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오면 왜 다들 올리브영부터 갈까? [이슈크래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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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올리브영 매장 전경. (사진제공=CJ올리브영)
서울 명동과 홍대, 성수동을 걷다 보면 낯설지 않은 풍경이 있습니다. 커다란 쇼핑백을 양손에 든 외국인 관광객과 계산대 앞에 길게 늘어선 줄입니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백화점 명품관이나 면세점만이 아닙니다. 한국인에게는 동네마다 하나쯤 있는 익숙한 헬스앤뷰티(H&B) 매장, 바로 올리브영입니다. 스킨케어와 색조화장품은 물론 헤어토닉과 건강 관련 제품까지 쓸어 담고, 한 매장에서 쇼핑을 끝내지 않고 다른 지점까지 찾아갑니다. 실제 외국인 관광객은 한국을 여행하며 평균 2.8개의 올리브영 매장을 찾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때 한국 여행의 필수 코스가 고궁이나 남산, 면세점이었다면 이제 그 목록에 '올영'이 당당히 이름을 올린 셈입니다.

0.9초마다 '삑'…어느새 매출 3분의 1이 외국인

▲외국인 관광객들이 글로벌 특화 매장인 ‘올리브영 명동 타운’에서 계산대로 향하고 있다. (사진제공=CJ올리브영)
얼마나 많은 외국인이 올리브영을 찾는지는 숫자가 가장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CJ올리브영에 따르면 올해 8월 국내 오프라인 매장의 외국인 누적 구매액은 1조원을 넘어섰습니다. 2025년에는 11월에야 1조원을 돌파했는데 올해는 달성 시점이 석 달 빨라졌습니다. 1~8월 외국인 결제 건수만 1101만건에 달합니다. 매장 영업시간으로 환산하면 약 0.9초마다 한 건씩 외국인의 결제가 이뤄진 셈입니다.

더 눈길을 끄는 건 전체 매출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입니다. 2022년만 해도 올리브영 오프라인 매출의 2%에 불과했지만 올해 8월에는 33%까지 치솟았습니다. 이제 매장에서 발생하는 매출 3원 가운데 1원가량이 외국인의 지갑에서 나오는 셈입니다. 글로벌텍스프리(GTF) 세금 환급 데이터를 기준으로 올해 올리브영에서 제품을 구매한 외국인의 국적은 무려 192개국에 달합니다. 미국과 싱가포르, 일본, 중국, 태국 등이 구매액 상위 5개국에 포함됐습니다.

씀씀이도 만만치 않습니다. 외국인 고객은 한 번 결제할 때 평균 6개의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았고 35%는 10만원 이상을 결제했습니다. 단순히 여행 기념으로 립스틱이나 마스크팩 하나를 사가는 수준을 넘어선 것입니다. 한국에서 직접 K뷰티 제품을 비교하고 여러 개를 골라 구매하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여행 경험으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한 번 갔다가 또 간다…'한국에서 유행하는 것' 모여 있는 거대한 쇼룸

▲고객 맞춤형 뷰티 컨설팅을 수행하는 전문 직무 '뷰티 컨설턴트'가 고객에게 메이크업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습. (사진제공=CJ올리브영)
그렇다면 외국인들은 왜 수많은 화장품 매장 가운데 유독 올리브영을 찾는 걸까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한 공간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선택지입니다. 기초화장품부터 색조, 헤어케어까지 다양한 브랜드와 상품을 한 매장에서 비교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화제가 된 제품, 새롭게 등장한 브랜드, 익숙한 인기 상품이 한데 모여 있다는 점에서 외국인에게 올리브영은 단순한 화장품 가게보다 '지금 한국에서 무엇이 인기인지' 확인하는 쇼룸에 가깝습니다.

이런 특성은 K뷰티 소비 방식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외국인이 찾는 제품은 더 이상 마스크팩과 색조화장품에 머물지 않습니다. 올해 1~8월 피부과학을 앞세운 K더마 스킨케어의 외국인 매출은 2025년 같은 기간보다 약 78% 증가했습니다. 먹는 방식으로 피부와 건강을 관리하는 이너뷰티 제품도 64% 늘었습니다. 전체 헤어케어 매출의 외국인 비중은 18% 수준이지만 헤어토닉·앰플에서는 28%까지 올라갑니다.

외국인 관광객의 관심이 '한국 화장품'에서 한국인의 피부와 두피, 건강관리 방식으로 세분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익숙한 글로벌 브랜드 하나를 찾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매장 곳곳을 둘러보며 새로운 제품을 발견하는 방식으로 쇼핑이 바뀌면서 여러 지점을 방문하는 현상도 나타납니다. 올해 5월 올리브영이 글로벌관광상권 매장을 방문한 외국인을 조사한 결과 한 사람당 평균 2.8개의 올리브영 매장을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인에게는 회사나 집으로 가는 길에 잠시 들르는 생활밀착형 매장이 외국인에게는 조금 다르게 보이는 셈입니다. 한 매장에서 품절된 제품을 찾아 다른 점포로 이동하고, 여행 중 새로운 추천 상품을 발견하면 다시 들르는 식입니다. 그래서 외국인에게 올리브영은 특정 상품을 사러 단 한 번 방문하는 목적지가 아니라 여행 기간 내내 반복해서 찾게 되는 쇼핑 플랫폼에 가까워졌습니다.

명동에서 강원·경주까지…'올영 투어'가 한국 관광 지도를 바꾼다

▲올리브영이 2024년 경주 황리단길에 개점한 디자인 특화 매장 '올리브영 경주황남점' 전경. (사진제공=CJ올리브영)
더 흥미로운 변화는 이른바 '올영 투어'가 서울을 벗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외국인 관광객의 쇼핑은 오랫동안 명동과 홍대 같은 서울 주요 상권과 부산, 제주 등에 집중됐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비수도권의 증가 속도가 훨씬 가파릅니다.

올해 1~8월 전국 올리브영의 외국인 매출이 2025년 같은 기간보다 47% 증가할 때 강원 지역은 105% 뛰었습니다. 경주는 88%, 대전은 80%, 전주는 62% 증가했습니다. 관광객의 국적도 다양해졌습니다. 강원 지역 매장을 이용한 외국인 국적은 76개국에서 85개국으로, 경주는 88개국에서 100개국으로 늘었습니다.

올리브영도 이런 변화에 맞춰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의 매장 모습을 바꾸고 있습니다. 외국인 고객 수와 매출 비중 등을 기준으로 '글로벌관광상권'을 지정하고 외국어 가능 직원을 우선 배치하고 있습니다. 8월 기준 전국 글로벌관광상권 매장은 151개로 전체 점포의 10%를 넘어섰습니다. 비수도권에서는 평균 면적 200평 이상의 대형 '타운' 매장과 지역 특화 점포도 확대하고 있습니다.

결국 외국인이 올리브영에 몰리는 현상을 단순히 'K뷰티가 잘 팔린다'는 말로만 설명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외국인 관광객은 한국에 와서 제품 하나만 사는 것이 아니라 매장을 돌아다니며 한국에서 유행하는 제품을 발견하고, 직접 비교하고, 구매하는 과정 자체를 소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에서 시작한 이런 쇼핑 동선은 이제 강원과 경주, 대전, 전주 등으로 넓어지고 있습니다.

관광객이 늘자 올리브영은 외국인을 위한 매장과 서비스를 확대하고, 그렇게 달라진 매장은 다시 관광객을 끌어들입니다. 한국인에게는 너무 익숙해 특별할 것 없는 동네 매장이 외국인의 눈에는 가장 빠르고 손쉽게 '요즘 한국'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된 것입니다.

한국에 오면 왜 다들 올리브영부터 갈까요. 어쩌면 외국인에게 올리브영은 이미 화장품 가게라는 범주를 넘어섰기 때문일 겁니다. K뷰티 제품을 파는 매장이 아니라 지금 한국 사람들이 무엇을 바르고, 무엇을 사고,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를 한눈에 들여다보는 하나의 'K라이프스타일 콘텐츠'가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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