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재산·재분배 시스템 부재 "권력 가진 상층부만 이익, 취약층 타격"

북한 내에서 장마당으로 대표되는 '준시장화(quasi-marketization)' 체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소득 양극화가 크게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회주의 속 민간시장을 암묵적으로 용인하거나 이를 억압하는 기울어진 시스템 하에 시장 안전판이 부재하다보니 가뭄이나 수출 급감 같은 외생적 경제충격이 발생하면 취약계층에 피해가 집중되고, 경기 회복 국면에 들어서더라도 벌어진 빈부 격차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23일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조용신 부연구위원은 ‘BOK경제연구: 준시장화 체제에서의 경제 충격과 소득 양극화(북한 사례)’ 보고서를 통해 "북한 경제는 일반 주민이 총소득의 약 70%를 시장에 의존할 정도로 비공식 부문이 경제 전반을 지탱하고 있다"면서 "이는 전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사례"라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 배급시스템이 붕괴된 이후 장마당을 중심으로 한 비공식 시장경제가 확산됐다. 문제는 장마당이 주민들의 삶에 자리잡은 상황에서 공정경쟁 규범이나 조세 및 소득 재분배, 사유재산권 보호 등 시장을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는 전무하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권력층과의 연줄이나 자본 접근성에 따라 기회가 편중되는 ‘준시장화’ 구조가 굳어졌다는 평가다.
이 같은 상황은 경제 위기나 재해 발생 시 북한 서민들에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실제 대규모 경제충격이 발생한 2014~2015년 이후 비공식 시장소득의 양극화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악화된 것으로 확인됐다. 조용신 부연구위원이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탈북민 설문조사 자료(2011~2020년)를 바탕으로 실증 분석한 결과, 북한은 당시 극심한 가뭄으로 인한 농업·수력발전 타격과 중국 경기 둔화에 따른 수출 급감이 겹치며 2015년 경제성장률이 -1.1%로 역성장한 바 있다.
특히 북한의 소득 양극화는 상위층 소득 급증보다 하위소득층의 폭발적 증가로 나타났다.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안전망이 없는 서민층이 대거 극빈층으로 전락한 것이다. 반면 정치적 연줄과 자본력을 갖춘 상위계층은 위기 속에서도 무위험 차익거래나 지대추구(rent-seeking) 등을 통해 소득을 방어하거나 소폭 늘리는 등 계층별 충격이 비대칭적으로 작용했다.
조 부연구위원은 "북한 시장 소비재는 중국 수입 비중이 높은데, 당국의 무역 허가를 얻을 수 있는 권력층 연줄을 활용해 물품을 독점 공급하거나 중간 차익을 취하는 무위험 차익거래가 가능하다"면서 "거주이전의 자유가 제한된 북한 특성상, 통행 허가를 받아 지역 간 가격 차이를 이용한 차익 거래를 독점하는 형태도 상위층의 자본 축적 기회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은은 이 같은 북한 경제 체제 하에서 충격이 지나가고 시장이 회복기에 접어든 이후에도 한번 심화된 소득 불평등 구조는 장기간 유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 부연구위원은 "제도적 보호 장치가 없는 준시장화 경제에서는 외부 충격의 피해가 고스란히 취약계층에게 전가된다"며 "이러한 비대칭적 충격 구조가 북한 내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고착화시키는 주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