리치들의 다이닝

"천외천(天外天). 하늘 밖의 하늘이 있다."

부자 중에서도 '슈퍼리치'라 불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명품관의 오픈런 줄에는 그들이 없습니다. 세상의 0.0001%로 살아가는 그들, '천외천'의 삶은 우리의 상식 밖 궤도에서 움직입니다.

로고가 없는 3000만원짜리 코트, 대중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1억원의 침대, 그리고 지도에서 지워진 리조트. 남들이 알아봐 주길 바라는 '과시'가 아니라, 남들은 결코 알 수 없는 '단절'을 사는 그들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요.

이투데이 [THE RARE]는 일반인들은 접하기도 힘든,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 훔쳐보고 싶은 견고한 성벽 안쪽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로고가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무엇인지, 그들이 지갑을 여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자본주의 최정점에 선 그들의 소비와 취향, 그 속에 숨겨진 부의 트렌드를 들여다 봅니다.

상위 0.0001%가 사는 세상의 문을 열다

VOL. 14 다이닝

(게티이미지뱅크)

보통 식당에 들어가면 우리는 가장 먼저 메뉴판을 펼칩니다.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고 가격을 확인한 뒤 주문합니다. 자리가 없으면 기다리고, 예약이 어렵다면 가능한 날짜에 맞춥니다. 정해진 영업시간과 복장, 식사 순서를 따르는 것도 손님의 몫입니다.

하지만 가격이 높아지고 손님의 자산이 커질수록 이 익숙한 질서는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어떤 식당에서는 메뉴판이 사라지고 손님이 셰프의 결정에 자신을 맡깁니다. 반대로 어떤 저녁에서는 식당이 사라지고 셰프가 손님의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식재료가 계절과 산지를 벗어나 먼 거리를 건너오기도 하고, 막대한 부를 가진 사람이 몇 달러짜리 익숙한 메뉴를 고집하기도 합니다.


같은 '고급 식사'라는 말로 묶이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제각각입니다. 가장 좋은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새로운 감각을 경험하려는 사람, 누구와도 겹치지 않는 저녁을 원하는 사람, 자신이 익숙한 장소에서 식사하고 싶은 사람, 아무리 재산이 늘어도 오래된 습관만큼은 바꾸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슈퍼리치의 식탁을 들여다보면 돈이 많을수록 무조건 화려한 음식을 찾는다는 통념부터 깨집니다. 이들에게 식사는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기보다, 취향과 생활 방식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시간입니다.

식탁 위, 가장 사적인 권력

한 끼는 수많은 결정으로 완성됩니다. 메뉴와 식재료, 식사 장소와 시간, 함께할 사람과 음식을 만드는 사람까지 어느 하나 저절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답을 고르지만, 슈퍼리치의 식탁에서는 선택지 자체가 새로 만들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손님과 식당의 관계도 끊임없이 뒤집힙니다. 어떤 손님은 비싼 값을 치르고도 셰프가 정한 순서에 철저히 따릅니다.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상태로 자리에 앉아 자신의 저녁을 온전히 맡깁니다. 그러나 식당의 문을 나서는 순간 상황은 달라집니다. 손님이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맞춰 셰프와 식재료가 움직이고, 기존에는 없던 식사가 그날을 위해 새로 만들어집니다.

더 많은 돈을 쓸수록 더 많은 선택권을 얻을 것 같지만, 최고급 다이닝에서는 오히려 선택하지 않는 데 돈을 내기도 합니다. 최고의 전문가가 내린 판단을 믿고 따르는 것, 자신이 알지 못했던 맛과 방식에 저녁을 맡기는 것 또한 이들이 소비하는 경험입니다.

셰프의 하루를 통째로 사는 방식부터,

50년째 같은 아침식사를 지키는 어떤 억만장자까지.

이번 호에서는 슈퍼리치들만이 공유하는 '천외천(天外天)'의 다이닝을 들여다봅니다.

STEP 01 . RARITY

메뉴판이 없는 곳

(출처=Sublimotion Ibiza 홈페이지 캡처)

스페인 이비자의 '서브리모션'에는 일반적인 웨이팅 리스트가 없습니다. 한 번의 저녁을 함께하는 손님이 12명뿐이어서 줄을 세우는 일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파코 론세로 셰프는 20여 개 코스로 이어지는 저녁을 준비하며 음식만큼이나 빛과 소리, 향, 영상의 순서를 치밀하게 설계합니다. 손님이 포크를 드는 순간 테이블은 스크린으로 바뀌고, 다이닝룸의 풍경은 접시 위의 음식에 맞춰 끊임없이 변합니다.

이곳에서 '주문'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어떤 순서로 먹을지는 손님이 자리에 앉기 전부터 모두 결정돼 있습니다. 손님이 고르는 대신 셰프가 완성한 하나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입니다.

일본 교토의 '깃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손님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대체로 먹지 못하는 음식과 알레르기 정도입니다. 3대째 이어진 이 레스토랑은 손님의 취향을 일일이 묻기보다 계절과 색, 식재료의 흐름에 따라 상을 차립니다. 다도의 전통을 코스 요리로 풀어낸 공간에서 손님은 자신의 취향을 주장하기보다 그날의 계절이 이끄는 순서를 따라갑니다.

깃초 셰프 도쿠오카 구니오 인터뷰 발언

"손님에게 선택지를 주지 않는 것, 그것이 오히려 배려일 때가 있다. 계절이 정한 답을 우리가 대신 찾아 접시에 담을 뿐이다."

미국 뉴욕의 '마사'는 손님의 개입을 더욱 철저히 차단합니다. 창문도 배경음악도 없는 절제된 공간에서 그날 준비된 재료와 셰프의 판단에 따라 오마카세가 진행됩니다. 예약과 취소 규정도 엄격합니다. 손님은 메뉴를 바꾸거나 식사의 속도를 주도하기 어렵습니다. 이곳에서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얻는 것은 원하는 요리를 주문할 자유가 아닙니다. 모든 판단을 셰프에게 맡기고 그 결과를 경험할 수 있는 한 자리입니다.

프랑스 파리의 '르 뫼리스'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운영해 온 알랭 뒤카스 셰프도 선택지를 무작정 늘리는 방식을 경계해 왔습니다. 화려한 공간을 채우는 것은 방대한 메뉴가 아니라 엄선된 코스와 분명한 방향입니다. 손님이 더 많은 선택을 기대할수록 셰프는 접시를 덜어내고 재료를 압축합니다.

미국 나파밸리의 '프렌치 런드리' 역시 재료와 조리법을 셰프가 치밀하게 통제합니다. 토마스 켈러는 농산물과 육류가 어떤 환경에서 생산됐는지 세세하게 확인하고, 그 기준을 통과한 재료로 매일 코스를 다시 짭니다. 이 식사를 경험하려는 사람들은 어렵게 열린 예약 자리를 놓고 경쟁합니다.

이들 레스토랑의 공통점은 '무엇을 파느냐'보다 '무엇을 팔지 않느냐'에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자유로운 선택도, 편리한 예약도, 손님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약속도 팔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의 확신을 건넵니다.

"오늘 저녁의 모든 결정은 우리가 책임지겠다."

사람들은 그 확신을 얻기 위해 몇 달을 기다리고 수백만원을 지불합니다. 때로는 엄격한 취소 규정까지 받아들입니다. 최고급 식당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것은 선택권이 아니라,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인 것입니다.

STEP 02 . SUMMONING

손님의 집으로 향하는 세프

(게티이미지뱅크)

반대편에는 레스토랑이라는 공간 자체를 지워버린 셰프가 있습니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얀 뉘리 셰프는 한 해 수백 차례 다른 사람의 부엌을 빌려 요리합니다. 손님이 레스토랑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셰프가 식재료와 조리 도구를 챙겨 손님의 펜트하우스나 별장, 요트로 향합니다.

그는 자신의 일을 '케이터링'이라고 부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그 단어를 쓰는 순간 자신이 하는 일이 평범한 음식 배달과 같은 범주에 놓인다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뉘리의 저녁은 일반적인 출장 요리와 거리가 멉니다. 벽난로 불에 가리비를 굽고 코스 중간에 데킬라 잔을 돌립니다. 100년 된 골동품 오리 프레스를 식탁 한가운데 올려놓기도 합니다. 식기와 서비스 순서, 옷차림으로 유지되는 정찬의 격식을 일부러 흐트러뜨리는 것이 그의 방식입니다.

가격은 최소 수천달러에서 시작해 규모와 식재료에 따라 1인당 1만5000달러를 넘기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그를 찾는 손님은 끊이지 않습니다. 넷플릭스ㆍ오메가ㆍ디올ㆍ티파니 등 글로벌 기업이 행사를 맡겼고 마사 스튜어트와 존 레전드, 오프라 윈프리 같은 유명인도 그의 음식을 경험했습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유명 레스토랑의 간판이나 이미 정해진 서비스가 아닙니다. 그날 그 장소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우연입니다. 술이 과해 식탁에 제대로 앉지 못하는 손님이 나오고 예정된 순서가 뒤엉키기도 합니다. 완벽하게 통제된 레스토랑과 달리 뉘리의 저녁은 손님의 반응과 분위기에 따라 매번 다른 방향으로 흐릅니다. 뜻대로 풀리지 않은 밤조차 오랫동안 회자되는 이유입니다.

그는 정작 자신의 레스토랑을 열 생각이 없습니다. 한곳에 자리를 잡는 순간 매일 비슷한 환경에서 여러 손님에게 같은 메뉴를 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뉘리는 한 번에 더 많은 손님을 받는 명성보다 단 한 사람을 위해 매번 처음부터 저녁을 설계하는 자유를 원했습니다.

셰프 얀 뉘리 인터뷰 발언

"100명이 같은 시각, 같은 메뉴를 먹는 레스토랑은 아무리 유명해도 독점적인 경험이 아니다. 나는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다."

STEP 03 . TRANSIT

닭 열네 마리와 전용기 한 대

▲이타 해저 레스토랑. (출처=Hilton 홈페이지 캡처)

뉘리의 작업에서 가장 낯선 대목은 식재료를 옮기는 방식입니다. 그는 한 번은 파리의 개인 기사에게 명품 캐리어를 사게 한 뒤 내부를 스티로폼으로 채우도록 했습니다. 이어 프랑스 동부의 브레스 지역 농가에서 닭 열네 마리를 받아 공항으로 가져오라고 지시했습니다. 닭들은 전용기 화물칸에 실려 대서양을 건넜습니다.

뉘리는 "그때 비용이 얼마였는지는 지금도 계산하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버지니아에서 열린 한 바비큐 파티에는 300일간 드라이에이징한 와규 티본 48개가 등장했습니다. 소고기값만 약 1만2000달러에 달했습니다. 이스트햄튼에서는 브르타뉴산 랍스터가 헬기를 타고 손님과 함께 도착했습니다. 맨해튼에서 열린 패션쇼에는 스코틀랜드산 랑구스틴 1000마리가 카나페 재료로 쓰이기 위해 대서양을 건넜습니다.

뉘리는 매년 수백 파운드의 트러플과 캐비아를 사들이고, 요리에 쓰는 소금만 65종을 갖춰놓았습니다. 그는 이런 지출을 단순하게 설명합니다.

"임대료로 나갈 10만달러가 없으니 그 돈을 전부 재료에 쓴다."

고정된 레스토랑을 두지 않았기에 가능한 계산입니다. 공간에 들어갈 비용을 식재료와 운송, 그날의 연출에 쏟아붓습니다. 그 결과 평범한 부엌은 단 몇 시간 동안 세계 각지의 희귀한 재료가 모이는 무대가 됩니다.

몰디브의 콘래드 몰디브 랑갈리 섬(Conrad Maldives Rangali Island) 리조트에 위치한 세계 최초의 해수면 아래 5m 수중 레스토랑 '이타'도 거대한 물류망 위에서 운영됩니다. 해수면 아래 약 5m에 자리한 이 공간은 천장과 벽이 통유리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손님 머리 위로 물고기와 산호초가 지나갑니다.

섬과 섬 사이를 이동해야 하는 리조트의 특성상 식재료를 들이는 일부터 간단하지 않습니다. 현지에서 구할 수 없는 육류와 해산물, 와인은 리조트의 운송망을 거쳐 조리대에 도착합니다. 고작 14명 안팎의 손님을 받는 저녁을 위해 여러 나라와 섬을 잇는 물류가 움직입니다. 예약과 복장 규정도 엄격합니다.

이처럼 식재료를 옮기는 비용이 재료값을 훌쩍 넘어서는 경우는 드물지 않습니다. 닭 열네 마리의 가격보다 그 닭을 대서양 건너편으로 옮기는 데 들어간 비용이 몇 배, 몇십 배 더 큽니다.

슈퍼리치는 식재료만 사지 않습니다. 산지와 식탁 사이의 거리를 지우기 위해 돈을 씁니다. 상업 운송편을 기다리지 않고 전용기와 헬기를 띄워 시간을 줄입니다. 대형 유통망을 거치지 않고 농가와 어장에 직접 접촉해 자신이 원하는 등급과 상태를 지정합니다.

돈은 계절과 거리, 운송 시간이라는 제약을 하나씩 걷어냅니다. 어제까지 바다에 있던 갑각류가 오늘 저녁 맨해튼의 펜트하우스에 오르고, 프랑스 농가의 닭이 몇 시간 뒤 미국의 파티 테이블에 놓입니다.

재료 조달을 가능케 하는 배경

프라이빗 제트ㆍ헬기 활용: 살아있는 갑각류ㆍ가금류의 신선도 유지를 위해 상업 항공편 대신 개인 전세기와 헬리콥터로 이동 시간을 최소화

산지 직송 계약: 대형 유통망을 거치지 않고 특정 농가ㆍ어장과 개별 계약을 맺어 등급 외 유통이 불가능한 최상급 재료만 확보

STEP 04 . PHILOSOPHY

한 사람이 수십 년간 지켜온 3.17달러

▲맥도날드. (게티이미지뱅크)

화려한 다이닝의 정반대편에는 세계적인 투자 기업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의 회장이자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있습니다. 버핏은 오랫동안 출근길에 미국 오마하의 맥도날드에 들러 아침을 해결하는 습관으로 유명했습니다.

2017년 공개된 다큐멘터리 '워런 버핏 되기'에서 그는 아침마다 면도하면서 아내에게 세 가지 숫자 가운데 하나를 말했다고 설명했습니다. 2.61달러, 2.95달러, 3.17달러. 당시 맥도날드에서 팔던 소시지 패티 두 장과 소시지 맥머핀, 베이컨ㆍ에그ㆍ치즈 비스킷의 가격이었습니다. 아내는 그가 말한 금액만큼 동전을 컵에 담아 건넸습니다.

그날 시장 상황이 좋지 않으면 가장 저렴한 메뉴를 골랐습니다. 주가가 떨어진 아침에는 비싼 메뉴를 먹을 기분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세계적인 투자자가 몇 센트의 차이로 아침 메뉴를 바꾸는 장면은 버핏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일화가 됐습니다.

그는 오마하 지역 맥도날드에서 무료로 식사할 수 있는 골드카드도 갖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CEO와 홍콩을 찾았을 때는 자신이 점심을 사겠다며 맥도날드 쿠폰을 꺼내 들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이처럼 거대한 부와 소박한 식사를 나란히 두는 장면은 사람들의 시선을 끕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 역시 신혼여행지였던 로마에서 맥도날드 음식을 먹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반면 식사를 건강과 미래 산업의 문제로 확장하는 부자도 있습니다. 빌 게이츠는 비욘드미트와 임파서블푸드 등 대체육 관련 기업에 투자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식탁 밖으로 넓혔습니다.

이처럼 누군가는 한 끼를 위해 셰프와 전용기를 부르고, 누군가는 햄버거와 탄산음료를 반복해서 고릅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먹는 행위보다 식품 산업의 미래에 투자합니다. 같은 초고액자산가 집단 안에서도 음식에 대한 태도는 제각각입니다.

EPILOGUE

다시 채워지는 접시

(사진=AI 생성)

한 끼는 오래 남지 않습니다. 아무리 귀한 재료를 쓰고 공들여 차린 음식도 먹는 순간 사라집니다. 손에 쥐거나 보관할 수도 없는 경험에 사람들은 왜 그토록 많은 돈과 시간을 들이는 걸까요.

식사는 짧지만, 그 한 끼를 완성하기까지 쌓인 시간은 짧지 않습니다. 한 가지 맛을 완성하기 위해 수없이 조리법을 바꿔온 셰프의 시간, 좋은 재료를 얻기 위해 계절을 기다린 생산자의 시간, 같은 자리를 지키며 취향을 만들어온 손님의 시간이 한 접시 안에서 만납니다.

우리는 흔히 럭셔리를 '한 번의 화려한 순간'으로 떠올립니다. 그러나 진짜 어려운 것은 특별한 순간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 수준을 계속 지켜내는 일입니다. 특별한 날을 위해 비싼 식당을 예약하거나 평소보다 좋은 재료를 사는 일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합니다. 같은 정성과 기준을 매주, 매달, 수십 년 동안 이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반복은 쉽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놀라움을 줬던 음식도 여러 번 접하면 익숙해지고, 늘 같은 자리를 지키는 사람의 수고도 시간이 지나면 당연한 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익숙함 뒤에는 매번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과 고집이 숨어 있습니다.

그 꾸준함은 돈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좋은 재료와 뛰어난 사람, 아름다운 공간을 한자리에 모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요소를 매번 같은 수준으로 준비하는 집중력과 책임감까지 저절로 따라오지는 않습니다. 오랜 시간 자신의 기준을 지키는 일 역시 재산의 크기와는 무관합니다.

결국 식탁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가격표보다 축적된 시간입니다.

우리의 식탁에도 이와 닮은 시간이 쌓여 있습니다. 매일 아침 누군가 끓여주는 국, 퇴근길이면 자연스럽게 찾아가는 단골 식당, 명절마다 빠짐없이 상에 오르는 나물 반찬이 그렇습니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그 안에는 누군가의 하루가 들어 있습니다. 비슷한 시각에 국을 끓이는 사람의 손길, 몇 년째 같은 재료와 조리법을 고집하는 식당 주인의 자존심, 해마다 같은 맛을 되살리는 가족의 기억이 한 끼에 담깁니다.

그 식탁을 위해 전용기나 헬기가 뜨지는 않습니다. 수천달러짜리 식재료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시간을 내고 자신의 하루 일부를 식사에 건넵니다. 그렇게 반복된 수고는 어느 순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취향과 한 가족의 기억이 됩니다.

슈퍼리치가 식사에 값을 매기는 방식과 우리가 값을 매기는 방식은 다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을 위해 같은 수고를 이어가고, 자신이 세운 작은 규칙을 지켜내는 태도는 돈의 크기와 관계없이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식탁을 채운 여러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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