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시가 오른다고 모두가 웃는 것은 아니다. 로봇, 반도체, 인공지능(AI) 같은 주도 테마에 올라타지 못한 코스닥 중소 상장사들에 최근 장세는 잔혹한 가시밭길이다. 지수가 오를 때는 상승 폭이 제한적이고, 악재로 시장이 밀릴 때는 대세 흐름을 비켜가지 못한다. 이 비대칭 변동성 속에 주가는 계단식으로 밀려나고, 그 끝자락에는 시가총액 미달에 따른 강제 퇴출이라는 벼랑 끝이 기다리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코스닥 제조업체 관계자는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 회사는 매년 수백억원대의 안정적인 매출과 꾸준한 영업이익을 내며 부채비율 50% 미만의 탄탄한 재무구조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주가는 3년째 내리막길을 걸어 최근 시가총액이 상장 유지 하한선 근처까지 떨어졌다. 그는 “본업의 실적이나 기술력은 단 한 번도 꺾인 적이 없는데, 단지 요즘 유행하는 AI나 로봇 같은 인기 테마주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시장에서 잊혔다”며 “왜 무리해서라도 테마 사업에 진출 안 하느냐고 타박하는 주주들도 일부 있는데, 테마주가 아니라서 속상하다는 한탄밖에 할 수가 없는 실정”이라고 씁쓸해했다. 기관투자가나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탐방 발길마저 끊긴 지 오래다.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가 부실기업을 솎아내기 위해 상장 유지 시가총액 요건을 단계적으로 끌어올리면서 이 같은 소외주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졌다. 시가총액 하한선 기준이 점차 높게 설정되자 거래량이 마른 중·소형주들은 당장 관리종목 지정과 상장 폐지 공포에 직면했다. 문제는 기업의 재무 상태나 독자적인 기술력과 상관없이 단지 인기 테마에 속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수급이 차단돼 시총이 쪼그라드는 사례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기관과 외국인의 지수 추종 자금은 대형 테마주로만 쏠리고, 소액 투자자들마저 퇴출 위험을 피하려 매물을 던지면서 거래 절벽이 심화하는 악순환이다.
시가총액 감소는 기업의 자금 조달 길목을 완전히 막아버리는 걸림돌로 작동한다. 시총이 하한선 근처로 떨어지면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의 어려움은 더 커진다. 주가 하락으로 리픽싱(전환가액 조정) 한도에 도달하면 대주주 지분율이 위협받는 부작용도 겹친다. 여기에 증권사들의 신용공여(증거금)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개인의 매수세마저 단절된다. 결국, 건전한 영업 활동을 이어가던 중소기업조차 주가 하락이 신용 하락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시가총액을 낮추는 연쇄 도미노를 타며 무기력하게 시장 밖으로 밀려나는 구조다.
미국 나스닥의 경우 최소 시가총액 기준 외에도 자기자본 규모, 주주 수, 매출액 및 당기순이익 등 다각도의 상장 유지 옵션을 제공해 특정 시점의 수급 왜곡에 따른 억울한 퇴출을 제도적으로 방지한다. 단기적인 시장 수급이나 트렌드 변화로 주가가 일시 하락하더라도, 실적과 자산 건전성이 입증되면 시장에 머물며 반등을 도모할 수 있는 정밀한 안전장치를 마련해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정량적 시총 숫자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수급 불균형에 따른 일시적 주가 폭락의 책임까지 개별 기업의 무능으로 몰아가고 있다.
잡초를 솎아내려다 건강한 유목까지 잘라내서는 안 된다. 당국은 단편적인 시총 숫자 맞추기식 퇴출에서 벗어나 기술성과 영업 유동성, 대주주의 자구 노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유연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실적과 기술력을 갖춘 알짜 중소기업들이 단지 유행하는 테마에 끼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시총의 덫에 갇혀 쫓겨나는 일이 반복된다면, 코스닥이 자처해온 ‘혁신 벤처의 토양’이라는 타이틀은 더욱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