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논의가 구체적인 제도 설계 단계로 넘어가면서 500조 원을 넘어선 퇴직연금 운용 방식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개인의 상품 선택에 상당 부분 의존했던 구조에서 전문운용과 장기 분산투자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뀔 경우 상장지수펀드(ETF)를 비롯한 장기 투자상품 수요도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6일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연구원(자시연), 삼성증권에 따르면 2025년 퇴직연금 적립금은 501조4000억원으로 △확정급여형(DB) 228조9000억원 △확정기여형(DC) 141조6000억원 △개인형퇴직연금(IRP) 130조9000억원으로 구성됐다. 외형은 500조원을 넘어섰지만 전체 적립금의 75.4%는 원리금보장형에 머물러 있다. 남재우 자시연 선임연구위원은 가입자가 장기간 자산배분과 상품 선택, 리밸런싱, 위험관리를 반복하기 쉽지 않고 선택 부담이 커질수록 현금성 자산이나 원리금 보장 상품으로 쏠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운용 방식에 따른 수익률 차이도 나타났다. 2025년 연간 수익률은 DB형이 3.53%인 반면 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은 각각 8.47%, 9.44%를 기록했다. 실적배당형 상품의 5년 평균 수익률도 5.37%로 높아졌다. 다만 남 연구위원은 가입자별 선택 역량에 따라 성과 편차가 확대될 수 있고, 연금자산 운용이 개인의 비전문적 선택에만 맡겨질 경우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제도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기금형은 이런 선택 부담을 전문운용 체계로 옮기는 장치다. 수탁기관과 전문운용조직이 자산배분과 운용사 선정, 모니터링, 리밸런싱을 맡고 가입자는 개별 상품을 반복적으로 고르는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남 선임연구위원은 선택하지 않아도 전문적으로 운용되는 실질적인 디폴트 구조와 장기 분산투자, 전문운용조직의 독립성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삼성증권은 기금형 퇴직연금에 주목했다. 이 연금이 도입되면 ETF를 포함한 장기 투자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국내 자본시장으로 중장기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개인 중심의 단기 상품 선택보다 기금 단위의 자산배분이 강화될 경우 ETF가 장기 운용 수단으로 활용될 여지가 커질 수 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다만 기금형이라는 형식 자체가 수익률 개선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수탁자 책임과 이해상충 통제, 투명한 성과·비용 공시, 저성과 기금에 대한 시정과 퇴출 규율 등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남 연구위원도 “기금형이라는 형식 자체가 제도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며 “제도 유형별 목적을 명확히 하고, 그 목적에 맞게 대상, 운영 주체, 지배구조, 운용규율, 성과평가를 차등 설계할 때에만 기금형 제도는 기존 계약형의 제도적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