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의 사람 중심 기업가 정신] 기업가정신은 인간번영과 함께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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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강점에서 국민총번영으로⋯한국 경영학계에 던지는 질문

▲김기찬 세계중소기업학회 의장, 프레지던트대학 국제총장. (출처=본인 제공)
1. 경영학은 왜 존재하는가?

의과대학이 환자를 치료하지 못한다면 의학은 존재 이유를 의심받는다. 마찬가지로 경영대학이 어려움에 처한 기업을 돕고, 기업을 통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경영학 역시 존재 이유를 질문받게 된다.

20여 년 전만 해도 경영학과와 MBA과정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기업을 성장시키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품은 학생들이 강의실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오늘날 학생들은 경영학 강의실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경영학이 목적, 즉 ‘왜’를 잃고 수단인 ‘어떻게’에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전략, 마케팅, 재무, 인공지능, 디지털 전환 등 기업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관한 지식은 넘쳐난다. 그러나 기업은 왜 존재하는가, 경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기업의 성장은 사람의 삶을 어떻게 더 나아지게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옥스퍼드대학교의 콜린 메이어 교수는 기업을 사람과 지구가 직면한 문제를 가장 생산적으로 해결하는 조직으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오늘의 경영학은 기업이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충분히 이끌고 있는가. 아직도 많은 경영학은 주주중심 자본주의라는 오래된 틀에 머물러 있지만, 기업의 목적을 주주에서 직원과 고객, 협력기업, 지역사회와 미래세대로 확장해야 한다는 이해관계자 중심 자본주의는 이미 세계적 흐름이 되었다.

이제 경영학은 기업의 성장과 생산성 향상만을 가르치는 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기업의 성장이 사람의 삶을 얼마나 개선했는지, 경제적 성과가 좋은 일자리와 인간의 존엄, 잠재력과 희망으로 얼마나 이어졌는지를 물어야 한다.

2. 왜 갤럽은 국민총생산(GDP)을 넘어 국민 삶의 번영과 국민총번영(GDT)에 주목하는가? 사람의 강점에서 좋은 일자리로

갤럽의 회장을 지낸 도널드 클리프턴은 ‘강점기반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사람의 약점보다 강점에 주목하며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사람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연구하는 대신, 무엇이 잘되고 있는지를 연구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질문은 인간을 결핍과 교정의 대상이 아니라 고유한 재능과 성장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는 새로운 인간관의 출발점이 되었다.

네브래스카대학 교수였던 도널드 클리프턴은 1969년 네브래스카주 링컨에서 SRI(Selection Research Inc.)를 설립했다. 여기서 Selection은 단순히 사람을 선발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각자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 재능이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는 역할과 연결한다는 의미였다.

적합한 사람을 적합한 역할에 배치하는 것(“The right person in the right role”)이 도널드 클리프턴의 철학이었다.

한편 갤럽은 1935년 조지 갤럽에 의해 설립되었다. 조지 갤럽은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조사 결과의 독립성과 엄정성을 지키는 것을 중요한 원칙으로 삼았고, 세계적인 여론조사기관으로 성장했다.

이 갤럽을 1988년 도널드 클리프턴이 설립한 SRI가 인수했다. 작은 지역 연구기업이 세계적인 조사기관을 품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다윗이 골리앗을 삼킨 사건’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결합의 진정한 의미는 기업의 규모에 있지 않았다.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측정해 온 갤럽의 조사역량과, 사람들이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를 연구해 온 클리프턴의 강점철학이 만났다는 데 있었다.

조지 갤럽이 사람들의 생각을 과학적으로 측정했다면, 도널드 클리프턴은 사람들의 강점과 가능성을 숫자로 보여주려 했다.

두 철학이 결합하면서 갤럽은 단순한 여론조사기관에서 사람과 조직의 성장, 좋은 일자리와 삶의 번영을 연구하는 세계적인 분석·자문기관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갤럽은 조사를 직원몰입과 좋은 일자리, 행복한 삶과 국가번영을 위한 자료 기반 연구체계로 확장했다. 그 결과 갤럽은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조사하는 기관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성장하며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지를 연구하는 사람중심 조사기관으로 발전했다.

갤럽의 유명한 세계 일터의 직원몰입 조사는 개인의 강점이 실제 일터에서 발휘될 수 있도록 조직이 준비되어 있는지를 측정한다. 이 조사는 직원들의 강점이 꽃필 수 있는 일터의 조건을 측정한다.

그 결과가 직원몰입이다. 몰입은 개인의 강점이 조직 안에서 실제로 발휘되고, 인정과 성장의 기회로 연결되며, 개인의 일이 조직의 목적과 결합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람중심 경영의 핵심 지표다.

오늘날 세계의 일터는 아직 강점기반 일터와 거리가 멀다. 갤럽의 『2026 세계 일터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직원 가운데 일에 몰입한 직원은 20%에 불과했다. 세계 직원몰입도는 2023년 23%에서 2024년 21%로 하락한 데 이어, 2025년에는 다시 20%로 낮아졌다. 이는 세계 직원 몰입도가 2년 연속 하락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많은 직원이 자신의 일에 몰입하지 못하고 있으며, 직장에서 자신의 강점과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갤럽은 2025년의 낮은 직원몰입으로 세계경제가 입은 생산성 손실을 약 10조 달러,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9%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또한 2025년 전 세계 직원 가운데 자신의 현재 삶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미래의 삶도 더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삶의 번영 상태’에 해당하는 비율은 34%였다.

이러한 조사에서 갤럽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사람의 강점과 몰입을 외면하는 일터는 구성원의 성장과 삶의 질을 훼손할 뿐 아니라, 기업과 세계경제에도 막대한 생산성 손실을 초래한다.

좋은 일자리는 단순한 복지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강점과 잠재력을 성과로 전환하는 생산성과 경쟁력의 문제다. 직원몰입은 조직문화의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조직성과를 만드는 핵심 자산이다.

좋은 일자리는 단순히 급여를 받는 자리가 아니다. 자신의 역할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필요한 자원과 지원을 받으며, 강점을 발휘하고 인정받고,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일자리다.

관리자는 명령하고 통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구성원의 강점을 발견하고 성장을 지원하는 조언자이자 성장지원자가 되어야 한다. 기업도 사람을 비용으로만 보는 조직에서 인간의 가능성이 꽃피는 터전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3. 기업가정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갤럽 세계조사에는 국민이 현재의 삶을 어떻게 평가하고 미래를 얼마나 긍정적으로 전망하는지를 보여주는 삶의 평가 지표가 있다. 이를 국가별로 해석한 개념이 국민 삶의 번영도(GDT), 즉 Gross Domestic Thriving이다. 국민 삶의 번영도(GDT)는 경제성장과 혁신의 크기 자체를 측정하는 지표라기보다, 그러한 성장과 사회발전 속에서 국민이 현재와 미래의 삶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2024년 갤럽 세계조사에 따르면, 142개국 성인의 국가별 중앙값을 기준으로 삶의 번영 상태(Thriving)에 해당하는 비율은 33%에 불과했다. 반면 현재의 삶이나 미래 전망이 충분히 높지 않은 고전 상태(Struggling)는 59%였으며, 현재와 미래의 삶을 모두 매우 낮게 평가하는 고통 상태(Suffering)는 7%였다. 합계가 99%인 것은 반올림에 따른 것이다. 이는 세계 성인의 약 3분의 2가 아직 삶의 번영 상태에 이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많은 성인이 현재의 삶이나 미래 전망이 충분히 높지 않은 고전 상태 또는 고통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혁신과 성장의 엔진 역할을 해 온 기업가정신을 평가하고 측정하는 방식에도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지금까지 우리는 기업가정신을 측정하면서 얼마나 많은 기업이 창업되었는지, 얼마나 많은 투자가 이루어졌는지, 기업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했는지를 주로 물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기업가정신이 구성원의 강점을 얼마나 발견하고 활용했는지, 얼마나 높은 직원몰입을 이끌어냈는지, 그리고 그 성과가 좋은 일자리와 국민의 삶으로 어떻게 확산되었는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

기업가정신은 자동으로 인간번영을 만들지 않는다. 창업과 혁신이 활발하더라도 그 성과가 일부 창업자와 투자자에게만 집중되고 좋은 일자리와 국민의 삶으로 확산되지 않는다면 좋은 기업가정신이라고 보기 어렵다.

좋은 기업가정신은 좋은 기업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회를 만든다. 구성원의 강점을 살리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며, 고객과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이제 기업가정신지수는 기업가적 역동성만이 아니라 인간번영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기업가정신의 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기업가정신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리고 그 성과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

4. 국내총생산(GDP) 시대에서 국민총번영(GDH) 시대로

좋은 경제는 국내총생산(GDP)만 높은 경제가 아니다. 더 많은 국민이 좋은 일자리를 가지고, 자신의 강점을 발휘하며, 일에 몰입하고, 현재의 삶과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경제다.

좋은 기업가정신의 목적도 더 많은 기업을 만드는 데만 있지 않다. 사람의 강점을 꽃피우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며, 더 많은 국민이 인간답게 성장하고 번영하도록 하는 데 있다.

국내총생산(GDP)은 경제 규모와 생산의 총량을 보여주는 필수적인 지표다. 그러나 국내총생산(GDP)만으로는 경제성장이 국민의 삶에서 어떻게 경험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국민이 직장에서 몰입하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는다면, 그 사회를 온전히 번영하는 사회라고 부르기 어렵다.

이제 기업가정신과 혁신성장에 대한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창업과 투자가 얼마나 늘었는지만이 아니라, 그 성과가 좋은 일자리와 국민의 삶으로 얼마나 확산되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국민은 자신의 강점을 발휘하고 있는가. 기업은 의미와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가. 혁신은 인간의 존엄과 잠재력을 꽃피우고 있는가.

좋은 기업가정신지수는 기업가적 역동성과 국민번영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창업과 혁신의 양적 성과가 국민의 존엄과 잠재력, 좋은 일자리와 총체적 인간번영으로 얼마나 전환되고 있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국민총번영(GDH)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경제성장과 기업가적 혁신이 국민의 강점과 잠재력을 살리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며, 국민 삶의 번영과 총체적 인간번영으로 얼마나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람중심 국가발전의 기준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국가정책도 국내총생산(GDP)을 넘어 총체적 인간번영(Human Flourishing)을 담아내는 국민총번영(GDH)을 새로운 북극성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얼마나 많이 생산하고 얼마나 부유해졌는지만을 물어서는 안 된다. 그 성장으로 얼마나 많은 국민의 가능성이 꽃피고 있는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

수많은 고전과 역사가 증명하듯, 진정으로 위대한 시대는 숫자가 아닌 '사람'을 남겼다. 인간의 강점과 존엄을 외면한 성장은 결국 길을 잃을 수밖에 없으며, 국민총번영을 향한 여정은 잃어버린 경영의 영혼을 되찾는 가장 시급하고 묵직한 시대적 소명이다.

국민총번영(GDH)은 사람의 강점에서 좋은 일자리로, 좋은 일자리에서 국민 삶의 번영으로, 다시 총체적 인간번영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김기찬 교수는 세계중소기업학회 의장, 프레지던트대학 국제총장을 맡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경영학자다. 기업가정신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통합한 사람중심 경영 철학의 선구자이자, K-Entrepreneurship의 세계화를 이끄는 학계·실무계의 권위자다.

서울대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도쿄대 경제학부 객원연구원, MIT 국제자동차프로그램(IMVP) 연구위원, 조지워싱턴대학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혁신경제분과 위원장,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이사, 신남방정책 민간자문위원을 역임하며 정부 자문 역할도 수행했다.

또한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포스코에너지 등 대기업의 자문교수 및 현대모비스·홈앤쇼핑·킨텍스 사외이사 등 산업계와 학계를 연결하는 산학연 허브형 리더로 평가받는다. 윤경ESG포럼 공동대표, 한국인도네시아경영학회 회장으로서 아세안과의 경영교육 및 교류 확대에도 힘쓰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사람중심 기업가정신'(2018), '이토록 신나는 혁신이라니'(2019), '플랫폼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2015) 등이 있다. 다수의 국내외 수상 경력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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