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장폐지 요건 중 시가총액·주가 등 정량적 기준이 대폭 강화되면서 일시적 위기에 처했거나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술 기업까지 퇴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선진국 사례처럼 충분한 개선 기회를 주고 정성 평가를 병행하는 등 보완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는 이달부터 시총, 동전주(주가 1000원 미만 종목), 완전자본잠식, 공시위반 등 4대 상장폐지 요건을 적용한다. 시총 기준도 기존대로 코스피 300억원(향후 500억원), 코스닥 200억원(향후 300억원)으로 순차적으로 높아진다. 이중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곧바로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는 강력한 퇴출 규정이다.
절차도 더 빠르고 단호해졌다. 시총이나 주가가 30거래일 연속 기준에 못 미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이후 90거래일 중 45거래일 연속으로 기준을 회복하지 못하면 상장폐지가 결정된다.
반면 미국의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시장은 기준에 미달하는 부실 기업을 즉시 퇴출하지 않고, 유예기간과 단계별 심사 절차를 두고 있다. 주식의 최저 매수호가가 1달러 미만인 상태가 30영업일 연속 이어질 경우 해당 기업에 '기준 미달(Deficiency)'을 통보한다. 경고를 받은 기업에는 180일의 개선기간이 주어지며, 이 기간 중 10영업일 연속 매수호가가 1달러를 회복하면 상장을 유지할 수 있다.
이외에도 △자기자본(1000만 달러 이상) △시총(5000만 달러 이상) △최근 사업연도 또는 최근 3년 중 2년 동안의 총자산 및 총수익(각 5000만 달러 이상) 등 다양한 재무 및 규모 요건의 충족 여부를 별도로 종합 점검한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TSE)은 미국이나 한국처럼 '동전주' 기준이나 시총 미달 요건을 상장폐지의 직접적인 잣대로 적용하지 않는다. 대신 순자산, 유통주식, 거래대금, 거래량 등 시장성과 재무 건전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실질 유동성'과 공시의 질을 중심으로 계속상장 적격성을 엄격히 심사한다.
기준에 못 미치는 기업에는 1년의 개선기간을 제공하고, 적자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보이면 추가 유예기간을 주기도 한다. 만약 회복이 어렵다고 판단되더라도 곧바로 시장에서 쫓아내기보다는 하위 시장으로 이동하거나 자진 상장폐지, 또는 다른 기업과의 인수합병(M&A) 등 다양한 대안을 제시한다. 단, 허위 공시처럼 시장 신뢰를 흔드는 치명적인 위반에 대해서만 즉시 상장폐지라는 강력한 제재를 적용한다.
영국 금융감독청(FCA)은 2024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상장 제도를 대폭 완화했지만 상장폐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주주 승인을 필수 요건으로 고수하고 있다. 이는 기업에 유연한 자본 조달 환경을 제공하는 한편, 상장 유지 및 퇴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수 주주의 피해를 막고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전문가들은 획일적인 숫자 기준만으로 기업의 능력이나 잠재력을 단정짓기는 어렵다며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정량적 기준만으로 단순하게 기업을 나누기가 쉽지 않다"며 "일반 투자자들이 코스닥 시장을 불신하는 불공정 행위를 막으려면 객관적인 정량 기준뿐만 아니라 기업에 대한 실사 등 정성적인 평가 시스템이 반드시 같이 들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